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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오늘의 묵상

Author: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염철호 요한 신부 / 부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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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매월 발행하고 있는 '매일미사' 중 신부님(매월 필자 변경)의 소중한 말씀인 '오늘의 묵상'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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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1일(토요일) / 성가 - 446 우리는 주의 사랑을 【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 ●오늘 제1독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하느님께 벌 받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느님의 벌이 무서워 남자는 여자에게 탓을 돌립니다. ●여자도 뱀에게 탓을 돌립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다릅니다. ●여자는 뱀에게 속은 사실을 말합니다. ●뱀의 기만과 교활함을 인식하였다는 뜻입니다. ●뱀으로 형상화된 욕망과 싸우는 것은 힘겨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여인의 후손)이 하느님의 말씀에 힘입어 욕망을 이겨 내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에는 고대 근동의 독사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미움이 깔려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과 악의 만남이 마치 사막에서 유목민과 독사의 만남처럼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가 살고 죽는 싸움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의 최종 승리자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여인의 후손이신 그분께서 악마의 유혹을 이기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지배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된다고 말합니다(야고 1,14-15 참조). ●제1독서의 말씀에 따르면, 욕망(뱀-욕망의 총체)은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저주의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동물들과 싸우며 땅의 풀을 뜯어먹고 이마에 땀을 흘려 먹을 것을 얻게 된다는 창세기의 예고는 오늘의 현실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모두가 경쟁자가 되고 땅은 미래를 약속받지 못한 채 점점 더 황폐해져 갑니다. ●죄의 결과인 벌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시는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부적인 것으로서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겪어야 하는 결과를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고 선언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인간의 범죄 이후 우리는 친구로서 다가오셨지만 심판관이 되어 버리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적어도 불의한 심판관이 아니십니다. ●그분께서는 거짓과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자 애쓰시는 의로우신 심판관이십니다. ●그보다 더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주님이시고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다고 증언합니다(로마 5,20 참조). ●언제나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마태 9,13 참조).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세계 병자의 날: 교회는 해마다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이는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되었다.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하였다. 이날 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기도한다. 또한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의료인도 함께 기억하며 병자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책임감을 다지도록 기도한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 성가 - 3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2019년 2월 14일부터 카톡과 함께 운영해 왔던 '오늘의 묵상'은 운영자 사정으로 2024년 2월 중 업로드 예정입니다. 신부님의 소중한 '오늘의 묵상' 말씀을 중단하게 됨에 죄송함과 그동안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2023년 2월 10일(금요일) / 성가 – 294 모든 성인 성녀시여 【 가장 위험한 뱀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끝없는 욕망 】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지으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죄를 짓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뱀의 존재를 말하기에 앞서 뱀의 교활함은 매우 놀랍습니다. ●뱀은 주 하느님의 말씀(계명) 가운데 오직 부정적인 말씀만 가져다 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뱀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다른 모든 선물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한계(금지)의 말씀이 사실은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담고 있음을 망각하게 합니다. ●뱀의 질문에 여인이 대답합니다. ●언뜻 보면 여인이 뱀의 유혹에 당당히 맞서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인이 뱀의 논리에 따라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산의 중심에는 생명나무와 뱀이 주장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함께 있었지만(창세 2,9 참조), 결국 여인의 마음에는 생명나무가 없어지고 금지된 계명만 남습니다. ●여기에다 여인은 하느님의 금지 계명을 하나 더 늘립니다. ●그 나무 열매를 ‘먹어서도’ 안 되지만 ‘만져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뱀은 분명히 자기 욕망을 분출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뱀은 언어의 마법사입니다. ●말의 모호함을 이용하여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말로는 죽음에서 사람을 구해 줄 것처럼, 그래서 자신이 사람을 지켜 줄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지배하려 합니다. ●뱀은 사람에게 친구처럼 다가오지만 오히려 불행의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자라게 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여인이 뱀의 제안을 바라고 열망하였음을 드러내려고 반복된 표현을 사용합니다.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여인의 눈이, 그의 마음이 바라고 탐합니다. ●‘바라다’와 ‘탐하다’의 조합은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둘 다 아주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의 욕망을 표현합니다(시편 78[77],29-30; 잠언 7,25; 미카 2,2 참조). ●세상에는 우리를 꾀는 뱀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뱀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끝없는 욕망이 아닐까요? ●오늘도 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살피며 하느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말씀에 기대어 살아갑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480년 무렵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성 베네딕토 아빠스의 누이동생인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성인이 세운 여자 수도원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성녀는 베네딕토 성인과의 영적 담화를 통하여 수도 생활에 대한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았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9일(목요일) / 성가 - 451 주께 나아가리다 【 다름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 나아가도록 좋으신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새겨 봅시다 】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 ●오늘 제1독서에서 창세기 저자는 마치 하느님의 마음을 읽고 써 내려가는 듯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과 그 안의 많은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보시니 좋았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정반대의 표현을 보고 있습니다. ●히브리 말은 이 뚜렷한 대조를 더 쉽게 드러냅니다(키-토브/로-토브). ●사람은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이 곁에 있음에도 고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눈에 사람의 고독과 외로움이 보였고 그분께서는 이것을 해결하려 나서십니다. ●우리말로 “협력자”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 ‘에제르’는 성경에서 죽음의 위협에서 누군가를 구해 주고자 개입하는 데 사용되는 말로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표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협력자를 선물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이야기에 등장하는 ‘라자로’와, 요한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친구 ‘라자로’는 창세기의 ‘에제르’와 같은 어원을 지닌 말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어 여자를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담의 갈빗대’는 성경에서 쓰인 본뜻과 조금 다릅니다. ●이 낱말은 계약 궤의 한 면, 천막의 한 쪽 면, 성전의 옆 면, 산의 다른 한 쪽 면, 두 쪽으로 나뉜 문의 나머지 한 쪽을 가리킬 때 쓰인 말입니다(탈출 25,12; 26,20; 1열왕 6,34 참조). ●히브리 말 성경을 그리스 말로 옮긴 최초의 번역 성경 ‘칠십인 역’에는 ‘갈빗대’라는 말이 없고 ‘몸의 한 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한 면으로 여인을 만드셨다는 표현은 남녀가 어느 한 쪽만으로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남자와 여자, 이 둘은 본성이 같으면서도 엄연히 구별됩니다. ●히브리 말은 둘의 본성이 같다는 것과 함께, 서로 구별된다는 점을 공통 어원을 지닌 다른 말을 사용하여 분명히 표현합니다(잇시/잇샤). ●다름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 나아가도록 서로를 위하여 ‘알맞은 협력자’를 보내 주신 좋으신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새겨 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8일(수요일) / 성가 – 26 이끌어 주소서 【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낙원’의 산지기, 돌보고 섬기는 하느님의 충실한 관리인이 되어야 합니다. 】 ●오늘 제1독서가 그리는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사막 한가운데에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고 거기서 사방으로 물줄기가 뻗어 나가며, 물 속에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넘쳐 나고, 물이 지나는 땅 주변에는 식물들이 풍성히 자라나고 동물들이 활기 넘치게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모든 이가 꿈꾸는 이상향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히브리 말로 된 구약 성경을 그리스 말로 맨 먼저 번역한 이들이 이 정원을 가리켜 ‘낙원’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사람이 이 정원에서 할 일을 규정한 동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하다’ 또는 ‘경작하다’의 의미를 지닌 동사 ‘아바드’입니다. ●그런데 이 동사는 구약 성경에서 흔히 ‘봉사하다’, ‘섬기다’, ‘공경하다’의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따라서 이 낱말은 주인을 위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직무를 받은 종의 역할을 드러냅니다. ●사실 창세기 첫 장에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땅의 권한을 위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1,26.28 참조). ●결국 이 말은 사람이 땅을 지배하라는 의미가 땅을 섬기는 일, 땅을 공경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두 번째 동사는 ‘-을 잘 바라보다’, ‘-을 눈을 뜨고 지키다’라는 뜻을 지닌 ‘샤마르’입니다. ●이 낱말은 사람이 정원을 지키는 소명을 받았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인간이 땅을 지배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인간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땅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낙원’의 산지기로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섬기는 하느님의 충실한 관리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껏 우리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훼손한 기존의 생활 양식을 되돌아보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어 내는 일에 모두 함께 관심을 가지고 발맞추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7일(화요일) / 성가 - 21 지극히 전능하신 주여 【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기대되는 것은 그분의 통치 원리를 따라 자기 일을 하는 것 】 ●오늘 제1독서에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시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남성과 여성” 또는 “수컷과 암컷”이라고 옮기는 편이 낫습니다. ●이 표현이 구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대부분 짐승과 관련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창세 6,19; 7,16; 레위 3,1; 3,6 참조). ●적어도 이 표현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창세기에서 사람의 창조는 여섯째 날 동물이 창조된 날에 함께 이루어집니다.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동시에 동물의 본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닌 이러한 동물의 본성은 개별적 차원을 넘어 집단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나(창세 49,17.27 참조), 또한 다니엘서에서 바빌로니아의 정복자가 짐승의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규정된 것은(4,13 참조)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뒤에 곧바로 그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면서 소명을 주십니다. ●그것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고 땅과 바다와 하늘의 동물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소명입니다. ●또한 그분의 창조에는 온유함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와 책임을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기대되는 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그분의 통치 원리를 따라 자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창조 이야기 전체에서 하느님께서는 말씀과 영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하느님을 닮고자 말씀과 영의 온유한 힘으로 자기 생명의 원동력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없다면 사람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세상에 폭력의 씨를 뿌리고 세상을 파괴하고 죽음을 가져오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소명에 올바로 응답하기를, 그래서 인간이 이 땅의 동물들과 피조물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자신에게 내재된 동물의 본성을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 영의 힘으로 다스리는 겸손한 목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는”(이사 11,6) 세상,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은’ 세상을 우리 마음에 품고 이를 이루려고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6일(월요일) / 성가 - 14 주께 찬양드리세 【 “주님, 당신이 저의 등불 밝히시나이다. 하느님이 저의 어둠 밝혀 주시나이다.” 】 ●오늘부터 교회는 한 주 동안 제1독서에서 창세기의 말씀들을 들려줄 것입니다. ●창세기 첫 장은 글자 그대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첫 장이 그리는 세상은 한마디로 조화롭고 균형 잡힌, 잘 정돈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첫째 이유는 창세기 첫 장에 단 한 번도 부정의 낱말(‘아니오’)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에 맞서시는 하느님께서는 한 번도 부정의 말을 하시지 않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십니다. ●창조 이야기의 세상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이야기 속에 후렴구처럼 이어지는 반복 구문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날”과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가 대표적이고, 또 구약의 십계명이 열 가지 말씀인 것처럼 정확히 열 번 되풀이되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반복 구절도 그러합니다. ●열 번(완전 수)의 창조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창조주 하느님의 평온함에 놀라고 우리가 그분의 유순함과 평온함을 본받도록 초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학자들 사이에 완전히 의견 일치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창세기 1장 1절부터 3절을 하나로 묶어,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알리는 위대한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첫 절을 시간절로(종속절), 2절은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는 삽입구로, 그리고 3절을 주절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 땅은 ‘토후’와 ‘보후’였다(땅은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 -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어라(생겨라).” ●이렇게 되면 창세기의 첫 세 구절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시작되었고,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가 “빛이 있어라(생겨라).”라는 첫 말씀으로 이루어졌음을 더욱더 강조하는 구절로 읽힙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를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이 세상에 왔다.”(요한 1,9)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을 비추는 참빛이신 하느님의 말씀에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입시다. ●그분 말씀의 빛으로 하루를 더 온유하고 평온하게 살아 봅시다. ●“주님, 당신이 저의 등불 밝히시나이다. 하느님이 저의 어둠 밝혀 주시나이다”(시편 18[17],29).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인근의 도쿠시마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한 뒤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대단한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 수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1597년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1862년 그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4일(토요일) / 성가 - 55 착하신 목자 【 믿는 이의 삶은 주님께 바치는 한 편의 기도. 주님과 함께 머무는 침묵의 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오늘 복음에는 “외딴곳으로”라는 표현이 두 번 거듭 나옵니다(31절과 32절).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그 뜻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며 일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쉬라고 하셨고, 그들과 함께 따로 외딴곳으로 가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잠시 군중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장면이 때때로 나오는데, 그 다음에는 언제나 중요한 계시가 이어집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낫게 해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7,33 참조). ●당신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9,2 참조).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 곳도 군중과 따로 떨어진 한적한 집입니다(9,28 참조). ●교회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활동과 애덕을 실천하는 데는 신자들의 많은 노력과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저마다의 열정과 열의로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자칫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잃을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주님과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 인간적인 기준을 따르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활동이 개인의 선호와 관심에 따라 흘러가기도 합니다. ●제자는 언제나 스승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다시 돌아와 그분과 일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계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러면 우리는 예수님과 따로 한적한 곳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믿는 이의 삶은 넓게 보면 주님께 바치는 한 편의 기도이고,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며, 이 모든 것 안에 주님과 함께 머무는 침묵의 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머물지 못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집착과 열망에 따른 것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성당을 찾는 모든 신자가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기쁨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주님 안에 머물면서 삶의 방향을 찾고 그분의 양식으로 힘을 얻는 ‘외딴곳’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3일(금요일) / 성가 – 24 내 맘의 천주여 【 요한에게서 죄를 씻고 악습을 끊어 내는 회개의 삶, 헛된 욕망을 정화하는 기도와 절제의 모범을 배울 수 있습니다. 】 ●오늘 복음에는 세상의 사람 “헤로데”의 이름이 일곱 번, 하느님의 사람 “요한”의 이름이 일곱 번 거듭됩니다.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이 두 이름을 일곱 번씩 드러냄으로써 두 삶을 철저히 대조하고 서로 맞서게 하려는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가 이 가운데 어떤 삶을 살지를 곱씹어 보라는 것 같습니다. ●또 오늘 복음에는 체포, 감옥, 구금, 처형, 죽음, 무덤과 같은 표현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표하듯 등장합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루카 1,76)라는 말씀대로 세례자 요한은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에 앞서 하느님의 길을 걸어간 선구자였습니다.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서부터 성모님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을 반기며 기뻐하던 요한은(루카 1,44 참조), 예수님에 앞서 광야에 나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분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처럼, 그리고 그분에 앞서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으로(이사 53장 참조) 살아야 할 자신의 운명을 느끼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이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르 1,3)인 요한의 외침과 선구자다운 증언의 삶을 우리 삶에서 재현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세례자 요한이 외친 회개의 삶을 기억하고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죄를 씻고 악습을 끊어 내는 회개의 삶, 헛된 욕망을 정화하는 기도와 절제의 모범을 배울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진리를 상대화하고 복음의 가치를 희석시키며 세상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이 세상에(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강론 참조) 대하여 복음의 진리를 담대히 증언하는 그의 용기와 정의를 위한 희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참된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늘 좋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고 그분께 희망이 되어 주었을 테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라고 말하며 늘 스스로 낮추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기 위하여 먼저 요한에게서 배웁시다. ●그러고 나서 요한의 정신과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 갑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사진출처: 나무위키, 세례자 요한, 요르단강에서 예수에게 세례하는 세례자 요한 https://namu.wiki/w/%EC%84%B8%EB%A1%80%EC%9E%90%20%EC%9A%94%ED%95%9C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2일(목요일) / 성가 - 421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 주님에 대한 희망으로 넘쳐나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으로 완성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 ●주님 성탄 대축일이 어느덧 사십 일이 지났습니다. ●성탄의 밤에 우리에게 오신 아기에 관한 기쁜 소식을 떠올려 봅니다. ●그 아기는 어둠과 죽음 속에 있는 이들을 비추기 위하여 떠오른 ‘빛’이었습니다(루카 1,78-79 참조).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주님 봉헌 축일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미 4세기부터 이 신비를 기억하며 ‘만남 축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시고, 또한 시메온과 한나처럼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을 기다리며 충실히 살아온 이스라엘의 남은 이들과 만나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 빛의 예식에서, 세상의 참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베들레헴에서 목동들 위에(루카 2,9 참조), 그리고 멀리서 그 빛을 따라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통하여(마태 2,2 참조)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러난 ‘모든 민족들의 빛’이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꼭 사십 일 전에 우리는 베들레헴의 빛을 보고 찾아온 목동들과 동방에서 온 현인들처럼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그 빛을 따라 살고자 다짐하였습니다. ●그 빛이 우리가 보고 믿고 따라야 할 유일한 빛이라는 사실을 오늘 다시 한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이 빛이 아니라 예쁘고 화려한 듯 보이는 다른 빛들도 많습니다. ●그 빛들을 따라 자기 희망과 꿈을 키우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베들레헴의 아기를 우리 각자의 성전에서 새롭게 만나라고 초대합니다. ●시메온과 한나처럼 아기를 두 팔에 감싸 안고 그분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우리 인생의 유일한 별을 새롭게 만나고 그 빛을 저마다의 가슴속에 간직하라고 말합니다. ●시메온은 ‘하느님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다.’는 뜻이고, 한나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시메온과 한나처럼 우리의 삶이 주님에 대한 희망으로 넘쳐나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으로 완성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주님 봉헌 축일: 교회는 성탄 다음 사십 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수도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를 ‘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봉헌 생활의 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바꾸었다(주교회의 상임위원회 2019년 12월 2일).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2월 1일(수요일) / 성가 – 29 주예수 따르기로 【 주님을 믿고 따르는 데에서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 ●‘집’이나 ‘고향’이라는 말은 많은 경우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고 애틋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당신의 고향으로 가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집(안)”이라는 표현이 무려 119번이나 나오는데, 이 표현이 늘 좋은 뜻으로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전통’이라는 틀에 매여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는 이들을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예레 11,17; 바룩 2,26; 에제 3,7 참조).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탈출 20,2; 신명 5,6)이라고 소개하십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첫 말씀은 아브라함이 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12,1 참조). ●이처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집이나 고향, 곧 과거의 전통과 자기의 예전 생각에서 떠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배우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향 나자렛을 떠나 카파르나움에서 첫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실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뽑으신 것이었는데(마르 1,16-20 참조),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새 가족을 만들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이 가족을 교회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우고 만드신 새 가족이 나자렛의 옛 가족과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곧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넘어집니다. ●나자렛 주민들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는 이는 과거의 전통과 생각과 신념으로 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옛 집과 고향(자기 생각, 신념, 전통, 문화 등)에서 끊임없이 나오려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을 자신보다 앞세우는지 아니면 하느님보다 자신을 앞세우는지에 따라 믿는 이의 삶이 결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7)라고 고백하시며 늘 당신보다 하느님 아버지를 앞세우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데에서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31일(화요일) / 성가 - 32 언제나 주님과 함께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 ●오늘 우리는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던 부인을 고쳐 주신 이야기를 듣습니다. ●액자처럼 구성된 두 이야기는 모두 믿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 딸의 치유를 청하며 소개되는 인물은 ‘야이로’라고 불리는 회당장입니다. ●야이로는 히브리 말로 ‘빛을 주신다’ 또는 ‘빛을 밝혀 주신다’는 의미를 가집니다(민수 32,41 참조). ●그의 이름은 오늘 복음에서 매우 상징적인 구실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으로 이미 죽은 회당장의 딸을 되살려 주십니다. ●이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이 말씀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죽음도 넘어서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하혈하던 여인의 이야기도 치유를 넘어 믿음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그에게 병이 낫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에 답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혈하던 여인은 온갖 노력을 하였지만 병을 고치지 못하고 더 나빠졌습니다. ●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던 회당장의 딸은 결국 죽습니다. ●모두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는 여인과 결국 죽음에 이른 회당장의 딸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절망의 모습들입니다. ●이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치유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야이로의 이름처럼 예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굳건한 믿음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의 말이다. 그는 1815년 이탈리아의 토리노 근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양을 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의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젊은이들을 사랑하였던 그는 청소년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가 1859년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려고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훌륭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선종하였고, 1934년에 시성되었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28일(토요일) / 성가 - 19 주를 따르리 【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 ●배를 타고 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이야기는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든 복음서에서 공통으로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도 하고, 나중에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시기도 하지만 배를 탄 제자들은 그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곤경에 빠집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심한 풍랑을 겪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어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늘 복음도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주는데, 그것만이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아닙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말씀은 바람과 파도에 겁을 먹은 제자들을 꾸짖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이야기에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제자들이 믿지 못하였다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슬픈 결말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길을 가던 두 제자가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16, 11.13 참조). ●또한 복음은 가장 처음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도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16,8)라고 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고 믿기보다 두려움이 훨씬 더 컸습니다. ●부활은 합리만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체험할 때 생겨날 수 있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1225년 무렵 이탈리아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몬테카시노 수도원과 나폴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대 알베르토 성인의 제자가 되었다. 1245년부터 파리에서 공부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3년 뒤 독일 쾰른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곳 신학교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그는 철학과 신학에 관한 훌륭한 저서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신학 대전』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술로 꼽힌다. 1274년에 선종하였으며, 1323년에 시성되었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27일(금요일) / 성가 – 21 지극히 전능하신 주여 【 당연하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며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던 가르침의 한 방식입니다. ●오늘 첫째 비유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로 불립니다. ●땅에 뿌린 씨는 저절로 자랍니다. ●농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릅니다. ●씨가 자라 수확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어들일 뿐입니다. ●자연의 변화는 위대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지만, 봄이 되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무성한 잎을 보여 주며 가을에는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놀랍거나 화려하지 않아 그들에게는 이 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늘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늘 그렇게, 당연하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 변화를 일상에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없던 싹이 나고 잎이 나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만 관심을 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싹이 자라는 과정을 하느님 나라에 비기십니다. ●놀라운 변화이고 생명의 성장이지만, 우리는 농부처럼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릅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매 순간에 현존을 알아채지 못하지만 그렇게 우리 안에서 “저절로”, 곧 하느님의 섭리로 충만해집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여느 때보다 우리를 포함한 창조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공동의 집’인 우리 삶의 터전이 오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돌려 주위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며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26일(목요일) / 성가 - 450 만방에 나아가서 【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다른 복음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할 때 상징적으로 “열둘”을 강조하지만, 루카 복음은 일흔두 제자를 언급합니다. ●둘씩 짝을 지어 파견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당시에 어떤 사실을 입증하려면 둘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는 율법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여러 고을로 가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그 나라를 드러내도록 파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명을 받아 파견되고 모든 일에 대한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지 알려 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곳으로 파견됩니다. ●이제 그들도 예수님처럼 적대적인 이들 때문에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야속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들의 사명은 오로지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이는 수확에 대한 표현으로도 잘 드러납니다. ●수확에는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결실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두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의지하여 파견되는 제자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우리에게 오늘, 또 지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줍니다.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시편 96[95],2-3). ●아멘.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티모테오 성인과 티토 성인은 바오로 사도의 제자이며 선교 활동의 협력자였다. 티모테오는 에페소 교회를, 티토는 크레타 교회를 맡아 돌보았다. 바오로 사도의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둘째 서간’과 ‘티토에게 보낸 서간’에는 성직자와 신자들이 지켜야 할 지침에 도움이 되는 권고가 많이 담겨 있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25일(수요일) / 성가 – 16 온세상아 주님을 【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인물이지만, 회심한 뒤에 그가 보여 주었던 열정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으로 옮아갑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넘어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방뿐 아니라 유럽에도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가 남긴 많은 편지는 당시 교회의 상황을 보여 주며, 초대 교회의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그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사명을 가장 잘 실천한 사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표징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님의 활동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입니다.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열거된 기적들은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실현된 적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하며 마귀들을 쫓아내고(사도 8,7 참조),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2,4; 19,6 참조), 손으로 뱀을 잡거나(28,3-6 참조), 안수로써 병자를 고쳐 줍니다(28,8 참조). ●복음은 믿는 이들 모두 이와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의 선포와 활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징이 일어났던 것처럼, 표징은 지금도 교회의 선포와 활동을 통하여 지속될 수 있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 킬리키아 지방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교육받은 철저한 유다인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였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극적으로 회심한 뒤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신하였다. 교회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별도로 지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심이 구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많은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였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21일(토요일) / 성가 - 19 주를 따르리 【 믿음은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은 군중과 예수님의 친척들을 비교합니다. ●집으로 돌아간 예수님과 제자들은 몰려드는 군중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맥락을 보면 군중은 예수님을 보려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고 그분의 업적을 보려고 모여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고치시고 악령을 쫓아내시며 기쁜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은 시작 부분부터 이러한 업적을 다양하게 보여 줍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친척들은 군중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미치셨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잡으러 옵니다. ●같은 한 분이시지만 예수님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예수님의 업적을 보고 그분을 믿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희망을 예수님께 두는 이들과는 다르게 친척들은 그분께서 미치셨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죄인과 세리들과 어울리며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한편으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지만 믿음의 모습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삶의 기준과도 같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판단과 해석의 기준은 다양할 것입니다. ●그 기준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재물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일 수 있지만, 신앙인에게는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아녜스 성녀는 3세기 후반 또는 4세기 초반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는 열네 살 무렵의 어린 나이에 순교하였다. 성녀는 청혼을 거절한 것에 앙심을 품은 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났으나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유약한 나이에 보여 준 그녀의 위대한 신앙의 힘’을 높이 칭송하였다. 교회는 아녜스 성녀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증언하고자 정결을 지킨 순교자로 기억한다. 성녀는 한 마리 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20일(금요일) / 성가 – 29 주예수 따르기로 【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 ●성경에서 ‘산’은 지형적으로 평지보다 높은 곳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산은 구약 성경에서부터 하느님과 가까운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 하느님께서는 하늘 위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고, 산은 그분께 다가가 만나는 장소입니다. ●또한 산은 모세가 하느님께 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나이산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십계명을 받은 이 사건은 하느님의 뜻이 직접 전해지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져 성경 전반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모세의 예형론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 하느님의 뜻이 계시된 장소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산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장소이기도 합니다(마르 6,46 참조).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이미 이런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산에 올라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산에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십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부르심은 온전히 예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르시고 제자들은 응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첫째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분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19일(목요일) / 성가 - 3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 믿음은 알고 고백하며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 】 ●예수님의 주된 활동 무대는 갈릴래아입니다. ●갈릴래아는 호수의 이름이자 호수가 속한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역으로 보면 갈릴래아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유다 지역이 자리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 지역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활동을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중심 도시가 속한 유다 지역, 이스라엘의 최남단인 이두매아,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은 동쪽의 경계를 나타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티로와 시돈은 갈릴래아보다 더 북쪽에 있는, 당시에는 페니키아에, 지금은 레바논에 속하는 도시입니다. ●도시와 지역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갈릴래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전 지역에, 더 나아가 다른 나라들에도 퍼져 나갔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결과를 통하여 마르코 복음은 이미 예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들을 고쳐 주시고 악령을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악령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외칩니다. ●악령의 외침은 예수님의 신원을 드러내지만 그분께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악령의 외침은 진정한 고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루신 가르침과 업적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드러나는 신비를 통하여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은 단순히 아는 것 이상입니다. ●믿음은 알고 고백하며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2023년 1월 18일(수요일) / 성가 – 26 이끌어 주소서 【 계명을 따르다 보면 고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 ●계명을 따르다 보면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하는 계명은 무엇을 해야 또 하지 말아야 거룩하게 지내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열려 있는 가르침입니다. ●유다인들의 율법도 마찬가지다 보니 라삐들은 안식일에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무엇이 노동이고 아닌지를 구분합니다. ●물론 유다교에서 생명이 위독한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안식일에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급하지 않은 지병인 경우는 다른 날에도 고칠 수 있기에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에 속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고치신 이는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입니다. ●복음이 정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 사람은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안식일에 치유하시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바리사이들조차 대답하지 못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것은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규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나무라십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문자 그대로를 따르는 것보다 넓은 의미입니다. ●어쩌면 그 계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하고 고민하는 것부터가 계명을 따르는 과정일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10계명: 1.하느님을 흠숭하라. 2.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고, 하느님을 빙자하여 자신을 변호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3.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4.부모에게 효도하라. 5.사람을 죽이지 말라. 6.간음하지 말라. 7.도둑질하지 말라. 8.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9.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국법은 사람의 외적 행위만 규제하지만 하느님의 법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규제한다.) 10.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출처: 김경식, 『생활교리』 2차 개정판, 대건인쇄출판사, 2002, 400쪽)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Czt9iN4tucg5UUMy1hV-Jg ■ 카톡 http://pf.kakao.com/_xnBtx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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