Discover귀로 보는 복음 (길가에 교회)
귀로 보는 복음 (길가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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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보는 복음 (길가에 교회)

Author: 길가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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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새벽기도회 :월~금 오전 5시30분 토 오전6시30분, 장소:길가에교회 소예배실
인도:장수현 담임목사,주기철 목사,박혜결 전도사,오현준 전도사,진원미 목사
매일 새벽을 여는 성경 말씀 묵상과 기도를 연재하며
목사님들과 성도님들 사이에 나눴던 성경 공부방 이야기
1252 Epis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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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창]11: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창]11: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창]11: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창]11: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창]11: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창]11: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창]11: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창]11: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1: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11: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창]11: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창]11: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창]11: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창세기를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는데, 1장부터 11장까지 그리고 12장부터 50장까지입니다. 창세기 11장은 창세기 전반부를 마무리하면서 후반부를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창11장에는 중요한 두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바벨탑을 통해 태초부터 시작된 반역의 역사가 계속되는 것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 안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창세기 10장에서 노아의 아들들의 후손을 살펴보았지요. 그런데 그중에서 셈의 계보가 에벨의 아들 벨렉과 욕단에서 끝이납니다. 그때 욕단의 후손은 나오는데 벨렉의 후손은 나오지 않았지요. 바로 오늘 바벨탑 이후에 벨렉의 후손이 등장합니다. 셈은 아르박삿을 낳고, 아르박삿은 셀라을 낳고셀라는 에벨을 낳고, 에벨은 벨렉을 낳지요. 그리고 이 벨렉의 후손은르우-스룩-나홀-데라로 이어집니다. 25, 26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결국 이 족보의 결론은 누구일까요? 데라의 가정, 데라와 그의 아들들이지요. 27절 이하에서 데라의 가정을 다시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31절에서는 데라가 자녀들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자 하였더니 하란에 머무르게 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32절에서 데라가 205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셈의 족보의 초점은 데라도 아니었지요. 데라도 하나의 과정일뿐입니다. 그럼 성경은 셈의 족보를 통해 누구를 말하고 싶은 걸까요?‘ 그 이야기가 12장부터 펼쳐지는데그는 바로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이지요.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아브람을 통해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데 그 이야기가 내일부터 펼쳐질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계보인 셈의 족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무엇일가요? 첫째는 성경은 의도적으로 셈의 족보중 일부를바벨탑 사건 뒤에 배치합니다. 그 이유는 인류의 집단적 반역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과 구원계획이 계속 진행됨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족보에는 죽었따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결코 인간의 타락으로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둘째, 하나님께서 선택한 데라의 가정은 완벽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자녀가 일찍 죽기도 하고또한 자녀중 누구는 임신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려움이 많은 가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택하시지요. 데라의 가정이 잘나서가 아니지요. 오히려 부족함이 많지만, 하나님이 택하셨고, 그런 부족한 가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정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한 사람도, 한 공동체도 비록 문제가 많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사람, 그 가정, 그 공동체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지요.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 자녀들, 다음 세대들을 축복하고, 더욱 하나님과 함게 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창]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창]1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창]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창]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우리는 노아의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이 분명히 성취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 노아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세우는 장면을 마주합니다. 본문은 그들이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말하는데, 성경에서 동쪽은 문맥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함께 지니지만, 창세기에서는 반복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을 상징해 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 아벨을 죽인 후 동쪽 놋 땅으로 떠난 가인, 그리고 롯의 선택 모두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홍수 이후 인류는 다시 하나님 나라의 표본인 에덴에서 멀어지며, 그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자리에서 바벨탑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바벨탑을 세우고자 했던 궁극적인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유명해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서려는 교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이름은 영적 권위가 되지만, 사람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세울 때 그것은 하나님 자리를 넘보는 교만이 됩니다. 둘째는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연합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며, 마지막 때일수록 더욱 필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이 추구한 연합은 하나님을 중심에 둔 연합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력과 안전, 영향력을 영구히 고착시키려는 악한 연합이었습니다. 결국 바벨탑 사건의 핵심은 건축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자리한 교만입니다. 동쪽으로 이동한 인간의 영적 상태, 이름을 높이려는 욕망, 악한 의도로 이루어진 연합은 모두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시도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안에 여전히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나의 의와 나의 교만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나의 유익과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쌓아 올린 교만의 바벨탑을 허물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바벨탑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입니다.
[창]10: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창]10: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창]10: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창]10: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창]10: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10: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창]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창]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10: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10: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창]10: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창]10: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창]10: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창]10: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창]10: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창]10: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창]10: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창]10: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창]10:20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창]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창]10: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창]10: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창]10: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창]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창]10: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창]10: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창]10: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창]10: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창]10: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창]10: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창]10:32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오늘 본문은 노아 후손의 족보입니다. 홍수 이후 인류가 노아의 세아들을 통해 다시 번성하기 시작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육과 번성의 축복이 본격적으로 성취됩니다. "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오늘 족보에서 특이한 것은 노아 자녀의 순서는 셈, 함, 야벳인데 족보는 야벳, 함, 셈의 순서로 기록됩니다. 여기에 기록된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이면서 또한 지명과 국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먼저 2~5절에서 야벳의 자손을 소개하는데 이들은 3대에 걸쳐 모두 14명이 소개됩니다. 이들의 자손은 북쪽과 서쪽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주로 지금의 유럽과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지요. 둘째로 6~20절에서 함의 자손이 나오는데, 세 아들중 이들에 대한 설명이 가장 길게나옵니다 이들은 나일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주로 동북 아프리카에 해당하는 애굽과 에디오피아, 아라비아 일부와 앗수르등 남메소포타미아 지 역등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들이 나오는데 10절에서 시날 땅의 바벨, 11절에서 앗수르, 니느웨등이 있습니다. 8절 이하에서는니므롯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는데, 그는 세상의 첫 용사, 용감한 사냥꾼이라 합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께 반역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니므롯만이 아니라 함의 족속들이 하나님께 반역했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하나님게 반역하는 문화의 끝이 바벨탑인데 이 바벨이 이곳 함족속에게 있었지요. 21~31절에는 셈의 후손들이 나옵니다. 셈의계보는 6대까지 이르며 총26명이다. 셈의 후손들은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동쪽 지역으로 퍼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셈의 계보의 결론은 욕단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25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1)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1)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에벨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벨렉과 욕단이지요. 벨렉때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은 바벨탐 사건으로 언어와 인류가 분산된 사건을 말합니다. 26절부터는 욕단의 후손이 나오는데 벨렉의 후손은 나오지 않지요. 벨렉의 후손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11장에가면 바벨탑 사건 후에 다시 셈의 족보가 나오는데 그때 셈 – 아르박삿 – 셀라- 에벨 – 벨렉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벨렉의 후손은 르우-스룩-나홀-데라로 이어지지요. 데라는 바로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의 아버지였습니다. 셈의 족보의 결국은 아브라함이 되는 것이지요. 이제 그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구체화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느 야벳의 후손이 14명, 함의 후손은 30명, 셈의 후손이 26명이 되어 도합 70명이 됩니다. 여기서 70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상징하면서 온 인류를 말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지요. 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땅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들만의 역사가 아니지요. 이 안에는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계속됩니다. 그러니까 이 역사의 흐름은 항상 두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죄와 타락의 인간의 역사와 그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지요. 겉으로는 인간의 역사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이끌어가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 역사는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 마침내 완성될 것입니다. 물론, 이 하나님 나라 역사에서도 사람들이 핵심이며, 사람들을 통해 그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죄와 타락의 역사에 설것이냐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역사편에 설것이냐 하는 선택이지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 편을 선택하고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을 통해 마침내 하나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 가정이, 그리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그런 믿음의 사람되고 믿음의 가문,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 거룩한 발걸음을 걸어가는 올 한해 우리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창]9: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창]9: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창]9: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창]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창]9: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창]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9: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창]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9: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창]9: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큰 사건이 등장합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신의 하체를 드러낸 사건입니다. 22절을 보면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그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가서 다른 두 형제에게 알립니다. 개역개정을 보면 노아의 장막에서 밖으로 나간 후에 두 형제에게 찾아가 말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노아의 장막 밖에서 두 형제에게 찾아가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버지의 수치를 형제들에게만 은밀하게 알린 것이 아니라, 밖에서 그 사실을 언급함으로 노아의 허물을 들춰내는 행위였습니다. 함은 의도적으로 아버지이자 족장인 노아의의 허물와 수치를 드러내는 죄였습니다.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험담하는 이 일은 아버지인 노아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노아와 함 모두 하나님 앞에 연약한 존재인 것은 동일하지만, 노아는 의도적으로 지은 죄가 아닌 반면에 함의 경우, 노아에 대한 정죄와 조소가 담긴 소문을 퍼트림으로써 의도적인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볼 때, ‘함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 다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1장 말씀을 보면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한 죄에 대해 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죄를 지은 함은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고, 이와 반대로 셈과 야벳을 노아로부터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함의 경우, 함 대신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죄의 결과가 개인을 넘어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대물림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우리 주위에 그런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나 알코올 중독이었던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을 보면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경향성이 대물림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의도적으로 짓는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고 회개하며 죄의 경향을 끊어내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창]9: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창]9: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창]9: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창]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창]9: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창]9: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창]9: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창]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9: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9: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창]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9: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세기 1~11장의 주요한 흐름은창조-타락-홍수심판-바벨탑입니다. 6~10장까지가 홍수심판이야기입니다. 창8장 마지막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일먼저 한 것이 제단을 쌓고 재물을 번제로 드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자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땅이 계속될 것을 약속합니다. 9장은 그 약속이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먼저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말씀은 첫 장조때 주셨던 축복과 같은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홍수를 통해 새롭게 하신 세상에서 새로운 창조질서를 세우고 역할을 주시지만 그것은 처음의 것을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처음 시작한 하나님 나라가 결코 포기되지 않은 것이지요. 비록 사람들의 범죄함으로, 그리고 악함으로 창조세계가 함께 심판을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 계획에도 변함이 없지요.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이제 피조세계는 전체적인 조화가 깨어지면서 긴장과 대립의 관계가 되고, 이로 인해 모든 생명들 안에 두려움과 무서움이 생겨납니다. 그때 하나님은 인간을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우위에 두시지요. 하나님이 기대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그 권세를 바르게 사용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풍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를 기대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인간은 지배와 억압, 착취의 세상을 향한 욕망을 가질수도 있지요. 결국 인간의 바른 통치의 책임은 스스로를 절제하고 다스리는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알게 합니다. 3,4절을 보세요.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홍수 이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동물도 먹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십니다. 아마도, 홍수로 인해 채소나 열매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한계를 두시는데 그것은 동물을 먹되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지만 그것은 한계를 두고, 절제되기를 원하신 것이지요. 특별히 피를 금하신 것에서 두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 겁니다. 하나는 생명의 존중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함입니다. 함부로 피를 흘리지 말고, 피를 바르게 대함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거룩함을 잃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거룩함을 지키면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을 통해 이땅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언약을 통해 이를 공식화합니다. 노아와 그의 후손, 그리고 함께 한 모든 생물들과의 언약인데, 구체적으로 11절에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언약의 증거로 구름속에 무지개를 두십니다. 왜 하나님은 무지개를 구름속에 두셨을까요? 14절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땅을 덮을때에 무지개가 구름속에서 나타난다고 말씀하지요. 구름으로 땅을 덮는다는 것은 비가 내리려고 어두워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시는 바로 그때 무지개를 보게 하시는 것이지요. 적당한 각도에서 보면, 비가 온 후에는 언제나 무지개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하나님의 마음이지요. 그 마음을 품고, 주님이 주신 권세로 이 땅과 생명을 섬기는귀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2026년1월10일 특별새벽기도회 여섯째날 본문: 마태복음 5장 43-48절 제목: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설교자:장수현 목사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온라인 헌금 농협 100054-55-001851 (예금주 길가에교회) *계좌이체시 헌금을 구분해주시고 주민번호 뒷자리를 써 주세요. (예: 십일조헌금: 십+주민번호 뒷자리 주일헌금: 주+주민번호 뒷자리 감사헌금: 감+주민번호 뒷자리 선교헌금: 선+주민번호 뒷자리 예배장소: 예+주민번호 뒷자리)
2026년1월8일 특별새벽기도회 넷째날 본문: 마태복음 1:1~6절 제목:믿음의 계보 설교자:진현삼 목사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마]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마]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온라인 헌금 농협 100054-55-001851 (예금주 길가에교회) *계좌이체시 헌금을 구분해주시고 주민번호 뒷자리를 써 주세요. (예: 십일조헌금: 십+주민번호 뒷자리 주일헌금: 주+주민번호 뒷자리 감사헌금: 감+주민번호 뒷자리 선교헌금: 선+주민번호 뒷자리 예배장소: 예+주민번호 뒷자리)
2026년1월7일 특별새벽기도회 셋째날 본문: 창세기 4:1~9절 제목:예수 따름의 영성 설교자:오현준 전도사 [창]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온라인 헌금 농협 100054-55-001851 (예금주 길가에교회) *계좌이체시 헌금을 구분해주시고 주민번호 뒷자리를 써 주세요. (예: 십일조헌금: 십+주민번호 뒷자리 주일헌금: 주+주민번호 뒷자리 감사헌금: 감+주민번호 뒷자리 선교헌금: 선+주민번호 뒷자리 예배장소: 예+주민번호 뒷자리)
026년1월6일 특별새벽기도회 둘째날 본문: 마태복음 7:24~27절 제목:말씀위에 세운 인생 설교자:박혜경 전도사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온라인 헌금 농협 100054-55-001851 (예금주 길가에교회) *계좌이체시 헌금을 구분해주시고 주민번호 뒷자리를 써 주세요. (예: 십일조헌금: 십+주민번호 뒷자리 주일헌금: 주+주민번호 뒷자리 감사헌금: 감+주민번호 뒷자리 선교헌금: 선+주민번호 뒷자리 예배장소: 예+주민번호 뒷자리)
2026년1월5일 특별새벽기도회 첫째날 본문: 에베소서 4:15~16절 제목:그리스도 안에서 설교자:주기철 목사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창]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창]1: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1: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1: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1: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1: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단순히 하나님의 전능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창조자이자, 주권자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는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는 세상과는 다른 세계관을 취하도록 요구하며, 차원이 다른 삶으로의 초대라 할 수 있습니다. 창조를 언급하면서, 과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기원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청년들, 청소년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의구심을 가진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어떠한 영역에 대해선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거나 궁금한 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창조론, 진화론, 유신진화론 등등 다양한 신학적이고도 과학적인 접근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6,000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26년을 유대력으로 따지면 5786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찬 과학자들은 지구가 6,00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젊은 지구론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역사가 40~50억년 정도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요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복음의 이야기보다는 그 변두리에 있는 주제들을 궁금해 합니다. 오늘 읽은 창조 이야기라든가, 성경에 모순되어 보이는 말씀들, 술과 담배의 문제 등등 어떻게 보면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배경들을 우리가 이해하고 알고 있지만, 성경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영역들이 있지만, 성경은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생명에 관한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으로 이루어진 선한 역사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자이시고, 주권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증명이 되든, 안되든, 설득이 되든, 안되든지 간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창조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내용이지만, 첫째 날부터 짚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이 무엇을 창조하셨습니까? 빛, 궁창, 땅, 광명체, 물고기와 새, 동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어제 말씀인 창세기 1장 2절 말씀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고 말합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창조는 이 혼돈에 대한 창조라 할 수 있습니다. 혼돈을 몰아내고 생명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근원적인 빛이 있고, 궁창을 만들고, 땅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는 공허에 대한 창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근원적인 빛 가운데 해,달,별과 같은 광명체가 채워지고 바다와 하늘에는 물고기와 새가 채워지고 땅에는 동물과 식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혼돈과 공허 가운데 하나님의 질서와 충만이 세워지는 창조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광명체인 해, 달, 별을 신격화하여 숭배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바다 심연에 사는 동물이라든가, 악어, 고래 등등 거대한 생물들 또한 신으로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써만 위치하도록 합니다. 그저 인격이 없는 하나님의 작품일 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피조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작품과 솜씨에 감탄하며 감사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하나님께서 전능하다고 하시는데, 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왜 6일이나 걸린 것이냐?’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 그 6일이 우리가 이해하는 6일이 맞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6일이나 걸려 창조하시는데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한 가치를 있었다는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단순히 후르륵 읽고 넘어가야 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다시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살아가게 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자기 자신에 자신이 없고 무가치하다고 느껴질 때,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항상 이 창조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선한 손길에 감사하는 길가에 교회 성도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시]150: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50: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시]150: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시]150: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50편은 기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탄식으로도 끝나지 않지요. 찬양으로 끝납니다. 그 찬양이 웅장한 폭포와 같은 소리지요. 이는 단순한 문학적 마무리가 아니라, 인생이 결론, 신앙의 결론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는 설명되지 않는 날들이 있었고, 응답되지 않은 기도도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상실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지나 마지막에 남는 고백은 이것이지요,. “하나님은 여전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전체시편을 마무리하듯 한해의 우리의 삶을, 더 나아가 우리 인생 전체를 우리는 찬양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특히 시인은 찬양의 장소를 성소와 궁창이라고 말합니다. 성소는 성전안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지요. 하지만 실재 온 땅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지요. 그리고 궁창을 하늘이면서 하나님의 거처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온땅, 모든 곳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호흡이 있는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호흡이라는 것이 단순히 숨쉬기는 아니지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 자체이며, 거기에는 삶의 이유와 목적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호흡은 관계이며, 소통입니다. 함께 호흡한다는 것은 함께 리듬을 맞추어 걷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리듬과 속도로 걷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의 찬양은 이땅에서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호흡이 이땅의 삶을 마치는 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에 그곳에서도 찬양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잘되면 찬양하겠습니다.” “응답되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말합니다. 2절,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찬양의 근거가 우리의 환경,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능하고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지요. 3~5절은 어떻게 찬양해야 할지를 말합니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나팔, 비파, 수금, 소고, 춤추며, 현악과 퉁소, 큰 소리나는 제금, 높은 소리나는 제금...이 악기들은 서로 성격이 다릅니다. 밝은 소리도 있고 무거운 소리도 있으며 조용한 소리도 있고 울부짖는 듯한 소리도 있습니다 높은 소리도 있고 낮은 소리도 있습니다. 이는 한 해를 살아온 우리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웃음의 순간도 있었고 눈물의 순간도 있었고 말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가지 소리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소리를 원합니다. 그 모두가 함께 아름답게 어우러지면서 찬양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때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아름답게 드려질 것입니다. 좋을것만 아니라 아픔과 안타까움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지요. 또한 이 3~5절의 말씀이 마치 이땅의 삶을 다 끝내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때 천군천사가 우리를 맞이하는 거대한 축하송처럼 들립니다. 비록 지금 여러 가지 한계와 어려움이 가득한 이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결론은 이것이지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후회가 있어도, 눈물이 남아 있어도, 설명되지 않은 질문이 있어도올해의 마지막 말은 찬양이 되게 합시다. 우리가 모르는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우리가 설명하지 못한 어제를 찬양으로 올려드리며 호흡이 있는 오늘, 여호와를 찬양합시다. 이 찬양이 계속해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한해 한해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시]149: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시]149: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시]149:3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시]149: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시]149: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시]149:7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시]149: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시]149: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시편 149편입니다. 시편 1,2편은 첫 인사 부분이라면 149편과 150편은 나가는 말로 기능합니다. 시편 기자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하고 강조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 ‘149편, 150편’ 말씀을 묵상하실 때, ‘시편 기자가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말씀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묵상한 148편과 동일하게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이 납니다. 시편 기자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그 마땅한 일은 어디서 어떻게 하라고 권면합니까?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서 새 노래로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시편은 의인들의 모임에 대해 자주 언급합니다. 성도들의 모임, 의인들의 모임, 민족들의 모임, 거룩한 자들의 모임, 백성의 모임, 정직한 자들의 모임 등등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항상 모이기에 힘쓰라고 권면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모임의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가 자주 모이는 목적 또한 동일합니다. 주일예배, 아침마다 모이는 새벽기도회, 주중예배인 수요예배, 정원지기 모임 등등 우리가 모이는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모임들 가운데서 새 노래로 찬양한다는 것은 새롭게 만든 곡으로 찬양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찬양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취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시온의 주민들, 즉 하나님 백성들이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백성들로 인하여 기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절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들의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기쁨의 근거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미 충만에 거하시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신다는 진리가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합니다. 기쁨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생명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6편 11절입니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우리에게 생명의 길이 주어졌을 때,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증거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고양이 느껴지지 않아도, 우리의 영은 그렇게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하나님과 한 영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의 차원에서 임하는 기쁨으로 살아가며, 새 노래로 주님을 높이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시]148: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148: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시]148: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148: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시]148: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시]148: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시]148: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시]148: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시]148: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시]148: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시인이 오늘 시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찬양하라입니다. 할렐루야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구절에 찬양하라라고 외치지요. 1절, 하늘, 높은데서, 2절, 모든 천사, 모든 군대 3절, 해와 달, 밝은 별 4절, 하늘, 하늘위의 물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것들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지요. 그렇게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5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하나님이 창조주시이시기에 모든 피조물은 마땅히 찬양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피조물의 1차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찬양하다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할랄이라고 하는데 기본 의미는 "밝히다. 빛나다. 드러내다, 자랑하다"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밝히고, 빛나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자랑하고 빛나게 해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이 본모습을 가장 잘 드러낼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도 찬양에서 중요합니다. 바로 그것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찬양을 ‘제자리 찾기’라 표현했는데 참 멋진 말입니다. 나를 ‘조율’하여 원래의 자리, 원래의 소리로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시인은 계속 찬양하라고 선포하는데, 찬양에서 우리의 제자리 찾기, 조율은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지휘, 그분의 심포니에 맞추어 세우신 그 자리에서... 그때 우리 삶은 조율되고, 우리를 통해 아름다운 노래가 세상에 울려퍼지게 될 것입니다. 13절에서는 찬양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시편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 모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 각자의 모습으로..어떤 상황속에서도.. 시편 148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찬양을 노래로만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존재 자체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의 찬양자로 살고 있는가? 나는 찬양을 교회, 예배시간에만 한정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좋을때만 찬양하는 것은 아닌가? 찬양은 삶 전체, 모든 공간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어디서든 찬양해야 하고 모든 순간 찬양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모습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그곳에서 더욱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찬양자 로 살아가시길 부탁드립니다. 한해를 찬양으로 마무리하고 그 찬양가운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미]7:1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미]7:2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미]7:3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미]7:4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미]7:5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미]7: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미]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미]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미]7: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미]7:10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미]7:11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미]7:12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미]7:13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미가선지자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바라보며 “재앙이로다” 라고 탄식합니다. 현재 남유다의 상황이 여름 과일을 딴 후, 포도를 거둔 후 같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황량하고 절망적인지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경건하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기에 무리가 다 매복해서 형제를 그물로 잡으려고 하는 납치와 폭력이 난무하고, 각자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형제를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는 흉악한 범죄가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 보다 더 할 만큼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아프게 하고 찔렀습니다. 그래서 선하고 정직한 자라고 생각하여 갔다가 도리어 찔림을 받는 일들이 일어났고 이 일은 결국 신뢰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웃도, 친구도, 더 가까운 아내도, 가족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서로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탐욕과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이웃과의 관계도 깨뜨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어떠한 소망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미가선지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것처럼 공의와 정의가 무너지고, 약한 자들이 힘없이 당하는 상황에서 그래서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가선지자는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선포합니다. 아무리 고개를 둘러보아도 절망외에는 어떠한 것도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눈을 들어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바라보자 보이지 않았던 소망이 넘쳐났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그리스도인입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절망의 자리에서 소망의 노래를 부르고, 감사를 드리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상황을 바라보고,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희안한 일은 아무 것도, 더 이상 어떤 것도 소망이 없을 때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결단할 때에 현실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소망을 품게 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18절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고백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공의와 정의가 사라지고, 아무리 외쳐도 전혀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미가 선지자처럼 오직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백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어둠 가운데서도 빛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붙들 수 있는 나의 하나님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황폐한 땅 한 가운데서, 절망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노래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미]6: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미]6:2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미]6: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미]6: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미]6:5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미]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미]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미]6:10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미]6: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미]6:12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 [미]6:13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으며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 [미]6:14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미]6:15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미]6:16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오늘 본문에서는 소송재판 형식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합니다. 당시는 앗수르 제국이 급속히 팽창하던 시기로, 북이스라엘은 곧 멸망에 이르고 남유다도 강한 정치, 군사적 압박속에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내부적인 상황이지요. 심각하게 병들어서 치유와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오늘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지금 하나님게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걸까요?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하나님께서 언약 소송의 자리에서자기 백성을 향해 던지는 가슴 아픈 질문입니다. 단순한 책망을 넘어 사랑하는 관계가 깨어졌을 때 나오는 호소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면서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는지, 내가 너희에게 악을 행한 적이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런 적이 없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짐으로 여겼지요.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던 일 구원의 역사를 다시 생각나게 하십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애굽에서 속량하고 구원하셨음을 말하고, 5절에서 모압왕 발락과 발람의 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당시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인식하지 못할때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부분만 알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때도 은혜를 베푸신 것을 다 알지 못하지요. 그래서 원망과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은혜이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변론앞에서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미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6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사실 이것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진지한 고민이 되어야 하지요. 오늘 하루 이 질문과 고백을 계속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미가는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번제물인 송아지도 아니다. 천천의 숫양, 만만의 기름도 아니다. 심지어 나의 맏아들을, 내 몸이 열매를 드리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많은 것, 소중한 것을 드릴지라도 이땅의 물질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미가선지자는 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 인자를 사랑하는 것,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가지는 항상 함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결국 내 생각에 옳고그름을 판단하고 따른 다는 것이 아니라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지요. 기계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자함으로, 긍휼함으로, 사랑으로,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면 무엇이 될까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의 인자이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지요. 어제 성탄을 보냈습니다. 성탄은 우리를 위해 하늘보좌에서 이땅에 성육신하신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이제 성탄 이후에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지요. 그러므로 성탄 이후의 우리의 삶 또한 그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하지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성탄 이후의 삶이 이러한 삶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미]4: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미]4: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미]4: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4: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미]4: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미]4: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미]4:7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미]4: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미]4: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미]4: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미]4:11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미]4:12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미]4:13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무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네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미]4: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선지자들은 미래를 말할 때 훗날에, 끝날에, 그날에, 여호와의 날에이런 특정 부사구를 씁니다. 이것들이 마지막때를 가리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꼭 마지막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구약성경은 내세나 개인적 종말론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하면서 그 날을 소망하는 것이지요 오늘 1절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끝날에 이르러는 ..." 그날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미래의 한 시점으로, 언젠가 하나님이 인류 역사속에서 실현하실 시온의 회복을 기대합니다. 비록 현재는 그렇지 않고 시온은 파괴되겠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통치는 유효하며 장차 왕으로 오셔서 직접 통치하실 것임을 믿는 것이지요. 그 마음으로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그런데, 1절의 민족들, 2절의 많은 이방 사람들, 3절의 많은 민족들, 4절의 각 사람, 5절의 만민.. 이런 단어들은 시온의 회복이 온 인류를 포함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시온을 향해 나아가며 와서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라고 서로 권면합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2절 중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 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그의 도를, 율법을,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시시고 우리는 그의 길로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땅을 회복시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율법이고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또, 3절 전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하지요.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놀라운 것은 보통은 하나님의 심판과 판결을 말하면 파괴를 말합니다. 그런데 3절과 4절에서는 그 심판의 결과가 전혀다릅니다. 전쟁이 그치고 놀라운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되는 모습이지요. 6절이하에서도 ‘그날에는’ 이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그 회복의 날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7절 하반절을 보니까나 여호와가 시온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겠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회복은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문제는 뭘까요? 아직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미가는 계속해서 이 두가지를 대조하면서 보여줍니다. 지금 현실과 그날에 이뤄질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지요. 지금은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미가의 예언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가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우리의 죄악때문이며, 그 죄악에 대한 책임때문이지요. 그 아픔과 책임은 이땅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복은 반드시 오지요. 그 회복은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전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임한다는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 다스시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지금까지 자신의 말과 약속을 지켜오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그날이 올 것을 믿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오늘을, 평화가 없고, 안타까움 가득한 이땅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지요.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단지 현재의 문제만을 해결받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 마음과 삶에 그날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우리가 감당 하지만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런 삶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루실 그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곳에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요. 우리의 발은 이땅에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날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미]3: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미]3: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미]3: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미]3:4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미]3: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미]3:6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미]3:7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 [미]3: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3: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미]3: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미]3: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미]3: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오늘 미가서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들과 선지자를 향한 심판의 말씀 입니다. 미가 1-2장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상에 대해서 고발 했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통치자들과 선지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기록 되어 있습니다. 나라의 죄 악에 대해 고발 하는 미가서의 내용이 통치자와 선지자로부터 시작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위정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들과 선지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 하는 백성들 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 하나님의 아들 딸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1.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정의롭게 일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1절) 본래 하나님은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들의 본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정의롭게 살아가지 못할까요?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2-3절)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5절) 나에게 당장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에 현혹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나에게 당장 이익이 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11절)" 많은 간증들은, 나의 상황이 좋아지고, 나아진 것을 나누며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우리의 상황이 좋아지고 나아지는 것도 너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면서 낙심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위해 어두운 터널을 굳건히 지나가는 것. 악한 세상가운데에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 또한 기적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6절) 2.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살아가는 것은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속에서 어떻게 정의롭게사는것이 가능할까요? 선을 행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는 것.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8절)" 그것은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가능합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 어두운 세상가운에서 하나님의 뜻과 통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케 되어서, 서로의 살을 뜯어 자신의 성을 세우는 이 세상속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십자가의 여정을 아름답게 걸어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미]2:1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미]2: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미]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미]2:4 그 때에 너희를 조롱하는 시를 지으며 슬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하리니 [미]2:5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분깃에 줄을 댈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으리라 [미]2:6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미]2:7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유익하지 아니하냐 [미]2:8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미]2:9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미]2:10 이것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니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미]2:11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미]2:12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미]2:13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소예언서 미가는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유다와 이스라엘 모두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두 나라 모두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인 미가 2장은 유다의 죄를 집중적으로 지적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사회적 타락,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가 핵심 주제입니다. 2절입니다. 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탐욕에 빠져 백성들의 땅과 집을 빼앗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며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분배하신 땅입니다. 가난의 이유로 땅을 팔아야 하더라도 친족이 대신 사서 되찾아주거나 희년이 되면 땅을 다시 돌려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백성의 생계를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유랑자가 되고, 심지어 같은 민족이 노예로 전락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는 지도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 또한 참 선지자들을 막고 백성에게 듣기 좋은 말만 전했습니다. 6절입니다. 6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거짓 선지자들도 참 선지자들을 향해 예언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그들은 백성들의 귀에 좋은 말만 전합니다. 돈을 낼 수 있는 여유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하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탐욕에 물든 정치지도자들과 거짓을 전하는 선지자들. 이에 따른 결과는 무엇입니까? 3절입니다. 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의 심판이 임합니다. 재앙의 때가 임하였음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무엇입니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힘을 가진 이들이 약자의 삶을 짓밟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공의란 공평과 정의의 합성어인데, 이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법적인 보호와 더불어 사회적 관계망에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며 사랑을 베푸는 일이 바로 공평과 정의입니다. 이 미가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엄중히 받아들이고, 또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은혜 또한 깊이 묵상하는 한 주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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