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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혜화동에는 55년이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화이용원이 있다.
17살 때 이용원과 인연을 맺어 올해 75세가 된 지덕용 씨가 이용원 주인이다.
지 씨는 어릴 적 문화이용원으로 이발하러 다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너 이발 한번 배워볼래?"라는 당시 주인의 말에 이발을 배우게 됐다.
지덕용 씨는 해가 다르게 나빠지는 건강 탓에 이용원 일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용원을 찾는 손님이 있는데 문을 닫으면, 이는 오랜 세월 자신을 찾아 준 손님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특히, '내가 죽기 전에는 문을 닫으면 안된다'던 어떤 손님과의 약속을 외면할 수 업었다.
힘이 닿는 데 까지는 계속해서 가위를 잡기로 한 지 씨...
문화이용원에는 앞으로도 더 많은 추억이 쌓이게 됐다.
만화백서4 - 이젠 웹툰이 대세...'미생' 윤태호 작가
불황인 출판만화 시장과 달리 웹툰 시장은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비결은 누가 뭐라 해도 작가와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19년차 만화가인 윤태호 작가. 2008년 '이끼'로 웹툰 시장에 완벽하게 상륙한 그는 최근 직장인의 삶의 애환을 담은 '미생'이란 작품으로 네티즌 평점 1위 웹툰을 연재 중이다. 윤 작가는 기존의 웹툰 작가들과 달리 코믹북에서 만화를 시작해 웹툰으로 넘어온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허명만 화실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야후'와 같은 작품으로 출판만화에 잔뼈가 굵은 윤태호 작가가 웹툰 시장으로 넘어온 이유는 무엇이며 그의 성공 비결은 어떤 것이었을까? 대한민국 대표 만화시장으로 성장한 웹툰 산업에 대한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노컷V가 들어 봤다. [기획/제작 : 박기묵 김원유 기자]
만화백서3 - 해학과 풍자의 미학...'수타만평' 권범철 작가
만화책에 얼굴을 파묻고 낄낄거리고, 신문 속 만평을 보며 속이 후련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만화산업은 책을 넘어 캐릭터 산업, 인터넷 속으로 들어와 있다. 딱딱한 책보다 작은 웃음이 필요할 것 같은 가을. 노컷V는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을 만나 작가의 삶과 만화산업 이야기를 나눠봤다.[편집자 주]
한국 만화의 효시가 시사만화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09년 6월 2일 창간 한 대한민보에 이도형 화백이 그린 '삽화'가 오늘날의 모든 만화산업의 시작이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바로 전이었던 만큼 만화는 치열하게 권력에 저항했다. 그리고 그 '까칠한' 저항의 역사를 이어 온 것이 바로 시사만화이다.
자신을 매일 등판해야만 하는 '선발투수'라 말하는 올해 12년차 시사만화가 권범철 작가.
시사만화는 그만큼 신문 지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미디어시장이 시작되면서 언론이 시사만화에 대한 수요를 줄여가면서 침체기에 빠져있다.
해학과 풍자의 미학을 담은 시사만화로 우리를 웃고, 눈물 흘리게 만드는 그에게서 한국 시사만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기획/제작 : 박기묵 김원유 기자]
만화백서2 - 한국만화 캐릭터 산업의 거장 '둘리' 김수정 작가
1982년 10월 '보물섬'이란 두꺼운 월간 만화잡지가 출간됐다. 만화에 대한 심의와 검열 등 제약이 많았던 시기에 보물섬의 출간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육영재단의 운영을 위한 정치적 산물로 발간됐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만화가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그리고 이듬해, 공룡을 만화로 한 '아기공룡 둘리'가 보물섬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1983년 태어났으니, 둘리의 나이는 올해로 꼭 서른이다.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둘리의 인기 비결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어서인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둘리는 연재된 후 바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연말에 바로 상품화되기 시작했다. 팬시 산업, 의류 산업, 문화 산업에 이르기까지 둘리 캐릭터를 이용한 회사만 수천 곳이 넘었다. 앞서 단편적으로 한국만화 캐릭터를 상품화 시킨 사례는 있었지만, 둘리처럼 다방면에 지속해서 활용된 캐릭터는 없었다. 한마디로 둘리가 만화 캐릭터 산업의 새로운 물고를 튼 것.
그렇게 김수정 작가가 애지중지 키운 둘리의 나이가 어느덧 서른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둘리 캐릭터도 '보물섬 둘리', 'KBS 둘리', '교육용 둘리'로 세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이에 따라 어떤 둘리가 진짜 아기공룡 둘리인지 논란도 거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둘리를 사랑하고 있다.
한국 대표 만화 캐릭터로 자리 잡은 둘리. 김수정 작가에게 서른 살 둘리의 재미난 제작 일화와 한국만화 캐릭터 산업의 현주소를 들어보았다.
[기획/제작 : 박기묵 김원유 기자]]
만화백서2 - 한국만화 캐릭터 산업의 거장 '둘리' 김수정 작가
만화책에 얼굴을 파묻고 낄낄거리고, 신문 속 만평을 보며 속이 후련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만화산업은 책을 넘어 캐릭터 산업, 인터넷 속으로 들어와 있다. 딱딱한 책보다 작은 웃음이 필요할 것 같은 가을. 노컷V는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을 만나 작가의 삶과 만화산업 이야기를 나눠봤다.[편집자 주]
1982년 10월 '보물섬'이란 두꺼운 월간 만화잡지가 출간됐다. 만화에 대한 심의와 검열 등 제약이 많았던 시기에 보물섬의 출간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육영재단의 운영을 위한 정치적 산물로 발간됐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만화가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그리고 이듬해, 공룡을 만화로 한 '아기공룡 둘리'가 보물섬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1983년 태어났으니, 둘리의 나이는 올해로 꼭 서른이다.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둘리의 인기 비결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어서인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둘리는 연재된 후 바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연말에 바로 상품화되기 시작했다. 팬시 산업, 의류 산업, 문화 산업에 이르기까지 둘리 캐릭터를 이용한 회사만 수천 곳이 넘었다. 앞서 단편적으로 한국만화 캐릭터를 상품화 시킨 사례는 있었지만, 둘리처럼 다방면에 지속해서 활용된 캐릭터는 없었다. 한마디로 둘리가 만화 캐릭터 산업의 새로운 물고를 튼 것.
그렇게 김수정 작가가 애지중지 키운 둘리의 나이가 어느덧 서른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둘리 캐릭터도 '보물섬 둘리', 'KBS 둘리', '교육용 둘리'로 세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이에 따라 어떤 둘리가 진짜 아기공룡 둘리인지 논란도 거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둘리를 사랑하고 있다.
한국 대표 만화 캐릭터로 자리 잡은 둘리. 김수정 작가에게 서른 살 둘리의 재미난 제작 일화와 한국만화 캐릭터 산업의 현주소를 들어보았다.
[기획/제작 : 박기묵 김원유 기자]
만화백서1 - 만화책은 죽지 않았다. 다만 진화할 뿐!
만화책에 얼굴을 파묻고 낄낄거리고, 신문 속 만평을 보며 속이 후련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만화산업은 책을 넘어 캐릭터 산업, 인터넷 속으로 들어와 있다. 딱닥한 책보다 작은 웃음이 필요할 것 같은 가을. 노컷V는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을 만나 작가의 삶과 만화산업 이야기를 나눠봤다. [편집자 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현세(56) 씨는 함박웃음으로 인터뷰를 온 손님을 맞아 주었다. 월남전을 다룬 '저 강은 알고 있다'로 1979년 만화가로 정식 데뷔한 그는 이제 30년 차 작가다.
'까치' 캐릭터와 함께 1982년 발표한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한국 만화계의 한 획을 그으며 인기 만화가로 우뚝 선 이현세 작가. 대학 강의를 병행하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만화를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이현세 작가에게 그의 만화 이야기와 한국 만화산업 현주소를 들을 수 있었다.
[기획/제작 : 박기묵 방기열 기자]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은 인간이 태곳적부터 줄곧 간직해 온 꿈이다.뉴질랜드 출신 베이스점퍼(BASE Jumper) 존 척 베리(46)는 지난달 27일 강원도 양양군 낙산해수욕장 하늘에서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해 보였다.척 베리는 이날 2,000미터 상공의 경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좌우로, 그리고 위아래로 마음껏 창공을 누비다 낙산 해변에 가뿐하게 내려앉았다.물론, 척 베리가 맨몸으로 비행을 한 것은 아니다.사지를 활짝 펼치면 날다람쥐를 연상시키는 '윙수트'와 낙하산이 척 베리가 하늘을 날기 위한 필수 장비다.윙수트는 겨드랑이와 다리 사이에 천을 덧댄 것으로, 공기 저항 만으로 하늘을 날면서 역동적인 비행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낙하산을 이용해 공중에서 내려오는 게 대수롭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낙하산은 지상과 충돌하기 직전인 고도 불과 100미터쯤에서야 펼쳐진다.까딱 잘못해 고도 100미터를 지나 80미터 아래로 떨어지면, 이때는 낙하산을 펼쳐도 아무 소용이 없고 바로 죽음으로 이어진다.17세 때 스카이다이빙을 시작으로 패러글라이딩, 초경량 항공기 조종 등 각종 공중 스포츠를 섭렵한 척 베리가 난도가 가장 높은 공중 스포츠로 베이스점핑을 꼽는 이유다.베이스점프는 빌딩(Building), 공중(Antennas), 교각(spans, bridges), 절벽(earth, cliffs) 등 뛰어내릴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뛰어내리는 익스트림 스포츠다.척 베리는 26년 동안 6,000회 이상의 베이스점핑 기록을 가진 베테랑이다.6,000회 이상 점핑 기록이 웅변하듯 척 베리에게 베이스점핑은 더 이상 어떤 긴장감도 주지 못한다.척 베리는 "이제는 점핑을 할 때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할지가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한다."중력도 문제가 되지 않고 그냥 새처럼 날아가는 하늘 경험은 정말 경이롭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더 아름다운 눈을 갖게 된다." 척 베리의 베이스점핑 예찬이다.'베이스점프를 배우려면 기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스카이다이빙부터 익혀야 한다'는 게 '인간 날다람쥐' 척 베리의 조언이다.이번 낙산에서의 베이스점프는 척 베리가 한국에서 행한 첫 점핑이다.척 베리는 원래 한국에서의 첫 점프 장소를 설악산 울산바위로 기획했다.하지만 사전 답사에서 '암석 구조가 울퉁불퉁한 데다 나무가 너무 많아 착륙 지점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져 울산바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척 베리는 "베이스점프와 패러글라이딩, 초경량 항공기 등을 이용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며 "하늘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다"고 강조했다.
픽시(Fixed gear bike)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다. 픽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 위험한 자전거, 나쁜 자전거로 알려진 것도 사실.
하지만 이런 아슬아슬한 자전거 타기를 즐기며 대회까지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픽시 마니아 김광현(28) 씨다.
픽시 자전거에 대해 묻자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타는 것이다. 오버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의식하는 듯 했다.
픽시 자전거란 여러 개의 기어가 부착돼 있지 않고 고정된 하나의 기어로 페달을 구르는 방향에 따라서 앞으로 또는 뒤로 움직임이 가능한 자전거다. 미국의 메신저들이 경륜 자전거를 개조해 타고 다닌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미국, 유럽 등지에서 자유와 친환경을 상징하는 자전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픽시 자전거 타기는 크게 주행과 묘기로 나뉜다. 김광현 씨는 몇 년 전부터 순전히 묘기를 위해 만들어진 픽시 프리스타일을 즐기고 있다. 지난해에는 픽시 자전거로 묘기를 부리는 서울트릭잼 대회에서 우승을 차기하도 했다.
"픽시도 익스트림 스포츠의 하나다. 기술을 익히고 늘려갈 때 기분이 좋다."
픽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해마다 늘고 있으나, 묘기를 즐기는 픽시 프리스타일 인구는 아직은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즐기는 대회다 보니 올해는 대회 자체도 사라질 뻔 했다. 하지만 그는 자전거 관련 업체들을 직접 찾아 다니면서 다시 픽시 자전거 대회를 열수 있는 후원을 받아냈다. 특히 모 음료회사로부터는 이번 대회 우승자에게 미국에서 열리는 픽시대회에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얻어냈다.
"자전거 타기는 취미로도 문화로도 정말 좋은 스포츠다."
자전거 마니아에서 자전거 전도사가 된 그는 자전거 예찬론을 펼치면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스파이더맨처럼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벽을 타는 여자. 영화나 TV에서나 나올 법한 기술을 거리에서 즐기는 김혜민(27) 씨.
그녀가 즐기는 이 스포츠는 우리나라에 야마카시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명칭은 파쿠르(parkour) 또는 프리러닝(free running)이다. 영화 '야마카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스포츠 이름을 야마카시로 잘못 알고 있다.
파쿠르에 흠뻑 빠져있는 그녀의 직업은 청소년 상담사.
어린 시절 자신도 왕따의 아픔을 겪었던 그녀는 고등학생 때 이미 방황하는 10대들을 위한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왕따 지킴이'로 주목을 받아온 그녀가 파쿠르를 즐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벽을 뛰어넘는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를 찾았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어요. 청소년들을 상담할 때 보면 아이들에게 다 장애물들이 있어요. 그러나 벽을 넘거나 새로운 기술을 연마했을 때 큰 성취감이 있었고, 이런 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어요."
2007년 우연히 파쿠르를 접한 그녀는 그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김해에서 매일 같이 벽을 오르고 매달리는 연습에 매진했다. 벽을 타고 담을 뛰어넘으면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모여있는 아이들을 보다 가까이서 보게 됐고, 아이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오늘도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을 백설공주로 풍자한 포스터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하(본명 이병하·44) 작가.
그는 지난 6월 28일 새벽 문제의 포스터를 부산 거리에 부착했다는 이유로 부산진구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고발돼 검찰 조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작가는 이미 지난 5월에도 서울 연희동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포스터를 붙이다 현장에서 연행돼 유명세(?)를 탄 바 있는 팝아티스트다.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개관식 행사를 몇 시간 앞둔 지난 17일 오후. 7층 전시관에서 만난 이 작가는 마지막까지 작품 전시 상태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비록 문제가 된 두 작품(전두환 전 대통령 및 박근혜 의원 포스터)을 이번에 전시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해당 조항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의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공공건물훼손, 불법광고물 부착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이번 퍼포먼스는 예술가의 작품 활동 가운데 한 부분이지, 정치적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문을 열었다. "팝아트는 누구나 선호하는 인물을 쉽게 표현하는 대중 예술인 만큼, 유머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
그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의 얼굴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너무 예민하다"며 최근의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예술가가 사회적 의식을 담아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해야 되는 것이며, 범죄행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후대 예술가들이 더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식재판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하 작가의 작품들을 관람한 시민들 대다수는 이같은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대학생 주원일(21·광주광역시) 씨는 "이번 작품을 표현의 자유로 보는 것이 맞다"고 평가했고, 동료 예술가인 류일선 작가 역시 "작가는 두려움보다는 창의적 생각으로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맞다"고 응원했다.
'독사과 든 박근혜 공주' 포스터 건은 지난 20일 부산지검으로 송치돼 검찰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이에 따라 예술가의 창작 및 표현의 자유 침해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기획/제작 : 정영혁 박기묵 기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민초들의 의복 문제 해결에 크게 이바지한 문익점.
파도를 타는 서퍼이자 직접 서핑보드까지 제작하는 '셰이퍼' 유경호(40) 씨는 국내 서핑계에서 문익점과 같은 인물로 통한다.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서핑 선진국의 보드 제작 기술을 어렵사리 익혀 우리나라 서퍼에 적합한 보드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서핑보드는 셰이퍼 스타일에 따라 소재가 결정되고, 제작 공정도 셰이퍼에 따라 제각각이다.
외국 셰이퍼들이 자신의 보드 제작 노하우를 다른 이에게 전수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유경호 씨는 "내가 타는 보드를 내 스타일에 맞게 만들고 싶어, 손재주만 믿고 독학으로 셰이핑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가끔 외국에 나갈 때 현지 셰이퍼들에게 물어보거나, 유튜브를 통하는 게 유 씨가 보드 제작 기술을 습득하는 방안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정보는 전체 보드 제작 공정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는 게 유 씨가 토로하는 지난날의 고충이다.
유 씨는 셰이퍼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뛰어난 서퍼다.
대한민국 서퍼 1세대 격인 유 씨는 이미 지난 94년부터 서핑을 접했고, 한때는 좋은 파도를 찾아 외국 해변을 오가며 서핑에만 푹 빠져 3년여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유 씨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셰이핑을 할 수 있다"며 "파도를 많이 타보지 않은 사람이 보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친한 후배와 함께 운영하는 보드 제작 작업실을 강원도 양양에 둔 이유도 서핑과 셰이핑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유 씨 작업실에서는 보드 제작 과정이 100%로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보드 한 장을 만드는 데 보통 닷새에서 엿새 정도가 걸린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일감이 밀릴 때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작업을 할 때도 많다.
파도가 밀려올 때 잠시 일손을 놓고 서핑을 즐기는 게 유 씨가 고된 작업에 따른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날리는 방법이다.
이따금씩 자신이 만든 보드를 갖고 있는 서퍼를 해변에서 만날 때면 유 씨는 기분이 묘해진다.
"특히, 각종 서핑 대회에서 내가 만든 보드를 탄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공연히 미안한 마음까지 생긴다"고 유 씨는 말한다.
거꾸로, 유 씨의 보드로 대회 참가 선수가 좋은 성적을 올리거나, 일반 서퍼가 유 씨의 보드에 올라 멋들어지게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볼 때는 유 씨의 기분도 한껏 좋아진다.
유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서핑을 해 왔다"며 "앞으로는 서핑보다 셰이핑에 더 미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회의 우승은 비보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비보이(B-boy) 세계 정상을 향한 춤꾼들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오는 12월 레드불 BC ONE 세계 파이널 대회(세계 비보이 대회)를 앞두고 지난 2일 한국대표 선발전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 날 대회에서 우승한 김기헌(29) 씨. 그는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비보이들의 꿈이다. 또한 우승자는 힙합, 춤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산 넘어 산"이라며, "한국대표지만 9월에 있을 아시아 지역 예선 우승자만이 브라질에서 열리는 최종 파이널에 진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드불 BC ONE 대회는 전 세계 4대 비보이 대회의 하나로, 팀 배틀 형식이 아니라 일대일 배틀로 우승자를 가리는 개인대회다.
춤 때문에 고등학교도 그만뒀다는 그는 주변의 걱정스런 반응을 수많은 세계대회 우승으로 말끔히 날렸지만 그 우승은 혼자가 아닌 팀원들과 함께 만들었던 것. 그에게는 아직까지 개인 우승 타이틀은 없다.
그는 "예전에 몇 번 개인전에 출전했다. 하지만 그 때는 각오만 앞섰고 연습도 많이 안 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들을 다 무시하고 처음 대회에 출전하는 마음으로 도전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국제대회 때마다 태극기를 가지고 다녔다"며 "마음속으로 겸손하게 한국대표로써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오는 12월 브라질 리오에서 열리는 세계 파이널 대회를 위해 전세계에서 현재 예선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9곳에서 예선전을 펼친 뒤 오는 9월 뉴질랜드에서 아시아 대표를 뽑을 예정이다.
"안녕? 내 이름은 턱돌이야. 바쁘지 않다면 내 야구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나의 또다른 이름은 길윤호. 올해 서른 살인 나의 어릴 적 꿈은 야구 선수였어. 그래서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군산상고에서 투수로 꿈을 키워오고 있었지. 유명 구단에서 내 프로필을 적어가기도 했어.
그런데 연습도중 손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어. 아니나 다를까 어깨까지 다쳤지. 야구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나버렸기에 너무나 힘들었어.
하지만 야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무작정 서울 잠실에 있는 야구장에 달려가 경기를 하던 야구 응원단에서 북을 치게 해 달라고 했어. 그런데 마스코트란 일이 너무 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응원단장님께 마스코트를 하게 해 달라고 졸랐지.
다음 시즌 난 정말 마스코트가 됐어. 그런데 쉬울 줄 알았던 마스코트 일이 너무나 힘들었어. 첫 세 경기 동안엔 세상에 있는 동물이란 동물의 욕은 다 들었던 것 같아. 모두들 나에게 화를 내고 그만두라고 했어.
그 순간 오기가 생겼어. 캠코더를 빌려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른 마스코트들이 어떻게 응원하는가 모니터하기 시작했어. 그들은 악수를 어떻게 하는지. 응원은 어떻게 하는지. 모든 것을 관찰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지. 많이 힘들었지만 덕분에 마스코트로 한걸음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됐어.
그러던 중 넥센 히어로즈 마스코트로 활동할 수 있게 됐어. 처음 본 넥센의 마스코트 캐릭터 '히어로'는 너무나 강렬했어. 다른 구단 마스코트가 귀엽고 편한 이미지라면 히어로의 이미지는 너무 강했지.
그래서 난 조금 더 코믹하게 만들기로 했어. 턱을 조금 더 빼고, 진한 눈썹으로 꾸몄지. 그런 나를 팬들은 '히어로' 대신 '턱돌이'라 부르기 시작했어. 그렇지만 너무 강한 턱돌이 이미지 탓에 사람들에게 미움도 많이 받았어. 아이들은 무섭다고 나를 피하고, 어른들은 못생겼다고 소리치기도 했어.
하지만 나 굴하지 않고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매일같이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였어. 난 특이하게도 홈팬이 아닌 상대팀 팬들에게도 기쁨을 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 처음엔 구단에서 지적도 많이 받았지만, 두 번째로라도 사랑받는 팀이 되기 위해 그런다고 하니 모두들 이해해 줬어.
가끔은 여성 시구자들에게 변태(?)같은 퍼포먼스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해. 몇몇 열성적인 팬들은 악성 댓글도 서슴지 않지. 하지만 난 괜찮아. 이것도 팬들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니까.
다만 이 모든 퍼포먼스가 즉흥적인 게 아니란 점만 알아줬으면 해. 내가 직접 여성 시구자를 섭외하고, 함께 퍼포먼스를 짜고, 그리고 경기에서 재미있게 연출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야.
우리 모두 승리에 집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함께 야구를 즐기는 분위기가 됐으면 해.
나 턱돌이가 그런 기쁨을 여러분에게 선물해 줄게. 난 마스코트 턱돌이니까. [기획/제작 : 정영혁 박기묵 기자]
"파도를 걷는 느낌이에요!"
보드 하나에 몸을 맡긴 채 바다 위를 걷는 '서핑'에 푹 빠진 박승희(여, 26) 씨. 그녀는 국내 서핑 대회에서 상위권 순위에 올라있는, 몇 안되는 국내 여성 프로 서퍼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한 종류인 서핑은 TV광고나 외국 영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이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크게 늘고 있다.
"처음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탔죠. 하지만 부상으로 발목에 철심을..."
부산 출신의 그녀는 스케이트보드 부상 후 지인을 통해 서핑이란 것을 접하고 무작정 서핑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파도가 있는 날이면 직장 나가기 전에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바다로 달려가 서핑을 했죠. 그리고 소금기 있는 머리로 출근을 했는데...원장님이 싫어하시더라고요."
당시 간호사로 근무했던 그녀는 좀 더 많은 연습과 대회 출전을 위해 근무하던 병원마저 그만두고 서핑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한국에서 세계대회가 열리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오는 6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JEJU OPEN 서핑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에, 그녀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전 세계의 ASP (국제 프로 리그부)에 소속된 외국인 선수들만 참가하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타보지 않으면 느낌을 알 수 없어요."
그녀는 파도가 가장 높은 높이의 모양을 만드는 순간 동물적 감각으로 보드를 밟고 일어선다. 이 순간에 대해 그녀는 절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타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서핑은 아직 시작 단계. 서핑을 가르쳐 주는 곳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많지 않다. 그녀 역시 정식으로 서핑을 배우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하지만 후배들에게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서핑을 향한 그녀의 꿈이 바다만큼 넓고, 파도만큼 높다.
"자폐장애인들은 재활과 독립이 중요합니다. 이곳에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이 일을 시작한 이후 조금씩 변화되고 있습니다."
자폐2급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직접 사회적 기업 래그랜느를 지난 2010년 설립, 자신의 아들 이외에도 세 명의 장애인들을 제빵사로 만든 남기철(60) 씨.
남씨는 또,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특별한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살면서 아이를 데리고 콘서트장 한 번 가볼 수 없었어요. 이번만큼은 아이들이 공연장에서 실컷 놀고, 부모들은 아픔을 날려버렸으면 해요."
특히 자폐2급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들이 치료를 위해 배웠던 색소폰을 500명의 관객 앞에서 연주할 예정이기에 남씨의 마음은 더욱 들떠있다.
"우리 아이는 악보를 보기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귀로 듣고 음악을 외우며 매일 연습하고 있어요."
남씨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고 했다.
"원래 장애인의 날이란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눴기에 만들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평상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았다면 장애인의 날 이란 것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이제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 정상들이 서울에 모여 핵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던 그 시간, '핵무기 없는 세상'을 외치며 26일과 27일 이틀간 1인 시위를 벌인 이가 있다.
주인공은 올해 열네 살의 한국계 미국인 조너선 리(한국명 이승민).
"핵무기로부터 한반도 평화를 지키면서 DMZ 내 남북 어린이 만남의 장소 설치를 호소하기 위해, 또 굶주린 북한 아이들에 대한 더 많은 식량 지원과 평화적 남북 통일을 위해 나왔습니다."
열 살에 '고 그린 맨(Go Green Man)'이라는 환경 만화를 그렸고, 이후 세계청소년환경연대(I.C.E.Y)라는 단체를 만들어 환경의 소중함을 알려왔다.
환경운동에서 평화운동으로 지평을 넓힌 소년은 북한을 직접 방문해 '남북한 어린이 평화의 숲' 조성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도라산 평화 공원에 'DMZ 어린이 평화숲'이 조성되는 절반의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북한이) 어린이들을 위한 평화의 숲 조성 아이디어는 좋지만 평화협정 체결이 우선돼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언젠가는 남북이 함께 하는 어린이 평화 숲을 만들고 싶어요."
이제 세계적인 평화환경운동가로 성장한 조너선 리의 꿈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결코 이루기 쉽지 않은 것.
" 온 세계가 평화롭고 모든 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름 1.6cm, 무게 6g인 배지에 인생을 건 이가 있다.
1960년 5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오는 19대 선거까지 잇따라 총선 출마에 나선 김두섭(82) 씨.
9대 총선 때만 출마하지 않아서 이번이 14번째 도전으로, '국회의원 최다 도전' 기록은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현재까지 전적은 13전 1승 12패.
그 인생의 황금기는 당연히 1승을 거둔 14대 총선 때로 당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하도 떨어져서 (국회의원) 못하고 죽을 줄 알았는데, 8전 9기로 당선되었으니 잊지를 못하지."
하지만 초선 의원의 단꿈도 잠시.
15대 총선부터 18대 총선까지 신한국당과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을 넘나들었지만 내리 고배를 마셨다.
"원숭이는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사람은 떨어지면 그렇게 초라하기가 짝이 없어. 쳐다보지도 않아."
50년 정치 이력을 지닌 노정객의 술회다.
그 자신의 행색도 초라해져 현재는 가족과 떨어져서 컨테이너로 만든 단칸방에 홀로 살지만 '국민은 잘 살고 정치인은 거지가 돼야 한다'는 신념 때문인지 부끄러울 것이 없다.
국민행복당(대표 허평환) 소속으로 경기 김포에 출사표를 던진 이번 총선, 느낌이 좋다고 한다.
꿈도 좋고 주변의 호응도 좋아서 이번엔 꼭 당선될 것이라는 게 김두섭 후보의 전망인데,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이번 선거에서 전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언제까지 도전할 것이냐는 물음엔 단호히 말한다.
"안된다면 20대 총선에서 한번 더 할 거예요. 오기로라도 더 할 거예요." (기획/제작: 김정훈 김원유)
"제레미 린과 일대일로 맞서면 이길 자신 있죠."
최근 미국 NBA가 배출한 스타,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에 맞서겠다고 나선 이대성(21) 선수.
삼일상고 주전 파워포워드, 청소년 농구 대표팀, 그리고 중앙대학교까지 농구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 선수지만 국내 농구계는 그의 플레이 방법을 환영하지 않았다.
꽉 짜인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던 국내 농구팀에서 개인기 위주의 그는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탈출구를 찾던 이 선수는 농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NBA 하부리그인 'D리그'의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 주변의 반응도 싸늘하기만 했다.
"대학교 3학년이면 늦었다고 하더라고요. 영어도 못하지 않느냐는 반응이었죠."
하지만 좌절할 시간도 없이 연습에 매진했고 몇 달 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이뤄진 기량 테스트에선 사실상의 합격 통고를 받았다.
그에게 대학 농구팀 감독은 포인트 가드의 포지션을 약속했다. 이대성 선수의 화려한 개인기를 맘껏 뽐낼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이대성에게 제레미 린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부터 목표로 삼은 선수가 제레미 린입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레미 린과 붙는다면 안 질 자신 있다." 이대성이 보여줄 '무모한 도전'의 끝은 그 자신도 모르는 듯하다.
"여기 등 좀 밀어주세요." "네. 손님!"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의 한 대중 사우나. 큰 키에 검은 피부, 그리고 다소 어색한 한국말로 목욕탕에서 손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 습기찬 공간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그는 바로 올해 14년차 경력의 목욕관리사 송형석(47) 씨다.
'칸 모티오'라는 이름의 방글라데시 태생인 송형석 씨는 현지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교를 그만두고 1998년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건너왔다.
공장에서 일하던 송 씨는 퇴근길에 회사 동료와 우연히 찾은 목욕탕에서 처음 보는 직업인 목욕관리사를 발견, 지대한 관심 끝에 곧바로 전문 목욕관리사가 되었다.
지난 2004년에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해 인천 송도 송씨의 시조까지 됐다. 그의 이름은 작명소를 운영중인 한 단골손님이 지어준 것이다. 어엿한 '대한민국 가장'이 된 그는 방글라데시 태생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송 씨는 "처음에는 손님들이 많이 놀라워했다"며 "그렇잖아도 목욕관리사가 바뀌면 경계하는 손님들인데, 외국인이 오니 거부감은 더욱 심했다"고 쉽지 않던 처음을 떠올렸다.
막상 해보니 배우기도 벅차, 처음 3년가량은 다른 목욕탕에 찾아가 세신을 받아보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경험과 기술을 익혀갔다는 것.
그는 "하루 두세 명밖에 손님을 받지 못했던 적도 있다"며 "하지만 직접 세신을 받아본 손님들이 '시원하다' '열심히 한다'고 말해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어느덧 단골도 많아진 그는 하루 평균 20명의 손님을 받고 있다. 송 씨는 "처음에 친구들도 사우나에서 일한다고 웃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를 부러워한다"고 했다.
송 씨는 다만 "체력 때문에 늙어서까지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그때가 되면 방글라데시를 오가며 예전부터 꿈꾸던 무역상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도화지와 붓, 물감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세 사람이 있다. 2~3급의 지적장애를 가진 김대현, 김형태, 최원우씨. 실제 나이는 이삼십 대이지만 6세에서 8세정도의 지적장애를 가진 세명의 작가들은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조금은 어눌한 말투, 어색한 행동들은 그림 속에서 순수함과 기발한 발상 그리고 놀라운 재능으로 바뀌어간다.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만나보자. 지적장애 화가들의 Tell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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