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문 목사의 직설/直說요한복음_20. 낫지 못할 병이 나았으면, 그 다음은 | 죽은 제도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요한복음_20. 낫지 못할 병이 나았으면, 그 다음은 | 죽은 제도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요한복음_20. 낫지 못할 병이 나았으면, 그 다음은 | 죽은 제도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Update: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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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낫지 못할 병이 나았으면, 그 다음은 | 죽은 제도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 요한.5,1~18
· 유튜브로 시청할 것을 권합니다. 자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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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분의 헌금으로 이 영상을 내보냅니다.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헌금: 농협 060-02-192192 · 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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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면, 그 다음은?
· 그 세상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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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경험과 죽은 제도의 충돌: 요한복음 5장 분석 브리핑
요약
본 브리핑 문서는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요한복음 5장에 나타난 38년 된 병자의 치유 사건을 통해 초월적 경험의 본질과 그것이 기존의 죽은 제도와 충돌하는 양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핵심은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기적이 촉발한 '안식일 논쟁'을 통해 예수께서 어떻게 낡은 종교 시스템에 도전하고 '다른 세상'의 가치를 제시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문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적의 오해: 많은 신앙인이 기적적 능력 그 자체에 집중하지만, 요한복음 저자의 의도는 예수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적은 '표적'으로서, 인간을 얽매는 죽은 제도를 넘어선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가리키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제도에 머무른 개인: 38년 된 병자는 불가능해 보였던 치유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해방시킨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고친 예수를 기존 권력(유대인)에게 고발함으로써 낡고 희망 없는 제도 속으로 다시 회귀하는 선택을 했다.
신앙의 함정: 초월적 경험에 대한 기대가 좌절될 때, 신앙은 세속적 가치(돈, 권력, 복)로 변질될 위험에 처한다. 이는 개인의 신앙적 여정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겪는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원래 가야 할 길을 잃고 세속적 가치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핵심 결론: 진정한 신앙적 변화는 '저 세상의 가치로 이 세상을 사는 것'에 있다. 이는 기적을 통해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고 그분의 관점('안목')으로 삶을 바라봄으로써 욕망과 불안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사역은 바로 이 '다른 세상'을 열어 보이고, 인간을 율법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데 있었다.
1. 기적에 대한 오해: 요한의 저술 의도
요한복음 5장의 베데스다 연못 사건을 해석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는 38년 된 병자가 치유된 기적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 신앙인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도 동일한 초월적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는 저자인 요한의 핵심 의도를 간과하는 것이다.
요한의 의도: 요한은 예수의 초월적 능력을 단순히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2장), 왕의 신하 아들을 고친 사건(4장), 오병이어의 기적(6장) 등은 모두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요한은 이를 일관되게 긍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베데스다 사건의 핵심은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 5:9)라는 구절 이후에 전개되는 안식일 논쟁이다. 요한은 기적을 통해 예수와 유대 종교 권력 간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기적과 표적의 구분: 본문은 '기적' 그 자체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기적이 가리키는 '표적', 즉 '다른 세상'을 볼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병자의 치유는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이 사건은 예수가 기존의 낡은 질서와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표적이다.
2. 38년 된 병자: 기적을 경험했으나 제도에 머무른 인물
38년 된 병자는 예수의 능력으로 치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실패한 인물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제도에 대한 의존: 그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라고 말하며, 여전히 세상의 방식(연못의 전설)과 규칙에 의존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예수께 직접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의 거부: 치유 후, 그는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를 만나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μηκέτι ἁμάρτανε)며 불행의 근본 원인(ἁμαρτὶα, 하마르티아)을 알려주셨음에도, 그는 이 기회를 외면했다. 이는 아무런 기적 없이도 삶의 본질을 꿰뚫었던 사마리아 여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제도로의 회귀와 고발: 그는 결국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고발했다. 이는 예수로 인해 열린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보기보다, 기존 사회의 죽은 제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는 선택이었다. 그는 움직일 힘도, 도와줄 사람도, 제도 안에서 희망도 없었지만, 그 제도를 떠날 생각 또한 없는 인물이었다.
'38년'의 상징성: '서른여덟 해'는 신명기 2장 14절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광야에서 방황하며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한 세대를 상징하는 '멸망의 세월'이다. 병자는 기적을 경험하고도 이 멸망의 세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3. 신앙의 함정: 초월적 경험이 세속적 가치로 대체될 때
저자는 자신의 초기 목회 경험을 통해 초월적 경험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신앙의 함정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개인적 경험: "믿음만 있으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는 생각으로 목회를 시작했으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이 쌓이면서 믿음보다 의심이 앞서게 되었다. 이는 '믿음으로 무엇을 그렇게 이루고 싶었던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한국 교회의 문제: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한국 기독교 신앙인 다수가 겪는 문제와 연결된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신앙을 시작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다른 것으로 대체했다. 그 대체물은 바로 '복', 즉 돈과 권력이었다. 내로라하는 목사들이 이 함정에 빠져 원래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사례(분당갈보리교회): 담임목사의 횡령 문제로 분쟁이 벌어진 교회의 사례는 돈과 권력이 목회 문제의 핵심 원인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예수께서 돈과 권력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십자가를 통해 '다른 세상'을 여셨음을 강조한다.
4. 안식일 논쟁의 본질: 죽은 제도와 생명의 충돌
이 사건이 예수와 유대인 사이의 갈등을 폭발시킨 기폭제는 '안식일' 문제였다.
율법의 본래 목적: 율법(모세오경)은 애굽을 탈출한 오합지졸의 백성을 광야라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질서 있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약이었다. 십계명은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이 만연하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엘로힘')이라 부르며, 상상하기 힘든 근친상간이 벌어지던 '개돼지만도 못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신의 명령이었다.
제도화된 율법의 폐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의 본래 정신과 도덕적 원리는 무시된 채, 역사적 상황에서 생겨난 방편이 절대화되고 조례화되었다. 안식일 규정은 생명을 살리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사람을 억압하는 죽은 제도로 전락했다. 민수기 15장에서는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돌로 쳐 죽일 만큼 율법은 엄격했고, 이는 누군가를 제거하는 좋은 핑계가 되기도 했다.
예수의 도전: 예수는 율법의 폐해가 아닌 완성을 위해 왔다고 선언했다. 그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율법의 주인임을 드러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 이 발언은 안식일 규정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신성모독적인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7-28): 이 선언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예수는 죽은 제도를 지키는 것보다 한 인간을 회복시키는 생명의 일이 더 중요함을 분명히 했다.
5. 결론: 다른 세상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살기
이 모든 분석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수렴된다.
두 개의 세상, 하나의 삶: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이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이상의 것, 즉 '저 세상'을 말씀하셨다. 진정한 해답은 **'그 세상(저 세상)을 보는 안목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에 있다. 이 세상의 가치로는 저 세상을 그려낼 수 없다.
존재 방식의 변화: 기적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근원적인 여망(輿望)이 있어야 한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예수의 명령은 단순히 육체의 회복을 넘어, 기존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다른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라는 촉구이다.
궁극적 해답: 신앙의 여정은 처음에는 능력과 기적을 구하다가, 점차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그분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실을 실감할 때, 영원한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이 세상의 삶을 넉넉하게 바라보며 사는 데 따르는 불안이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삶의 노예, 욕망의 노예로 살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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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com/@moon.mok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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