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문 목사의 직설/直說요한복음_21. 하나님과 통하는 연결고리 | 사람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요한복음_21. 하나님과 통하는 연결고리 | 사람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요한복음_21. 하나님과 통하는 연결고리 | 사람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Update: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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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하나님과 통하는 연결고리 | 사람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 요한.5,19~29
· 유튜브로 시청할 것을 권합니다. 자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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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분의 헌금으로 이 영상을 내보냅니다.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헌금: 농협 060-02-192192 · 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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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면
· 지금 이런 삶을 넘어선 전혀 새롭고 온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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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 끊어진 연결고리의 회복

1. 서론: 현대 신앙의 신학적 불균형

현대 기독교 신앙은 중대한 신학적 불균형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그의 인성(人性)은 신앙의 변두리로 밀려났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하나님과 신도 사이의 본질적인 '연결고리'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수가 우리와 같은 '사람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그는 더 이상 우리의 삶 속에서 현실적인 길잡이가 되지 못하고 추상적인 경배의 대상으로만 남게 됩니다. 본 논평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예수의 자기 정체성이었던 '사람의 아들' 개념을 회복하는 것이 왜 현대 신앙의 생명력을 되찾는 데 필수적인지를 논증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복음서, 특히 요한복음의 증언을 통해 예수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밝혔는지 분석할 것입니다. 그다음, '사람의 아들'이 어떻게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 중심의 교리로 전환되었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그 신학적 귀결이 오늘날 교회에 어떤 문제들을 낳았는지 심층적으로 진단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아들' 예수의 역할을 재정립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회복하고, 신앙의 현실성을 되찾기 위한 건설적인 신학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온전한 인성을 회복함으로써 그의 신성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욱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잊혔던 '사람의 아들' 예수를 다시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살아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복음서의 증언: 예수의 자기 정체성,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신학적 논의는 그가 자신을 누구라고 밝혔는지에 대한 성서적 증언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후대의 교리나 신학적 해석 이전에,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의 삶을 목격한 요한의 기록은 예수의 자기 인식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독특하고도 명확한 증언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의 자기 호칭 분석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이다(ἐγώ εἰμι)'라는 표현을 일곱 차례 사용하십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와 사역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선언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 6:35 , 48, 51)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12 , 9:5)
“나는 양의 문이다” (요 10:7, 9)
“나는 선한 목자다” (요 10:11 ,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1:25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 (요 15:1, 5)
이처럼 다양한 비유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셨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께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직접적으로 ‘나는 하나님이다(ἐγώ εἰμι ὁ θεός)’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를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일관되게 칭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보다 먼저 인성(人性)의 토대 위에서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간접적 신성 묘사와 그 의미
물론 복음서는 예수의 신성을 간접적으로 증언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요한복음 20장 28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도마의 고백입니다. 그는 예수를 향해 "나의 주님이요 나의 하나님입니다(ὁ κύριός μου καὶ ὁ θεός μου)"라고 외칩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통틀어 인간이 예수를 '하나님(θεός)'이라고 부른 유일한 장면으로, 이는 예수의 신적 성품을 드러내는 극적인 순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신학적으로 분별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는 제자의 신앙고백을 통한 간접적 묘사일 뿐, 예수님 자신이 직접 사용한 자기 호칭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이러한 신적 성품(θεός)이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시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4-35절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θεός)이라 하셨거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도마의 고백이 단지 예수 한 분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분과 하나 된 모든 이들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 목표, 즉 '신의 성질'을 소유하는 것임을 암시합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시며 이 길의 선구자가 되셨습니다.
예수의 자기 인식이었던 '사람의 아들' 개념이 어떻게 후대 교회를 거치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신성을 절대화하는 '하나님의 아들' 교리로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전환 과정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3. 역사적 전환: '사람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의 변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이 어떻게 특정 교리로 확립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현대 신앙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예수의 자기 인식이었던 '사람의 아들'이 점차 잊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 중심의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니케아 공의회와 바울 신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서기 325년)의 결정과 그 비판적 분석
서기 325년, 니케아(현대 터키 이즈니크)에서 열린 공의회는 기독교 역사상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를 공식적으로 '하나님', 즉 '성자 하나님'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당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던 아리우스의 주장을 반박하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수호하기 위한 '상황적 조처'였습니다. 예수의 신성을 교리적으로 확립한 이 결정은 이후 기독교 신학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결정의 역사적 한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 적이 없는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점은 중요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예수님 자신은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 칭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을 설명했지만, 후대의 교회는 교리적 통일성과 신학적 논쟁의 필요 속에서 그의 정체성을 존재론적인 '하나님'으로 공식화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의 인성이 지닌 풍부한 신학적 의미가 축소될 위험이 생겨났습니다.

바울 신학의 역할과 영향
사도 바울은 초기 기독교 교회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으며,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환상을 통해 부활한 예수를 만났습니다(사도행전 9장).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대면했던 사람이 전하는 것에다 자신의 사상思想을 덧입혔"고, "그렇게 교회가 탄생했다"는 비판적 평가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특히 교회가 '사람의 아들' 개념을 점차 잊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만을 강조하게 된 배경에는 실용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 "훨씬 유리하고 편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고뇌와 한계를 지닌 '사람의 아들'보다는, 기적과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용적 선택은 결과적으로 예수의 인성을 소홀히 하게 만들었고,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약화시키는 신학적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가 교리적 통일성을 위해 예수의 신성을 제도화했다면, 바울 신학에 기반한 초기 교회는 복음 전파의 효율성을 위해 그 신성을 대중화했습니다. 이 두 역사적 흐름은 '사람의 아들'이 지닌 관계적 깊이보다 '하나님의 아들'이 지닌 권능의 이미지를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4. 신학적 귀결: 끊어진 연결고리와 현실성을 상실한 신앙

예수의 인성을 망각하고 신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신학은 두 가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신도 사이의 본질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버렸고, 둘째, 기독교 신앙이 삶 속에서 발휘해야 할 '현실성'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두 문제는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현대 교회가 겪는 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예수 그리스도가 '그냥 하나님이시기만 한다면 우리하고 관계가 소원(疏遠)해진다'는 진단은 현대 신앙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전능하고 완전한 하나님으로만 존재하는 예수는 경배와 찬양의 대상일 수는 있으나, 우리의 일상적인 고뇌와 연약함을 공감하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현실적인 안내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리에게 멀게 느껴지는 존재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아들' 예수를 통해 우리 곁으로 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오늘날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거부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신앙인은 예수님께서 사람이신 것을 거부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이신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 핵심적인 연결고리를 스스로 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가 사라진 자리는 세속적 가치관이 채우게 됩니다. 담임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습 문제,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 대신 현세의 복만을 추구하는 기복 신앙 등은 모두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겼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현실성을 잃었기에, 신앙은 더 이상 삶의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세속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잠재성 상실
예수의 인성을 망각한 신학은 신도들이 스스로 도달해야 할 영적 목표와 잠재성마저 앗아갔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4-35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이라 하셨거든"이라고 기록하며, 본래 기독 신앙이 신도 역시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음을 암시합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분과 하나를 이루는 삶이 가능함을 몸소 보여주신 선구자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 또한 그 길을 따라 하나님과 연결되고 신적인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앞서 행하셨으니 사람의 아들인 나 또한 못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러면서 영원한 세계가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이 인식이 신앙에 생명을 불어넣는 현실성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으로만 분리해 놓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삶을 따라야 할 모델로 삼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단지 우리를 구원하는 외부의 존재일 뿐, 우리가 본받아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이 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신도들은 스스로 하나님과 연결될 잠재성을 잃어버렸고, 이는 오늘날 교회가 세속의 가치관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심각한 신학적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아들' 예수의 역할을 신앙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그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5. 대안의 모색: '사람의 아들' 예수,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

단절된 연결고리를 회복하고 신앙의 현실성을 되찾기 위한 신학적 대안은 '사람의 아들' 예수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는 추상적인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사이를 잇는 완벽한 다리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길을 열어주고, 영원한 삶이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통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완전한 연합 모델
예수님의 사역은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의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라는 말씀은 예수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이것은 무능력의 고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능력입니다." 자신의 모든 의지를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일치시킴으로써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수행하는 최고의 능력이 되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을 때, 비로소 인간은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사람의 아들' 예수가 증명한 것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라는 선언 역시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신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뜻과 목적과 사랑 안에서 완전한 관계적, 의지적 일치를 이루었음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연합의 모델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을 위한 '길, 진리, 생명'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사셨기에, 우리는 그의 말씀을 통해 비로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현실적으로 실감하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통로'를 얻게 됩니다(요 14:6). 예수의 인성이야말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관계를 맺게 하는 필수적인 매개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시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는 말씀은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그의 선택을 바라보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살아있는 표상(表象)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 따라가야 할 유일한 길입니다.

영생과 부활의 재해석
'사람의 아들' 예수의 가르침은 영생과 부활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합니다.

영생/삶(조에, ζωή)의 현재성: 영생의 본래 뜻은 단순히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영원하신 존재와 어떤 관계냐는 문제"입니다. 즉, 삶의 양(duration)이 아니라 질(quality)에 관한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라는 말씀과 "곧 이때라(νῦν)"는 강조는, 영생과 구원이 먼 미래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시작되는 삶의 질적 전환임을 분명히 합니다.

부활의 의미: 요한복음 5장 29절에 언급된 생명의 부활(ἀνάστασις ζωῆς)과 심판의 부활(ἀνάστασις κρίσεως)의 차이는 육체의 소생 여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이가 부활할 것을 전제합니다. 핵심은 부활 이후에 맞이하게 될 '삶의 상태'입니다. 모두가 살아 있지만, 그 삶의 상태가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한 참된 삶이며, 다른 하나는 관계가 단절된 '삶이 아닌 삶'입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는 죽음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아들' 예수는 우리 신앙의 구체적인 길과 현실적인 목표, 그리고 영원한 희망을 동시에 제시합니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현대 신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6. 결론: 균형의 회복과 살아있는 신앙을 향하여

본 논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동안 기독교 역사 속에서 간과되어 온 '사람의 아들'로서의 인성을 회복하는 것이 현대 기독교의 신학적 불균형과 현실성 상실의 위기를 극복할 핵심 열쇠임을 논증해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는 신앙은, 그가 먼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온전한 관계를 맺는 길을 걸어가셨다는 사실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그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가 보여준 길,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과 하나를 이루고자 했던 삶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 신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제시합니다.

관계의 회복: 예수의 인성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이상 멀고 두려운 심판자가 아닌, 우리의 삶에 깊이 공감하며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는 친밀한 '아버지'로 인식하게 됩니다. 끊어졌던 연결고리가 회복될 때, 신앙은 살아있는 관계가 됩니다.

삶의 현실성: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사람의 아들' 예수는, 우리 또한 현재의 삶 속에서 유혹과 고난을 이겨내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더 이상 비현실적인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됩니다.

영원의 현재화: 영생과 부활이 죽음 이후의 막연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시작되는 삶의 질적 전환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참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고백하는 신앙은 단순히 교리적 동의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아들' 예수가 보여주신 것처럼,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의식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는 실제적인 경험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균형 잡힌 신앙의 회복을 통해 비로소 현대 교회는 세속화의 위기를 넘어서,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시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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