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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계인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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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서울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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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계인 뉴스레터 639호: 《위대한 책, 잘못된 논증》 해설 (10) — "파렴치한 이기주의가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분노"https://seoulalien.substack.com/p/639제2장 《국가》 (pp.33-39)요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이기적 또는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대부분의 사회적 제도는 공식적인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제재뿐만 아니라 사람 간 신뢰에 기반한 협력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플라톤의 자신의 이상 사회에서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 이타주의자로 묘사했으나, 그것 역시 자신에게 이득이 있을 때만 그렇게 행동한다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대로 설명할 때만 이타주의자이다.* 플라톤은 생산자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거짓말과 속임수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했는데, 이것은 권력을 가진 수호자와 보조자들에게만 올바른 것이다.* 칼 포퍼의 비판대로, 플라톤의 이상 사회에 관한 여러 계획들은 자유를 부정하는 전체주의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다음주에 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서울외계인 뉴스레터 636호 《위대한 책, 잘못된 논증》 해설 (9) — 이기주의자로 잘 살 수 있음에도 이타주의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https://seoulalien.substack.com/p/636제2장 《국가》 (pp.29-33)요점*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의 "올바른 것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338c)라는 주장을 제대로 논박하지 못함* 이 논의를 더 이어갔다면, 소크라테스의 이상 사회 역시 트라시마코스가 주장한 사회의 한 예라고 말할 수 있었음*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올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유형의 보상을 얻기 위함이라면, 올바르게 행동하는 이유는 순전히 도구적인 것, 즉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림* 그렇다면 진짜로 올바른 사람인 척만 해도 효과적일 수 있음* 아데이만토스 & 글라우콘의 관심사와 대가 없이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행동에 대한 현대 사회학자들의 관심사에는 유사성 있음*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 올바르지 못한 인간은 이기주의자, 올바른 인간은 이타주의자임* 현실에서는 이기주의자가 승리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이타주의자가 존재함. 그 이유는?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635 어니스트 베커, 《악에서 벗어나기》 (8) — 희생양 만들기7장 인간학의 기본 역학https://seoulalien.substack.com/p/635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제2장 《국가》이데올로기적 순응이 정치적 안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모든 통치자는 자신이 다스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처지에 만족하기를 바랄 것임* 그러나 설득 수단을 독점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만들려는 시도는 거의 전적으로 실패한 역사* 물론 피통치자들은 통치자들이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 노골적으로 도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가능한 대안들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음*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순응이 정치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 기독교 왕의 신민들은 순종과 형제애를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 외에 다른 가르침에 노출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기독교의 역사는 성직자의 호소, 명령, 협박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음* "올바르게 인도하는" 이슬람 칼리프의 신민들은 꾸란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이슬람의 역사는 이슬람 사회 내부 그리고 이슬람 사회 간의 폭력적인 종파 갈등으로 가득 차 있음* 패권적 공산당의 인민들은 어린 시절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르침을 주입받았을지 모르지만,* 공산주의의 역사는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의식과 상징이 한 인간의 기질과 성격을 개조하는 데 얼마나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줌* 어릴 때부터 아무리 세뇌를 시켜도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비순응주의자가 통치자와 그 보조 선전가, 교수, 성직자가 전수하는 표상, 신념,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효과적이지 못함정신적 조화 vs. 과도한 욕망* 시민 개인의 심리 상태와 관련하여, 플라톤은 동기가 충돌할 수 있는 정도를 강조하는 데 있어 근거를 가지고 있음* 정신(혼, psychē)이 별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의 구상이 현대의 뇌과학에 의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음* 뇌과학은 [이성을 이용한] 추론과 감정이 각자 작용할 때 뇌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해줌* 그러나 그는 정신적 조화(또는 안정된 성격)는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정의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확고하고 일관된 성향의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는 선입견과 경험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음(💡플라톤의 인간관.)*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박들*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 자신에 대해 완전히 편안하고 동기의 갈등에 시달리지 않는 불의한 사람이 있음*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자 하는 소망 때문에 여러 가지 가능한 행동 방침 중 어떤 것을 추구할지 결정하기 전후에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딜레마에 직면하는 올바른 사람들도 있음* 플라톤에게 불의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대한 과도한 욕망인 pleonexia(플레오넥시아)의 정의에 따라 결정됨* 이성이 지배하는 사람(수호자): 가능한 한 좋음의 형상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pleonexia가 아님* 정념이 지배하는 사람(보조자): 명예와 승리를 향한 욕망이 pleonexia* 욕구가 지배하는 사람(생산자): 돈과 육체적 쾌락을 향한 욕망이 pleonexia* (💡앞 내용의 'polypragmosynē', 즉 '남의 일에 간섭하려는 충동'과도 연결됨.)* 왜 "명예 지상 정체적"인 사람은 적당한 명예로 만족할 수 없고, "축재적(蓄財的)"인 사람은 적당한 돈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일까?* 도덕 철학의 관점에서, 플라톤은 지식의 추구보다 명예나 돈의 추구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충분한 이유가 있음* 소크라테스가 제6권에서 아데이만토스에 동의한 것처럼 많은 철학자들이 사기꾼이라고 하더라도. (487d)*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사람들이 이성, 정념, 욕구의 주장을 자신의 정신의 평화에 맞게 조화시키는데 철학자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다음주에 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6장 돈: 새롭고 보편적인 불멸성 이데올로기* 불멸성이 불변하는 동기라면, 모든 사회적 풍습은 본질적으로 신성하다는 결론* 브라운의 《죽음에 맞서는 삶》의 공헌은 돈의 권력에 관한 이론을 위한 기본 관념들을 종합한 일* 〈더러운 돈〉(Filthy Lucre)* 속세에 아들을 남겨놓음으로써 불멸성을 얻게 된다면, 자신의 이미지를 기리는 다른 물리적 기념물을 방대하게 축적하여 남겨놓음으로써 불멸성을 얻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돈의 추구가 보통 사람에게도 가능하게 됨* 금은 새로운 불멸성의 상징이 됨* 돌무더기와 금 더미로 이루어진 기념물의 권력* 새로운 가부장제는 아들에게 가문의 불멸성은 물론, 축적된 금, 재산, 이자 역시 물려줬음* 축적할 의무도 물려줌* 불멸성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권력의 세계가 아니라 가시적 권력의 세계에 존재* 초점을 원시인 타락의 메커니즘에 확고히 고정시킴 — 브라운* 역사의 핏줄 속에 흐른 물질: 금* 돈* 새로운 마법의 대상* 새로운 "토템적" 소유물* 인간은 사회에 질서와 형식을 부여하고 경험 세계 전체를 마법적으로 묶기 위해, 새로운 제의가 필요했음* 돈은 제의가 남겨놓은 공백을 채웠음* 그 자체로 새로운 제의적 초점이 됨* "돈은 가치 측정을 위한 표준을 제공한다. (…) 돈은 단지 제의의 극단적이고 특수화된 형태일 뿐이다." — 메리 더글러스 (💡'명품'은 비싸기 때문에 명품이다.)*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목 중 하나는 돈의 진화* 돈에 대한 역사가 아직 쓰이지 않은 이유* 돈의 기원이 역사 이전에 감춰져 있기 때문* 돈의 발달이 다양했고, 단일하고 보편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현대인은 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물고기에게 물은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인 것처럼)* 돈이 여전히 신성하기 때문. 여전히 우리가 불멸성으로 진입하기 위해 의탁하는 마법적 대상* 돈은 여전히 살아 있는 신화이자 종교* 돈은 바로 신성한 권력임을 증명함 — 브라운* 원시적 돈의 형태(개 이빨, 조개껍데기, 깃털 묶음, 돗자리 등)는 단지 장식적 가치나 실용적 교환가치만을 지니지 않았음* 현실적인 영혼 권력의 가치를 지님* 돈의 진화라는 문제: 원시적 돈과 동일한 원천, 즉 마법 부적이나 표식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만 함* 신의 권능이 금속에 현전하게 됨* 인도에서 금은 불의 신 아그니(Agni)와 동일시됨* 금은 신성한 제의에서 태양을 대신할 수 있었음* "태양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황금은 빛이고, 태양은 빛인 이치이다. 황금은 불멸이고, 태양은 불멸이다." — 《샤타파타 브라흐마나》* 호카트, 소논문 〈돈〉에서 금화, 왕관, 후광의 공통된 기원을 제시* 이 세 가지 모두 태양의 원반을 표상* "금과 은이 주요 화폐가치로서 특별한 매력을 갖는 이유가 태양과 달과의 상징적 동일시 때문이라는 점에 동의" — 존 케인스* 금과 은의 가치 비율이 고전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1 대 13.5'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옴* 수요와 공급의 차원이 아니라, 태양과 달의 점성술적 순환 비율을 통해 해명해야 함* 인간은 항상 자연에서 특별한 마법적 속성을 발견하여, 그 속성이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띠게 하려고 노력했음* 어느 기타 제조 장인은 기본 척도로 고대의 '그리스 피트'(Greek foot)을 사용함* 화폐는 마법 부적과 태양에 대한 마법적 모방이 그 기원* 이것들에는 보호를 해주는 영혼 권력이 담겨 있기에 몸에 착용하거나 보관* "애초에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돈을 원하기 때문에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이다." — 로하임* 이제 최초의 은행이 신전이었고 최초로 돈을 발행한 사람이 제사장이었던 경위를 이해할 수 있음* 성직자 영향력의 강화와 더불어, 사제들 자신이 공식적으로 신성한 주술의 거래 및 은혜와 금의 교환거래를 독점* 최초의 조폐국은 신전에 세워짐* '돈'(money)이라는 단어도 로마의 캄파돌리오 언덕에 있는 유노 모네타(Juno Moneta, 훈계자 유노) 신전의 조폐청에서 유래* 위조가 신성모독인 까닭은, 동전이 신의 권능을 체현하기에 오직 사제만이 그러한 힘을 다룰 수 있었기 때문* 황금은 보이지 않는 힘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대가로 사제에게 치른 보수* 인도에서 황금 보수는 그 본질이 황금인 신에게 지불하는 적절한 수단이었음* 이로부터 초창기 동전에 신의 이미지가 새겨졌던 전통이 유래* 그 다음에는 신성한 왕, 오늘날에는 대통령이 새겨짐* 사제들은 '우주적 지배'와 '신성한 왕권의 점성술적 통합'이라고 불리는 불멸성 이데올로기의 일부였음* 새로운 인간이 고대 세계에 태동함* 자신의 생명(따라서 자신의 불멸성)의 가치의 기반을 동전에 집약된 새로운 우주론에 두는 인간* 돈은 모든 존재의 정제된 가치가 됨* 또는 단일한 불멸의 상징, 즉 자신의 확장을 자기 세계의 모든 중요한 대상과 사건에 연결시키는 준비된 방식* 돈은 가시적 힘과 비가시적 힘(신, 왕,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등의 권력)의 우주론적 통합을, 그리고 전쟁 노획품의 정제물을 표상했다고 볼 수도 있음* 이 우주론의 중심에는 두 세계를 정제하고 포괄하면서 자신의 확장을 가늠할 가시적 계산대, 즉 자신의 불멸의 가치를 나타내는 신성한 증거를 지닌 개인 자신이 서 있음* 돈을 신성함의 영역과 연결하는 것은 돈의 권력* 돈이 다른 인간을 지배할 권력을, 또 가정과 사회적 의무, 친구,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부터의 자유를 부여함* 돈은 자신과 타인의 유사성을 제거함* 돈은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제공함* 권력은 스스로를 확장하는 힘, 자신의 자연적 상황을 왜소함, 무력함, 유한함으로부터 거대함, 통제, 지속성, 중요성으로 바꿀 수 있는 힘* 요컨대, 돈은 동물적 굴레와 자연 결정론을 대범하게 거부하는 탁월한 인간적 양식* 돈은 배설물, 물질성, 동물성, 쇠퇴와 죽음에 대한 부정을 표상함* 선교 활동이 우수한 무기 및 약품과 더불어 이루어진 이유는, 사제들이 자신의 신은 우월한 권력을 표상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늘 알고 있었기 때문* 돈은 여러 실패한 역사적 불멸성 이데올로기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쟁점* 경제적 평등은 "민주적 유형의 인간이 감내할 정도를 넘어선다."* 돈은 지금 권력을 부여하며, 또한 축적된 재산, 토지, 이자를 통해 미래에도 권력을 부여함* "집, 자동차, 은행 잔고가 현대인의 불멸성의 상징이다." (p.157)* "흑인이 이웃으로 이사 오면, 집의 부동산 가치가 하락할 뿐만 아니라, 가시적 불멸성의 차원에서 당신의 충만함도 줄어들며, 그리하여 당신은 죽는다."(💡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임대 아파트'.)* 현대인이 경제적 평등을 용인할 수 없는 까닭: 그 자신이 자기 초월적인 저세상의 불멸성 상징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 "가시적인 것의 차원에서 살아가며 비가시적인 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동물에게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의 시선보다 우위를 점하기 쉽다." (p.156)* 따라서 불멸성 권력은 축적된 부에 자리 잡게 되었음* 시간이라는 짐,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 간의 긴장, 소유에 의한 죄는 분명 민감한 영혼에게 매우 크게 다가왔을 것* 이것이 '죄악'(sin) 개념의 성장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방식* 이론적으로 죄악은 말 그대로 신의 권력과 보호로부터의 분리, 스스로를 자기원인으로 세우는 일을 뜻함(💡〈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우리는 그저 비가시적 세계를 부정함으로써,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이분법의 긴장을 완전히 해소했음* 시간을 완전히 단선적 기반 위에 두었고, 그리하여 돈과 축적된 이자는 우리의 명백한 신이 됨* 영웅주의를 향한 우리의 충동은 언제나 손에 닿는 가장 가까운 수단을 이용했음* "인간은 증여하는 동물, 즉 사물을 건네주는 존재에서 전적으로 차지하고 보유하는 동물로 변했다." (p.163)* "역사는 통제를 벗어난 영웅주의와 속죄의, 그리고 광적으로 추동되고 고안된 새로운 방식으로 속죄를 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의 비극적 기록이다." (p.164)* 주장하려는 요점*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서 마주했던 대부분의 악은 바로 인간의 부정과 역사적인 내달림이라는 더 거대한 열정의 결과* 인간사에서 악의 본성은 무엇일까? 어떻게 악에 관해 파악할 수 있을까?* 유일한 길은 진지하게 우리의 현재 상태에 이르게 한 그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1. 북정마을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그래서 요즘 더 알뜰히 아내와 산책을 다닙니다. 이번 주말엔 삼청공원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와룡공원으로 이어진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공원 입구에는 항상 차들이 복잡하게 주차를 하고 있어서 외면했었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졌네요.공원 자체가 멋지다기보다는 한양도성 성곽길이나 이런저런 공원들과 연결되는 허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슬픈 기록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갈림길에서 성북동 쪽으로 갈지 혜화동 쪽으로 갈지(어차피 나중에는 만나지만) 선택해야 하는데 성북동을 택했고, 도중에 북정마을이란 곳을 만났어요. 입구가 작아서 차로 지나칠 때는 알 수가 없는 곳이었네요.'달동네' 같은 마을, 지금도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 재개발을 기대하고 외지인들이 사놓은 빈집들이 많은 마을, 그런 사람들을 욕하는 동네 할머니, 그래도 마을에 애착을 가지고 새집을 지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칭찬하는 할머니, 신용카드는 되지 않지만 친절한 동네 슈퍼, 조용한 전기 마을버스가 다니는 마을, 80년대 일본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커플이 쇼핑몰에 올릴 사진을 찍는 마을, 그걸 신기하게 쳐다보는 동네 사람들, 빈촌부터 부촌까지 성북동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 가파른 비탈을 벗어나자 현실적 건물이 솟아나는 마을.카페나 음식점은 없습니다.2. 《학교를 그만두고 유머를 연마했다》참으로 오랜만에 시 읽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시인은 최민우. 처음 듣습니다(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이, 제가 요즘 시인들의 이름을 들어도 아는 사람이 있겠나 싶어서입니다). 책에 나온 소개는 이렇습니다.2021년 웹진 《아는사람》에 에세이 〈20세기 아는 사람〉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전자양을 즐겨 듣는다.허세 없는 자기 소개가 딱 제 취향입니다. 저 웹진은 없어진 것 같네요. 저 대학생일 때, 시를 즐겨 읽고 썼습니다. 전공자로서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허장성세가 있었죠.그때도 젊은 시인들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가 좋았어요. 나이를 먹고 인생을 겪어봐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지. 암. 뭐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치기와 실험과 독창성의 아슬아슬한 삼각 경계에 있는 젊은 작가들의 언어가 좋았습니다. 제 B급 정서 취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B급'이란 것도 주류의 위치에서 바라본 것 아닐까요?제가 어떤 시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은 어떤 시구들을 몇 번씩 읽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구는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과 생각을 퍼뜨립니다. 만화경처럼 이미지가 계속 바뀌죠. 아무것도 물고 있지 않은 입안의 맛도 달라집니다(호사에 겨운 뇌의 착각이겠죠). 그렇게 그 시와 시인을 좋아하게 됩니다.가령 이런 것들이죠.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고립됐다는 뜻 아닙니까?— '소시민' 중침팬지 클라라는 강으로 흘러든 폐수를 마시고얼룩소 부이는 쓰레기 언덕에서 밤새 옷을 되새김질하고조만간 내가 먹는 밥에도 고무 씹는 맛이 날 것이다— '폭설 여름' 중기억을 보내 주시면 잠으로 교환해 드려요.— '정체성' 중평범했는데 본 적 없는 내 인생을 적어 둔 것 같은 기분이었다(…)빛이 먼지를 지그시 누른다(…)따사로운 햇살은 하루 이틀이면 막을 내렸다너는 누구와 걸어도 사랑에 빠질 날씨라고 했고나의 대답은 도심 속 발걸음처럼 느려진다— '롱 숏' 중이런 것들을 좀 더 찾아볼 계획입니다.3. 지구크라카우어는 《영화의 이론》에서 "어쩌면 외견상 비본질적인 것을 흡수해야 비로소 잘 잡히지 않는 생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인간 조건이 아닐까?"(p.14)라고 하며, 곧 이렇게 말합니다.우리가 "우리의 서식처인 이 지구"와 맺고 있는 관계를 심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의 가장 내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지구'라는 단어를 듣자 머리 속에 종이 울립니다. 최근에 이 지구를 엄중히 언급한 책을 읽었죠."파우스트적 인간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서, 지구는 자기 영속의 유일한 영역이 되었다."— 《악에서 벗어나기》, p.135저는 어니스트 베커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듯이 들리는데요, 이 둘의 지구는 같은 지구일까요, 아닐까요? 이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읽기가 될 것 같네요.4. 'November'Brian Green의 〈Music For Home〉 중 'March'11월이니까 'November'도 들어보죠.요즘 스포티파이가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데이리스트Daylist')를 매일 시간대별 다른 장르의 음악들로 만들어주고 있어요. 좋긴 한데, 그 수많은 회원들에게 이렇게 제공하는 게 가능한 거였나하는 생각도 들면서 좀 무섭죠.시간대별로 컨셉이 있는데, 예를 들어 제목이 이렇습니다. 'ambient soundscape sunday night'. 음악 장르, 요일, 시간대 등을 조합해서 만들죠. 그런데 선곡된 곡들이 제 취향과 꽤 잘 맞아요. AI가 내 청취 기록을 이용해서 만들었겠죠. 하루에 몇 번이나 바뀌는지 찾아봤더니 정해진 횟수는 없고 '많이 들을수록 자주 업데이트된다'라고만 나와있군요.이 곡들도 그렇게 알게 됐어요.5. 굿즈 만들기굿즈를 만들어볼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책갈피, 엽서, 아크릴 문진, 스탬프, 장서인, 스티커 등등이 후보입니다.요즘은 자신만의 굿즈를 만들기가 너무 쉬워지긴 했는데, 이왕 만드는 거 특별함 한 스푼을 넣어보려고 하니 이것!하고 결정을 못하겠네요. 조금씩 샘플만 만들어서 써보고 있어요.이왕이면 책, 읽기, 공부 등과 관련된 것, 손때 묻히며 오래 쓸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전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구요.그중 가장 괜찮지 않을까 싶은 건 장서인 또는 장서표예요. 문제는 장서인(표)는 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좀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중입니다.그래서 지금 상태는 오리무중이네요. 도와주세요.🌼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국가(polis)/혼(psychē) 비유에 관한 중요한 질문* 플라톤이 자신의 이상적 사회를 뒷받침한 논증들은 충분히 독창적임* 실패한 이유에 대해 철학자들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음* 그러나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질문은,* '플라톤이 구분한 다양한 유형의 사회의 속성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속성에 얼마나 의존하는가?'* 국가(polis)는 시민들의 "형상과 성향"(eidē and ēthē)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함 (435e)* 이는 국가(polis)와 혼(psychē)의 삼분법적 구분(국가/혼 비유)만큼이나 플라톤 주석자들을 많은 곤경에 빠뜨렸음* 그러나 참주 정체의 피통치자들 자신은 참주 정체적이지 않으며, 플라톤 자신도 참주 정체화된 polis에 대해 그 안에서 최고의 요소를 구성하는 자유인들이 불명예스럽고 비참한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고 인정함 (577c)* "형상과 성향"이 공유되고 있지 않음* 따라서 올바른 사회가 대다수 올바른 시민들로 이루어져 창조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통치자들이 피통치자들에게 보여주는 행동에서 나타나는 올바름의 의미에 달려 있음*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방식이 polis가 올바른 방식과 같다면(441d),* 올바른 polis가 올바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일까?* 올바른 소수가 부정의한 다수를 마치 올바른 사람이 부정의하게 행동하려는 자신의 유혹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통제하는 곳이라는 의미일까?* '국가/혼 비유'를 사용한 것은 플라톤이 이 양쪽 모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봄 — 버나드 윌리엄스플라톤의 '올바른' 사회* 플라톤이 말하는 올바른 사회* 모든 시민 범주의 구성원이 해당 범주에 적합한 기능만 수행하는 사회* 단순히 정체(政體)가 공정하게 운영되고, 세금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이며, 법원이 계약을 지지하고, 시민들이 필요할 때 공적 의무를 다하며, 타인의 재산을 훔치거나 폭력으로 타인을 폭행하는 사람이 잡혀 처벌을 받는 사회가 아님 (💡현대의 관점에는 올바른 사회)* 올바른 사람은 모든 사람을 정당하게 대우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그 안에서 자신의 의무를 의심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과 선호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복지에 종속시키는 사람* dikaiosynē(디카이오시네)* "자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ta hautou prattein)* 영어로는 일반적으로 'just'(올바른)로 번역함*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개인과 사회가 좋음의 형상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실질적인 조건들을 자세히 설명함* 소크라테스의 실수* 올바른 사회의 시민 대부분이 자신의 조건을 충족하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조화롭고 질서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보다 동기의 충돌로 인해 덜 괴로워한다고 가정하는 것* 조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에서 시민들은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함* 통치자는 통치할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큼이나 반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자유의 제한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 원함* 소크라테스는 처음에 사회를 탄생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검토할 때, 상호간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분업을 지적하며, 이들은 노동의 결과물을 승인된 상호간 이익을 위해 교환할 것이라고 말함(제2권)* 플라톤은 올바른 사회가 수호자, 보조자, 생산자라는 세 개의 분리된 사회계층 간에 기능 분담을 엄격하게 시행하여 제화공이 제화공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더라도 그 자리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주장함 (374b)* 나중에 소크라테스는 구두장이가 건축을 하고 싶어 하거나 건축가가 신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인정함 (434a)* 그러나 생산자가 보조자가 되려고 하거나 보조자가 수호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polypragmosynē, 즉 남의 일에 간섭하려는 충동* 소크라테스는 이를 "무엇보다도 더 한 악행"(malista kakourgia)이라고까지 비난함 (434c)* 실제로 실행 불가능한 것은 없음* 예를 들어 후기 로마제국, 힌두교의 인도, 제정 러시아에서 통치자들은 노동자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평생 그 직업을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효과적인 제도적 제재(制裁)를 마련했음* 플라톤의 어려움은 두 하위 사회계층(보조자, 생산자)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자유의 제한이 통치자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를 원한다는 것 (💡자발적 동의를 위한 설득. '다 너희들 위해서 그러는 거야!')* 두 하위 계층은 올바른 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노예들에게 행사하는 직접적인 강압적 통제의 형태에 종속되지 않음 (433d)* 그들은 통치자들에 의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순응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통제될 필요가 없음(💡이것은 교육인가 세뇌인가?)(다음주에 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라는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봤다. 그의 저서는 국내에 네 권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에세이집인 《과거의 문턱》을 제외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 독일 영화의 심리학적 역사》, 《영화의 이론》,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 이 세 권이 주요 저작인 것 같고, 그 중 《역사》는 유고집이다.한때 영화 이론에 대한 선망이 있었으나 곧 실망, 그리고 외면을 거쳐 경멸까지 도달했었으나 지금에 와서 영화 이론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진 건 왜일까 싶었다. 아주 잠깐 생각해보니 아마도 고전 영화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넷플릭스 같은 OTT들 덕에 영화를 보는 것보다 고르는 시간이 더 많은데, 신작들 중에 볼 것을 고르는 일은 아주 힘들어졌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도 고전을, 또는 최소한 몇 년에서 몇십 년의 시간을 견딘 책들을 읽는데, 영화는 왜 신작만 보려고 하지? 그러면 영화에도 책과 비슷한 기준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음악 소비에 관한 어떤 통계를 보니 그쪽 사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곡 청취 비율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를 읽기 시작한 것이 그 첫 시작이다. 그러나 영화 평(론)을 읽을 때 항상 답답하게 느꼈던 것은 대략 두 가지다. 첫째는, 평(론)하는 사람의 입각점이나 이론적 배경을 잘 모르겠다는 거다. 인상 비평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둘째는, 이론이 있다한들 천편일률적인 교과서적인 비평일 경우다. 어쩌면 정치한 이론이나 숙고의 결과를 선호하는 내 탓일 수도 있다.그러나 (아직 서문밖에 읽지 않은) 크라카우어의 《영화의 이론》은 달랐다. 우선 대상 영화를 “사진에서 발전해 나온 일반적인 흑백영화”로 한정한다. 컬러는 “영화에 덜 본질적인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의도는 “실사영화의 내적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이것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가 생긴다.크라카우어가 영화를 보는 관점 중 또 ‘충격적’이었던 것은 “영화는 본질적으로 사진의 연장”이라는 것이다(참고로 그의 생몰 연대는 1989~1966이다). 내 머리 속에서는, 사진으로부터 영화가 탄생하는, 그런 역사적 변천 과정이 있긴 했으나 이제 그 둘은 완전히 결별해 있었다. 아무리 영화가 사진들을 빠르게 이어 붙인 것이라고 한들, 그 본질은 여전히 사진에 있다? 이후 책의 내용이 또 기대되는 이유이다.이렇게 어떤 학자나 작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그의 책들을 모두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저서들만큼은 읽고 싶은 욕심이 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 《영화의 이론》을 완독하고 읽으려고 했던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와 《역사》도 곧 집에 도착했다.재밌게도 크라카우어의 한국어판들은 모두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그렇다보니 저자 소개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비교해보니 《역사》의 저자 소개가 가장 충실했고, 유고집이다보니 편집인이 서문을 썼고, 평소 깊은 학문적 교류가 있다보니 크라카우어에 관한 많은 내용이 들어있다.그렇게 서문만 읽으려던 것이 본문까지 들어가 읽게 됐고, 내가 늘 의문으로, 불만으로 갖고 있던 생각을 들여다 본듯이 써내려 간 것을 확인했다. 이런! 영화에 관한 책인줄 알았는데. 저런! 더 좋네. 뭐 먼저 읽지.또 재밌는 건 지금 뉴스레터로 보내고 있는 《악에서 벗어나기》와도 여러 연결고리가 있다는 거다. 그건 어쩌면 내 터널 시야 속에서 어떻게 시냅스 지들끼리 연락을 주고 받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할 수 없다. 그게 내 머릿속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때가 많다.아래는 《역사》에 실린 저자 소개.현대 사회와 문화, 일상생활, 영화, 역사를 폭넓게 연구한 독일 출신의 지식인.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철학교사이자 발터 벤야민의 편집자. 에른스트 블로흐와 레오 뢰벤탈의 친구였던 크라카우어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문화비평가이자 영화이론가이며, 소설가이고 저널리스트이다. 188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건축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1920년까지 건축가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말, 당시 십대이던 아도르노와 가까워지며 함께 철학 강독을 했다. 1920년대 독일의 유력 일간지 《푸랑크푸르터 차이퉁》에서 영화와 문학 등을 소개하는 문예면 편집장으로 일하며 명성을 떨쳤다. 당대 일상생활을 탐구하던 크라카우어는 1920년대 초 《탐정소설Detektiv-Roman》을 발표하고, 이어 사진, 영화, 광고, 춤, 여행, 도시 등을 폭넓게 분석한 《대중의 장식Ornament der Masse》 (1927), 익명으로 발표한 자전적 소설 《긴스터Ginster》 (1928)를 출간했다. 소설가 요제프 로트는 소설 속 주인공 긴스터를 "문학의 채플린"이라 평했다. 1930년에는 새로 형성된 사무직 노동자 계급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사무직 노동자Die Angestellten》를 펴냈다. 이 책을 접한 벤야민은 크라카우어를 자본주의의 흥을 깨는 '소란꾼'에 끼워넣었다.크라카우어는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파리로 이주했고,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 영화 연구에 매진한 그는 1947년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독일 영화의 심리학적 역사From Caligari to Hitler: A Psychological History of the German Film》를 펴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의 영화에서 나치즘의 태동을 읽어내는 이 책은 현대 영화 비평의 기반을 닦은 명저로 평가된다. 1960년 크라카우어는 영화 연구의 기념비적 저서인 《영화 이론: 물리적 현실의 구원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을 출간했다.만년에 자신의 사상을 온축(蘊蓄)한 역사에 대한 책을 준비하던 크라카우어는 1966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완성 단계에 있던 그 유고를 묶은 마지막 책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가 1969년 출간되었다.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5장 불멸성 권력의 새로운 역사적 형태앞 내용 요약* 인간은 경험의 지속과 생명체로서 자기 영속을 원함* 유독 인간만이 자신의 생명은 끝에 이르게 된다는 의식을 지님* 그래서 자기 영속을 지속할 또 다른 길, 육체와 피로 이루어진 세계를 초월할 방법을 고안해야만 했음* 육체적 방식이 아닌 영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불멸성을 보장하는 '보이지 않는 기획'을 고안함으로써, 사멸하지 않는 세계에 안착하는 방식으로 이를 이룩했음'불멸성의 추구'라는 원칙* 인간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물질적 운명을 초월하는 방법* 문화는 그들에게 필요한 불멸의 상징 혹은 이데올로기를 제공함* 사회를 불멸성 권력(Immortality Power)의 구조로 볼 수 있음* 이러한 관점에 뛰어난 학자: 오토 랑크, 노먼 브라운* 상세한 심리학적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관해 파악하도록 해줌* 이번 장에서는 랑크의 작업 거론* 불멸성의 추구라는 단일한 원칙으로 집약함* 각 개인에게 확고하게 뿌리내린 보편적 원리* 각 문화에 실재했음* "지배적인 불멸성의 이데올로기"라는 원리* "진리를 둘러싼 모든 갈등은 최종 분석 단계에서 보면 (…) 불멸성을 두고 벌이는 늘 똑같은 오래된 투쟁일 따름이다." — 랑크, 《Psychology and the Soul》 (1930)* "상대방이 진리에 관한 논쟁에서 이기면, 당신은 죽는다" (p.122)* 삶의 오류 가능성에 빠짐자신의 불멸성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분투* 모든 문화 형태는 개별적 삶의 영속과 구원을 추구하기에 본질적으로 신성함* 문화는 초자연적인 것을 뜻함* 인간의 모든 이데올로기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 삶의 신성함을 직접 다루는 문제임* 집단의 책무는 제의적 의무의 완수를 통한 생명력의 강화였음* 집단만이 불멸성을 부여했음* 집단이 삶의 지속을 향한 갈망을 대변해주기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욕구에 부과된 사회적 제약을 받아들임* 인간은 자신의 삶보다는 자신의 불멸성을 보존하려고 분투함 — 랑크* 프로이트를 근본적으로 수정* 인간이 처음부터 자신의 신체를 더 고차원의 정신적 가치, 더 많은 삶과 바꾸기 때문* 신체는 문화적 불멸성의 기획을 위해 인간이 포기했던 최초의 사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삶에 대한 애정 때문에 포기됨* 모든 새로운 구조가 해야 했던 일은 동일한 불멸성에의 약속이었으며, 그 형태만 다를 뿐 지금도 존재함성의 시대(sexual era)* 초기 국가의 형성 시작* 사회조직은 국가의 합법적 보호 아래 있는 가부장적 가족에 초점 맞춤* 부권이 개인의 불멸성을 확보하는 보편적 방식이 되었기 때문* "성의 시대(sexual era)" — 랑크* 육체적 부계(父系)가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자기 영속에 이르는 왕도로 완전히 인식되었기 때문* 원시 세계에서 아이는 집단적 불멸성의 담지자* 아이를 통해서 조상의 얼이 세상에 다시 진입하기 때문*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와 왕권 이데올로기 간의 긴밀한 통일성* 전문적인 제사장과 사제의 점진적 발달과 함께 권력을 생산하는 권력은 더 이상 전체 집단의 소유가 아니라 특수 계급의 수중에 들어감* 아버지는 그 신성한 계획을 자기 자신의 가정에서 재연하기 위해 왕을 모방함* 유교 사상* 왕국의 모든 사람이 왕을 모방해서 아들을 다스리고, 딸을 출가시키며, 가족 질서를 유지하고, 가정 제의를 준수한다면, '신성한 가족' 내에서 권력의 균형은 뒤집히지 않음* 스스로를 신성한 존재로 선포한 황제와 왕은 과대망상으로 그런 것이 아님* 경험을 통합하고, 그 통합을 단순화하며, 그것이 권력의 확고한 원천에 뿌리 내리게 하려는 실질적 필요에 의해 그렇게 했음아들의 시대(era of the son)* 기독교를 가족의 시대에 초래된 억압과 불평등에 맞선 항거인 "아들의 시대(era of the son)"로 봄 — 랑크* 기독교 아래에서는 그리스도의 정신적 부권이 가족의 생물학적 부권을 대체했음* 기독교는 영적 힘을 단일한 개인의 수중에 되돌려놓고, 빼앗긴 자와 노예의 불평등을 없애버린 위대한 민주화* 이교주의와 원시 공동체주의에 다시 발을 담갔고, 이를 부족 너머로 확장했음* 기독교는 민주적이고 보편적이며 마법적인 자기 재생의 새로운 형태* 개인은 원시인이 누렸던 정신적 통일성의 일부를 다시 획득함* 그러나 국가는 기독교를 이용했고, 기독교 권력은 권위 유지를 위해 왕권 제도와 결탁* 생물학의 숙명성과 유전의 우발성에 대한 공격은 가족 이데올로기에 봉사했고 가부장제를 재강화함*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약속했던 보편적이고 민주적인 평등을 확립하는 데 실패함* 로마는 새로운 유형의 시민을 창안했지만, 가족들의 필수적인 경제적 평등을 창출하는 데는 실패함* 국가가 이런 유형의 민주주의에 전념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모든 사안의 균형을 맞추고 경쟁 세력들에 맞서며 시민을 서로에게서 보호하는 권력으로 사칭했기 때문* 국가의 핵심 특징이자 진정한 권력과 전횡을 상징하는 특질* 백성이 전쟁에 나가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가능했던 까닭은 각 가정의 권력이 국가에 이양되었기 때문* 국가는 일종의 "권력 은행"이 되었지만, 국가는 이 권력을 결코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는 데 사용하지 않았음* 기독교 역시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민이 되길 바라는 이들의 경제적 불평등과 굴종성을 영속화함* "원시사회의 쇠퇴 이후 국가가 대표하던 지배와 착취의 육중한 구조에는 역사적으로 어떤 근본적 변화도 없었다." (p.132)심리학적 인간의 시대 — 파우스트적 인간* 고대 세계와 기독교의 약속으로부터 출현한 "심리학적 인간의 시대(era of psychological man)" — 랑크* "아들의 시대"로부터의 발전* 르네상스와 종교혁명으로부터 터져 나온 새로운 유형의 과학적 개인주의의 형태* 과학적 개인주의는 세속적인 권력이 됨* 자신의 행위, 작업, 진리 발견을 통해 불멸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파우스트적 시도* 개인의 재능에 기반을 둔 일종의 세속적-인문주의적 불멸성* 두 가지 측면에서 실패. 20세기의 종말이라는 위기를 집약함* 현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로마와 기독교의 실패를 되풀이했을 따름*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지 못하고, 이전의 이데올로기들과 동일한 모순에 매몰됨* 파우스트적 인간의 희망은 그가 진리를 발견하리라는 것, 자연의 작동에 관한 비밀을 손에 넣으리라는 것, 그래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완전한 승리, 즉 지구상에서 인간의 신격화를 보장하리라는 것이었음* 이 과업에 실패했음* 신성한 차원을 훼손시키고 나니, 지구 말고는 자신의 삶을 가치를 시험할 무대가 사라지게 되었음* 파우스트적 인간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서, 지구는 자기 영속의 유일한 영역이 됨(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밴드쩜유에스슬래시골뱅이서울에이리언’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4장 불평등의 진화* 인간은 공통의 합의를 통해 자기 스스로 복종에 도달한다 — 호카트* 재화의 흐름은 모든 사람의 노동의 결실을 수취해서 재분배하는 권력의 핵심(권위적 인물) 으로 이동함* 왜 사람들은 동등한 사람들 간의 단순한 공유 경제에서, 높은 계급과 절대적 권력을 점하는 권위적 인물을 통해 재화를 모으는 경제로 이행했을까?* 인간이 자신의 공물을 받아줄 항상 현전하는 가시적 신을 원했고, 이를 위해 스스로 복종한다는 대가를 기꺼이 치렀기 때문* 그들이 번성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공물을 가시적으로 받아들이는 신(족장)이 바로 눈앞에 존재하기 때문* 번성과 족장이 연결되었던 이유는, 위대한 족장이 있는 부족이 실제로 더 번영을 누렸기 때문 — 순환적 과정*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마련했던 원시인의 타고난 천재성* 자신이 신의 눈 바로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자신의 평범한 행위가 우주적 가치를 지님을, 아니 심지어 그 행위가 신 자체를 고양시킴을 날마다 알게 되는 것* 일단 그 형태가 가시적인 신의 형상, 즉 제의의 가시적인 주관자가 있으면, 원칙상 이미 신성한 왕권을 갖게 됨* 즉 고대 세계의 거대한 폭정이 발흥하는 것* 신성한 왕은 그 자신 속에 이 모든 우주론을 집약함* 태양-인간(Sun-Man)* 왕권은 "인간의 태양화, 태양의 인간화"를 표상함* 마나를 지닌 인물과 자기 자신의 안녕을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적 투표 과정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함* 전통적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건강, 부, 성공을 이미 대표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도 그 일부를 옮겨줄 수 있는 인물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있음* 삶을 대표하는 신적 인물을 통해 삶의 재화들을 재분배받아 살아가는 데 일단 동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닫아버리게 됨* 왕의 수중에 삶이 독점화되는 과정을 멈출 길은 없었음* 누군가 세계에 대한 최상의 규제자가 되면, 그가 점차 전 세계를 포괄하게 되는 것은 논리적*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사회적 불평등의 완전한 공고화* "수확만 좋다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폭정은 용인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인간은 더 장대한 아우라를 지닌 정당성과 상징적 권력을 갖는 무엇인가에 복무하는 경우처럼, 신비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 인간은 먼저 가시적 신들이 자신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을 허용했고 심지어 환영했던 듯함* 그러고 나면 이 신들의 대리자가 내리는 처벌을 받아들이는 일은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수순* 이행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했던 일은 사회적 불평등과 개인적 독립의 척도를 번영 및 질서와 맞바꾸는 것이었음*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그러했음* 통가(Tonga)의 평민에게는 영혼이 없었고, 호카트는 그 사회의 하층계급이 왕의 의례를 모방하기 전까지는 영혼을 갖지 못했다고 믿음* 봉건적 구조로의 발달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 이를 권력 균형의 변천, 즉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에 대한 의존에서 가시적인 사물 세계에 대한 과시로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 고전적 포틀래치에서 가시적인 권력의 축적은 명백히 재화 더미에 있었음* 로마인이 행했던 '포틀래치'는 원시적 선물 콤플렉스의 쇠락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 그들의 선물은 단지 공동체를 달래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고, 면죄부보다는 홍보에 가까웠음* 도시, 공원, 대학에 있는 카네기, 록펠러 등의 이름을 단 건물로부터, 서구 세계에서 행해지는 이 공허한 포틀래치의 마지막 진화를 봄* 뽐내기 위한 영웅주의였고, 참회가 거의 섞이지 않은 권력의 과시* 역사적 인간은 초기 인류가 가졌던 무언가를 상실했음 — 역사적 소외* 이 문제를 보는 핵심적 관점이 도출되는 두 시각* 인간이 재화의 특권적 공유자에서 재화의 재분배에 의존하는 존재로 변모했음* 인간이 이제까지 발명했던 것들 중 가장 본질적이고 창조적인 역할, 즉 제의 실행자의 역할을 점차 빼앗기게 되었음* 역사적으로 분명 벌어진 일은 제의적인 것의 상실* 가족 제의는 국가 제의에 흡수되었음* 현대의 부부는 자신들이 높은 지위로부터 역사적으로 몰락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며, 아이의 육신을 통해 자연을 재생하고 공장에서 노동함으로써 번영을 갱신하는 데 충분히 만족함* 역사적 심리학이 가르쳐줄 수 있는 위대한 교훈 중 하나는 원시 세계 풍경이 사라진 뒤 인간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방법을 발명해야만 했는가임(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국가》의 잘못된 논증들*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47)에 대한 서평에서 《국가》의 논증에 반대하는 비판 사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함* 영혼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는 것;* 영혼이 세 부분으로 나뉜다면 이상적인 사회는 세 계급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것;*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오직 하나의 기능만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이성은 그러한 기능 중 하나라는 것;* 계급 중 오직 한 계급만 이성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 계급의 구성원은 보통 혈통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 경험적 학문은 결코 '진짜' 학문이 될 수 없다는 것;* 형상이 있다는 것;* 형상에 대한 지식만이 '진짜 학문'이라는 것;* 이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 플라톤이 묘사한 종류의 교육을 받은 통치자가 없다면 정치 제도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의'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 등* 길버트 라일은 《국가》에 대해 이렇게 말함* 《국가》는 "애초에 탐구가 아니다. 만약 선언문이 아니라면, 그것은 설교(sermon)다(또는 무엇보다도,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플라톤이 제공하고자 했던 고등 교육 커리큘럼의 목적을 설명하려는 시도일까?)."* 그러나 설교나 선언문 모두 탐구 못지않게 그 근거가 되는 논증의 질에 대한 비판에 취약플라톤의 의심스러운 수사학적 장치들* 플라톤은 독자들이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결론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의심스러운 수사학적 장치를 사용했을 수 있음* 그는 이상적 사회의 수호자들이 자신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 신화를 가르침으로써 하위 계급들에게 그 계급에 속해 있음을 설득하는 것을 상상함(414b-c)* 그는 《국가》의 독자들도 충분히 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음* 그러나, 플라톤의 청중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었음* 자신과 같은 지적 관심사를 가진 상류층 동료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했음* 플라톤 설교의 중요한 부분은 실제로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철학에 대해 철저히 교육하는 것의 바람직함에 관한 것* 무지한 동료 시민들이 여전히 그림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동굴로, 햇빛으로부터 돌아온 후 그러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권력의 지위에 두기 위한 것이 목적* 만약 그 교육 과정 속의 사회가 전혀 실현 불가능한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교육은 정치적 관련성을 완전히 상실함플라톤의 '정의로운 사회'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그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자격을 갖춘 시민이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본질적으로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님* 하지만 이것이 《국가》에서 실제로는 의미하는 것은?* 부지런한 양치기, 잘 훈련된 의사, 명석한 조타수에 대한 플라톤의 비유는 그들의 기술이 지향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아왔음* 소크라테스는, 목동은 자신이 돌보는 짐승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짐승 무리를 돌본다는 적절한 의견을 트라시마코스의 입을 빌려(343b)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어디에도 이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함* "양을 치는 기술에 있어서 관심사는 그것이 맡아 돌보도록 되어 있는 대상을 위해 최선의 것을 제공토록 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님이 분명하오." — 박종현 역주, 《국가》, 345d* 절제된 사회와 절제된 사람 사이의 비유에서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음* 절제된 사회: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구성원을 통치자가 통제하는 사회* 절제된 사람: 반사회적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열정과 욕구를 이성이 통제하는 사람* 그러나 문제는 플라톤이 혼(psychē)의 세 가지 부분(이성, 열정, 욕구)이 그의 나라(polis)를 구성하는 세 가지 부분, 즉 (이성적인) 수호자, (열정적인) 보조자, (욕구적인) 장인, 농부, 사업가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데에 있음(다음 시간에 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오늘은 2024년 10월 24일 목요일, 하루종일 맑음입니다.이제 계절은 천천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고 나면 코앞에 닥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계절마저 '빨리빨리'라니요. 섭섭하네요.어니스트 베커의 《악에서 벗어나기》 네 번째 시간입니다.인간 자신은 '내부의 적'을 품고 있습니다. 원시 경제학을 분석한 노먼 브라운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면 노예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의 족쇄에 애착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원시인은 재능과 장점의 차이를 인정했고, 추종했으며,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목숨을 보장하고 부족의 영속성에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역사에서 영웅이 하는 기본적 역할이자 기능입니다. 사람들이 그 영웅을 추종하고 그의 기억을 숭배하는 까닭은, 그가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소멸과 죽음에 대한 승리를 체현하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최초의 계급 구별은 필멸과 불멸 사이, 나약한 인간의 힘과 특별한 초인간적 존재 사이에 놓였습니다. 그렇게 영웅적 개인들은 영혼 자체에 결부된 능력, 즉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능력을 동일하게 지니게 됩니다.모든 원시인 가운데 가장 평등한 부족인 플레인스(Plains) 부족조차 습격대를 조직할 때면 평소의 평등주의적 태도를 포기했습니다. 특정한 인간 개인에 체현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지배성은 그들의 동료를 한시적 노예로 만들었습니다.권력은 조상과 영혼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정신적 힘의 형태로 나옵니다. 권력은 모든 시대의 인간을 지탱해주는 삶의 맥박입니다. 유기체의 전체 세계가 권력의 측면에서 구조화되어 있기때문에, 권력은 인간 존재의 기초적 범주입니다.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나는 모든 인간에게 발견되는 일반적 성향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힘(power)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제일 먼저 들고자 한다. — 진석용 옮김, 《리바이어던》, 11장, p.138악의 기원은 중립적입니다. 악은 유기체의 건강함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현실적이고 고통스럽습니다.모든 권력은 신성한 권력입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불멸성을 향한 굶주림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은 불멸성의 힘을 대표하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으로 귀결됩니다.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인간 본성에는 불평등을 불러들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이것이 이번 장의 결론입니다.서울외계인이었습니다.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오늘은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비 오다 맑음입니다.가을비치고는 꽤 많이 왔습니다. 이제 단풍과 낙엽의 시간이로군요. 혹독한 겨울이 아니었으면 합니다.어니스트 베커의 《악에서 벗어나기》 세 번째 시간입니다.제2장 '원시 세계: 속죄와 권력으로서의 경제학'에서는 원시인들이 자연의 풍요로움으로 무엇을 했는지, 사물의 자연적 질서라는 개념을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살펴봅니다.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집단과 개인 간의 선물 증여는 고대사회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사회적 삶은 선물 증여와 답례 증여 간의 지속적 대화였습니다. 자연은 풍요로움을 인간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을 원시인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신은 선물을 수취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원시인은 그 자신이 의무와 속죄의 우주론 속에 계속 머물기 위해서 신에게 증여할 무언가를 갖기 위해 경제적 잉여를 창출했습니다. 제의 과정에서 많은 음식을 폐기하는 것은 의례적이고 종교적인 행위였습니다.원시인에게 증여는 자연의 풍요로움이 순환하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광대한 삶의 흐름에서 힘의 영속적 유동성은 가능한 한 가장 많은 지출을 통해 생겨났습니다. 더 많이 증여할수록, 모두가 더 많이 얻은 것입니다. 원시인처럼 현대인은 자기에게 이미 힘이 있다고 증명하면 자신이 번성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는 대부분의 현대 권력 이데올로기가 그러하듯 원시인의 포틀래치에 대한 과장된 묘사에 불과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신들에 대한 경배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제물의 교환은 항시 경쟁의 일종, 즉 자신의 잉여 제물이 다른 부족의 제물을 능가하면 승리를 거두는 경쟁입니다. 경쟁 속에서 그는 우주적 영웅심, 즉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될 수 있도록 자연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특별함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이 안전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적 필요 이상으로 가차없이 노동에 몰두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인간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존감을 필요로 합니다. 이 영웅주의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부풀릴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커다란 죄악인 오만(hubris)은 권력의 진짜 원천이 어디 있는지 망각하고, 그 권력이 자기 자신 속에 있다고 상상하는 일을 뜻합니다.서울외계인이었습니다.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오늘은 2024년 10월 22일 화요일, 비가 온다고 합니다.어니스트 베커의 《악에서 벗어나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원시인은 제의(祭儀) 기술을 통해 물질세계를 확고하게 통제한다고 믿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초자연적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원시인에게 죽음은 영혼이 초인적인 힘과 무한한 지속성으로 나아가는 최후의 승격이었습니다.상보적인 두 개의 극단적 대립항으로 사물을 나누는 것은 원시인의 사회조직에서 가장 널리 퍼진 특징입니다. 한 예로, 중국식 음양 체계는 이 현상의 잔존물입니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만든 것은 바로 경쟁이었습니다.유기체적 삶의 주요 동기 중 하나는 자기감정을 향한 충동입니다. 그렇다면 '자기감정'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역경을 극복하고 다른 유기체를 흡수하는 일에 성공할 때 수반되는 자기의식'입니다. 이것은 물질적 흡수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승리 혹은 자기 자신의 탁월함에 대한 과시를 통해 확장할 수 있습니다. 다른 유기체를 격하시키고 자신의 위세와 중요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자기감정을 얻는 직접적 수단이 됩니다.인간은 자신의 유기체적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않기 위해 거의 항구적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패배하는 것, 이류가 되는 것, 최고이자 최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유기체의 불안감의 신경중추에 이런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나는 망했고, 무력하다. 따라서 계속 버티면서, 삶을 영위하고, 영원을 누릴 자격이 없다. 그러니 죽게 될 터이다.'이 점은 시기심이 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 설명해줍니다. 이 동기가 얼마나 자연적인지 이해해야만, 우리는 인간이 자기 중요성의 정도를 오직 사회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스스로에게 중요성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인간의 진정한 목표는 자신이 영원성의 자격을 갖추게 해줄 장점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의 전개는 바로 유기체적 자기 영속을 위한 새롭고 색다른 이데올로기가, 그리고 역사적 인간의 새로운 부정의와 강화된 파괴성이 연속되는 장대한 이야기다."서울외계인이었습니다.👾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오늘은 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맑음입니다.어니스트 베커의 《악에서 벗어나기》 첫 번째 시간입니다.저자 어니스트 베커의 전작으로는 1974년 퓰리처상을 받은 《죽음의 부정》이 있습니다. 《죽음의 부정》에서는 인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화적으로 표준화된 영웅 시스템과 상징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 《악에서 벗어나기》에서는 필멸성, 즉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음을 부정하고 영웅적인 자기 이미지를 얻으려는, 인간의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충동이 인간악의 뿌리 깊은 연원임을 보여줍니다.동물적 본성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끈질긴 생존에 대한 절대적인 전념은 모든 유기체에 보편적이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본질입니다. 자기보존을 위한 본능인 것이죠.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도 지니지 못한 부담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인간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절멸이 아니라, 무의미한 소멸입니다. 그래서 문화적 상징을 세우고,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초월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모종의 더 거대한 구도를 찾고, 삶의 확장된 의미를 확보합니다. 이러저러한 형태로 죽음의 초월을 체현(體現)하는 것은 문화 자체입니다. 문화는 인간을 자연 너머로 길러내며, 인간에게 온 우주에서 자신의 삶이 한갓 물질적 사물이 갖는 의미보다 어떤 식으로든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증해줍니다.그리고, 인간은 악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악을 세상에 들여온 책임이 있습니다. 동물적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재능이 바로 동료 생명체에 그토록 모진 지상의 운명을 부여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입니다.서울외계인이었습니다.👾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사회학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 비교사회학에 대한 또 다른 반대 의견: 사회학이 성공 또는 실패에 대한 판단을 권위 있게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한 학문 분야가 아니라는 것* 플라톤이 그토록 강력하게 반대했던 "소피스트"들처럼, 홉스가 가르침을 조롱했던 "철학파"들처럼, 마르크스가 유토피아적이면서 동시에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이론들을 내놓은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처럼, 사회학자들을 무시할 수도 있을 것*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인간 행동에 대한 전문적 학문들에서 중요하며 검증이 완료된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인간 사회들의 작동 방식에 대한 역사적, 민족지학적, 고고학적 기록에서 축적된 증거들에 중요하며 검증이 완료된 많은 추가 사항들이 더해졌음* 비교사회학의 역할이기도 함* 다양한 종류의 사회에서 공유된 신념들, 표상들, 규범들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제도들과의 관련성* 이들이 서로 관련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이해의 한계를 지적[셋 모두 과소평가한 것들: 제도적 권력 분립, 구성원들 간의 협력, 지속적인 변화·경쟁·절충]* 플라톤, 홉스, 마르크스가 세 가지 주제에 관해서 비난 받을 수 있는 점들: 내부 갈등의 원인에 대해 저지른 실수, 갈등을 줄이고 억제할 수 있는 구조와 과정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 제도적 권력 분립이 내부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함* 플라톤: 정의로운 사회에서 세 가지 범주(수호자, 보조자, 생산자)의 구성원들은 개별적으로 한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 진급하거나 강등되지 않는 한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만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 → 철인왕(수호자)들과 그 보조자들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으면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그의 두려움을 드러냄* 홉스: 권력의 공유 → 피지배자들 사이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주권의 권한을 필연적으로 약화시킨다고 봄* 마르크스: 파리 코뮌의 경험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국가의 기존 체제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휘두를 수 없으며, 그것을 폐지하고 대체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함* 사실상 플라톤, 홉스와 같은 주장 — 권력의 독점 — 을 펼쳤음* 몽테스키외, 토크빌, 뒤르켐: 연속적인 통치자를 위해 자율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지속적인 중간 기관에 의해 사회적 안정이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 플라톤, 홉스, 마르크스의 사상에는 이질적* 권력 경쟁자라 할지라도 경쟁이 이루어지는 제도를 유지하려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서로 다른 사회계층의 구성원들 간의 협력 범위를 과소평가함* 플라톤: 생산자들(같은 계급으로 묶은 장인, 농부, 사업가들)이 단지, 자신의 상급자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설득됐기 때문에 욕망을 억제하고 상급자에게 순종할 것이라고 믿음* 홉스: 범죄 또는 음모 활동에 관여하는 개인들을 하나로 묶는 상호 협력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물리적 강압에 대한 두려움만이 주권 및 주권의 대리인들에게 마땅히 협력하게 할 수 있다고 믿음* 마르크스: 프롤레타리아들 간의 협력이 부르주아 국가 전복에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간의 협력은 뇌물, 속임수 또는 사기를 통해 설계된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믿음* 그러나 사회계층적 경계들을 넘어선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협력은 권력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차원 내 인간 사회에서 마찬가지로 흔한 일* 문화적·사회적 진화가 만장일치와 평화를 향한 일방적인 진보나 혼돈과 갈등을 향한 일방적인 퇴보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 경쟁, 절충의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과소평가함* 문화적 표상과 사회적 관행의 변화들* 그것을 지닌 집단에서 재생산 및 확산 확률을 높이거나 낮추는 환경 조건에 따라 성공하거나 실패함* 플라톤: 질서는 수호자들이 피통치자들의 정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음* 홉스: 질서는 피통치자들로부터 지속적이고 사실상 무조건적인 복종을 받아내는 주권의 능력에 달려 있음* 마르크스: 질서는 지금까지 계급 갈등의 근원이었던 통치자의 피통치자에 대한 착취를 없애는 데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능력에 달려 있음* 그러나 모든 사회에서 기존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관행들이 지속적으로 재검토되는 것과 동시에 기존의 표상, 신념, 태도들도 지속적으로 새로 만들어지고 있음* 조화와 질서의 유지는 한 번 실현되면 영원히 유지될 수 있는 최적의 제도적 설계가 아님* 개인 간 갈등과 사회계층 간 갈등을 조정하고 억제할 수 있는 적응적이고 유연한 관행들의 혼합에 달려 있음[트라시마코스의 도전에 제대로 대답했을까?]* 더 일반적으로는 세 사람 모두 플라톤이 수사학자 트라시마코스의 입을 통해 《국가》의 시작 부분에서 던지는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기를 꺼려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 플라톤은 트라시마코스가 의도적으로 거칠고 공격적인 말투로 '불의'가 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정의'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말하게 만듦* 그러나 정의는 본질적으로 선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본질적으로 유익하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대한 트라시마코스의 거부에는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반박이 필요함* 트라시마코스는 인생이, 잡히지 않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언제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쓰는 정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술집 현실주의자의 전형* 착한 사람들은 꼴찌를 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도 없으며, 정치인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고, 도덕은 소용이 없음* 플라톤, 홉스, 마르크스는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올바른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옳은 일을 하고 싶어하고 그 방법을 알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조화와 질서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음* 그러나 트라시마코스는 사변적인 철학적 수다에 정신이 팔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항상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고 함* 플라톤: 자신의 철인왕들이 사회 전체의 선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할 것이라고 가정* 홉스: 자신의 주권자들이 주권을 행사할 때 신이 주신 자연법을 따를 것이라고 가정* 마르크스: 프롤레타리아들이 부르주아들로부터 권력을 장악하여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어떠한 갈등 가능성도 종식시킬 것이라고 가정* 그러나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를 "가장 순진한 사람"(ō euēthestate, 343d)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최대한 확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 것은 지극한 순진함* 실제로 정복자들은 더 멀리 나아갈수록 더 많은 존경을 받게 될 것* 플라톤보다 덜 화려하게 표현되었더라도 그의 도전은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아님* 플라톤, 홉스, 마르크스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답했을까?(다음주에 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 유튜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후 장들에서 다루는 내용: 세 권의 책에서, 인간 사회에서 조화와 질서를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구성된 체계를 설계하는 것과 관련된 부분들* 세 책의 출발점: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사이에 권력이 불평등하게 공유되는 세계 상태* 《국가》 → "archontes"(지배자들)와 "archoumenoi"(피지배자들)* 《리바이어던》 → "Soveraigne Power"(주권)과 "Subjects"(신민)* 《공산당 선언》 → "Unterdrücker"(억압자)와 "Unterdrückte"(피억압자)* 모든 사회가 갈등과 반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사회에서 범죄성이 문화적으로 정의된 규범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개인이 존재함* 플라톤, 홉스, 마르크스는 모두 지배자들, 피지배자들 간에 발생하는, 사회 내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는 형태의 정부를 제안하려 했음* 저자가 시도하려는 비교사회학을 반대하는 입장에 대한 반론* 여기서 역사학자와 역사철학자들의 반대가 있을 수 있음 — 맥락(context)를 중시하는 입장* 이 세 책들이 쓰여진 매우 다른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인식하여 해석하지 않으면 서로 비교하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다는 주장* 《국가》와 《리바이어던》이 정치에 관한 한 "같은 것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이론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콜링우드의 답변* "플라톤이 쓰고 있는 국가는 그리스의 폴리스(polis)이고, 홉스의 국가는 17세기 절대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아니오'* 그러나 이런 반론은 "같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선입견에 근거함* 이 관점으로 본다면, 만약 각 국가의 수만큼 이론이 존재해야 하거나, 공직 선출 방법, 과세, 징병, 법률의 제정, 개정 또는 무효화에 관한 질문이 각 국가에 고유한 의미로 대답되지 않는다면 '국가에 대한 이론'은 존재할 수 없음* 비교사회학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반박은 철학적 논쟁을 벌이지 말고 그냥 비교사회학을 하라는 것* "사회 내부의 갈등을 방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플라톤, 홉스, 마르크스의 각기 다른 대답이, 각기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반박* 그들의 답을 살펴본 다음 비교해보라는 것* 비교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공직자들이 세 가지 형태의 권력(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에 부여하는 상대적 우선순위는 완전히 다름* 그 방식은 다르지만 플라톤, 홉스, 마르크스 모두 강자가 약자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 마르크스: 권력 분배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생산 수단에 대한 통제 → 경제적 권력* 반면, 플라톤과 홉스는 각기 다른 이유로 생산의 위력과 사회적 관계 모두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함* 홉스: 주권이 설득 수단에 대한 통제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것은 주권의 강제 수단 통제 → 정치적 권력* 플라톤: 수호자들이 자신과 보조자들의 강제 수단 통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 계급들을 제자리에 유지하기 위해 의존하는 것은 설득 수단에 대한 통제 → 이데올로기적 권력* 이 차이는 통치자가 피통치자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고 내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려는 각 시도의 강점과 약점 모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 그들의 시도 중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함(다음주에 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 유튜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에 관한 내용* 홉스는 《리바이어던》 제31장에서 《국가》에 대해 "이 저작에 기울인 나의 노력이 플라톤의 국가론처럼 쓸모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라고 함*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한 사회가 그릇되고 무질서한 신민들의 선동적인 계획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권력이 단일한 주권에만 집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홉스가 《국가》를 인용한 후 자신의 책이 "어느 주권자의 손에 들어가, 그가 스스로 생각하고, 사심이 있거나 혹은 질투심이 많은 해석자에게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또한 그가 온전한 주권을 행사하여, 이것이 공적으로 교육될 수 있도록 보호한다면, 이 사색의 진리는 실천적 이익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며 희망을 표명하는 방식에 충격 받음* 플라톤이 자신의 이상 사회가 당장은 "하늘에 본(本, paradeigma)으로 바쳐져"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실행할 힘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임* 플라톤, 홉스 → 인간 사회가 파괴적인 내부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고민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습, 역할, 제도의 올바른 조합이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열정적으로 확신함* 《리바이어던》 역시 철학적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논증을 담고 있음* 《리바이어던》 역시 사회학 저작이므로 같은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함* 많은 주석자들은 홉스 자신의 결론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수준과는 거리가 먼 논증으로 권력의 본질과 행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옹호했다고 그를 비난했으나, 홉스의 사회학은 절대적으로 개인주의적이지도 않고 조잡하게 권위주의적이지도 않음* 그러나, 홉스의 잘못된 논증들의 예* 주권자가 일단 제정한 법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백성 중 어느 누구에게도 권리침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지지하기 쉽지 않음* '주권의 절대성에 대한 정치 이론' 참고* 홉스가 "정치 이론에 관한 최초의 근대 저자"이지만 "여러 계급 간 충돌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버트런드 러셀, 1946)는 비판에서 그를 구해내는 데 성공한 주석자는 없음* "더 많은" 것을 얻지 않고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잘 살기 위한" "힘과 수단"을 보장받고자 하는 보편적인 욕구를 인정함* '자기 보존의 원칙', ''자기 보존의 권리'에 대한 홉스의 논리적 모순' 참고* 노동이 "이익을 얻기 위해 교환될 수 있는 상품"임을 인정함* 그는 주권자가 코먼웰스(commonwealth)의 내부 평화를 유지하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코먼웰스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려면 과세를 통해 백성으로부터 잉여자원을 추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 그러나 그는 "주권자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자신의 손에 넣으려는 명백한 정치적 당파만큼이나, 정치적 역할이 아닌 경제적 역할로 행동하는 "백성들의 동맹"(Leagues of Subjects)이 연방의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함* "일반적으로 잉글랜드 정치 사상의 고전으로 여겨지는"(리처드 턱Richard Tuck) 책이 이데올로기나 정치가 아닌 경제적 권력 갈등의 사회학적 의미를 무시한 채 어떻게 고전으로 여겨질 수 있을까?마르크스, 《공산당 선언》에 관한 내용* 앞의 이 질문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판단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함*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게 잉글랜드 내전은 경쟁관계에 있는 이데올로기 공동체나 정치세력 간의 투쟁이 아니라 봉건적 생산양식에서 부르주아에게 경제 권력이 혁명적으로 이전됨으로써 영국이 자본주의적 양식으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사건이었음* 그러나 홉스가 잉글랜드 내전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해서 홉스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리바이어던》을 다 읽은 후 《공산당 선언》으로 이끌었음* 이것은 《국가》와 《리바이어던》을 다시 읽었을 때와 거의 같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음* 《공산당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문* 이 선언은 논문이 아니라 무장을 요구하는 것* 그러나 《국가》나 《리바이어던》 못지않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일련의 사회학적 명제들을 수용하라고 요구하는데, 만약 이 명제들을 지지할 수 없다면 수용을 보류해야 하며, 이 명제들은 지지할 수 없음* 다시 묻자면, 어떻게 그렇게 존경받는 저작이 이렇게 잘못된 논증에 근거할 수 있을까?(다음주에 계속)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
https://seoulalien.substack.com/p/614 에서 전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슬로우 워크》의 저자 칼 뉴포트는 《딥 워크》, 《디지털 미니멀리즘》 등의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컴퓨터공학 교수입니다. 혼란스러운 디지털 시대에 절제와 집중을 통해 큰 성과를 내는 서사로 많은 호응을 얻었죠. 본인의 화려한 이력 — “다트머스대학교를 최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분산 컴퓨팅 등을 연구하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2009년, 2018년, 2022년 각각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 도 한몫 했을 겁니다.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몇 안 되는 자기계발서 저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서, 그의 책은 꽤 챙겨봤었죠. 그러나 ‘자기계발류’에서 관심이 멀어지면서 그의 글이나 책도 읽을 일이 없었는데 최근에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오랜만에 읽게 됐습니다.그리고 다 읽고 내린 결론은, 부정적입니다.《슬로우 워크: 덜 일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내는 법》(Slow Productivity), 칼 뉴포트(지음), 이은경(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4* 이 책의 주제는 자기계발서들의 오래된 클리셰인 지식 노동자들의 포디즘 극복임* 그 방안으로 '슬로우 생산성'(slow productivity) 개념을 제안함* 다음 세 가지 원칙에 근거해 지속 가능하고 유의미한 방식으로 지식 노동 업무를 꾸려나가려는 철학* 업무량을 줄인다*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퀄리티에 집착한다* 흔히 말하는 '생산성'의 개념은 모호함* 특히 지식 노동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함* "20세기가 흘러가면서 이처럼 눈에 보이는 활동을 기준으로 삼는 휴리스틱이 지식 노동 생산성을 판단하는 주요한 방식이 됐다" (p.33)* 그 결과, '유사생산성'이 등장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 유사생산성: 실제 생산 노력을 어림잡아 측정하는 주요 수단으로 눈에 보이는 활동을 이용하는 방식(p.34)* '빨리빨리' 역시 유사생산성* 또한, 코로나 "팬데믹은 싹트기 시작하던 반생산성 운동을 강력하게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p.128)* 그 대안으로 제안하는 것이 슬로우 생산성* 이 책의 한계는 "지식 노동의 생산성 전반을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어느 정도 업무 자율성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프리랜서와 1인 경영자, 중소기업 경영자가 여기에 속한다"(p.60)는 것임* 그 이유는 "이런 환경에서는 상사의 요구로 유사생산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유사생산성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개인이 실험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기 때문임*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아직은 "실험"적인 개념일 뿐임* "철저한 감독을 받는 사무실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내가 제안하는 전략을 온전하게 실천하기 어려울 수 있다". (p.61)*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고전 《나는 4시간만 일한다》에서 말하는 내용을 지식 노동 분야로 바꿔 쓴 것 같음* 그만큼 인상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이 없음*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일절 외면하고, 개인의 결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의 반복* 등장하는 사례들도 기존 자기계발서들에서 본 패턴들의 반복* 이 책에서 하나 얻은 것은 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라는 책을 알게 된 것* 칼 뉴포트의 책은 이제 더 읽지 말아야겠음* 나는 “Huge fan”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독자 리뷰가 내 감정을 대변해 줌👾 This is a public episode. If you would like to discuss this with other subscribers or get access to bonus episodes, visit seoulalien.substa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