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고린도전서 12장
Update: 2017-06-13
Description
12장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 특별한 은사. 이것을 누구나 다 가져야 하는가? 만약 한 공동체에서 이런 은사를 누군가는 갖고 있고, 누군가는 없다면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더 우위에 차지해야 하는가? 그들이 더 성령이 충만한 것인가?
우린 성령이 충만하여져서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사도행전 2장의 초대 성도들을 상기시켜야 한다. 종교적 현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의 내용, 성령의 실재적 역사를 보아야 한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실재적 삶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11장에서는 공동의 식사를 위해 모이고 주님의 식탁을 기억하기 위해 모이는 그 공동체의 모임이 어떻게 하면 유익이 되지 못하고 해로움을 주는지 말하고 있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 모임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여서 어떻게 지내는지가 말이다.
성령의 은사도 마찬가지다. 성령의 은사라는 현상이 아니고 그 현상이 실재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성령의 은사라는 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은사도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이 성령의 은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공동체는 한 몸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 몸은 각자 다른 기능을 갖고 있고 한 몸에 연결되어 있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서로 다른, 때론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한 공동체 안에 있을 수 있고 그들에게 성령이 더 충만한 것도 아니고, 더 우위에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다른 기능으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한 연합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 특별한 은사. 이것을 누구나 다 가져야 하는가? 만약 한 공동체에서 이런 은사를 누군가는 갖고 있고, 누군가는 없다면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더 우위에 차지해야 하는가? 그들이 더 성령이 충만한 것인가?
우린 성령이 충만하여져서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사도행전 2장의 초대 성도들을 상기시켜야 한다. 종교적 현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의 내용, 성령의 실재적 역사를 보아야 한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실재적 삶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11장에서는 공동의 식사를 위해 모이고 주님의 식탁을 기억하기 위해 모이는 그 공동체의 모임이 어떻게 하면 유익이 되지 못하고 해로움을 주는지 말하고 있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 모임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여서 어떻게 지내는지가 말이다.
성령의 은사도 마찬가지다. 성령의 은사라는 현상이 아니고 그 현상이 실재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성령의 은사라는 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은사도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이 성령의 은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공동체는 한 몸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 몸은 각자 다른 기능을 갖고 있고 한 몸에 연결되어 있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서로 다른, 때론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한 공동체 안에 있을 수 있고 그들에게 성령이 더 충만한 것도 아니고, 더 우위에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다른 기능으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한 연합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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