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타이완 현황ㆍ국제관계진먼(金門) 중공이 못 가져간 원인
진먼(金門) 중공이 못 가져간 원인

진먼(金門) 중공이 못 가져간 원인

Update: 2025-05-05
Share

Description

진먼(金門) 중공이 못 가져간 원인



-1958과 진먼, 무력통일 불가능 현실 인지..



-2025.05.05.-타이완ㆍ한반도ㆍ양안관계ㆍ시사평론 ㆍ



어제(5/4) 타이완의 ‘백세 장군’으로 불렸던 쉬리농(許歷農) 장군이 107세의 고령으로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안녕하세요~ 청취자님’ 프로그램 시작할 때 말씀드렸는데, 외국인에게 있어서 쉬리농 장군을 아시는 분은 극히 드물다고 여겨지지만 그가 살어온 세월과 참여한 사건들은 현대사에서도 배웠을 만한 거라서 오늘 ‘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및 시사평론’ 프로그램 중점은 쉬리농 장군은 아니지만 그가 살었던 시대 중의 1958년 823포전을 중심으로 그후 타이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등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으로 마련하게 되었다.



필자가 작년 6월에 다녀왔던 진먼에 대한 깊은 인상도 있어서 오늘 프로그램 주제를 823포전과 내전이 국제정치화 될 수 있었던 계기 및 그후 타이완 정치에 끼친 영향을 아울러서 간략하게 분석해 본다.








  • (쉬리농 장군) 1949년 이전, 중국 대륙 시절, 일본 침입에 맞서서 싸웠고, 대륙 내에서 정권 다툼으로 인한 국공내전에서 장제스(蔣中正)를 위시한 국민당이 마오저둥(毛澤東)의 공산당에 패해 일시적인 방안으로 타이완으로 국부천도한 후에는 대륙 푸졘성(福建省) 연해 도서들 중 나중에 중화민국 국군의 최전선 기지가 있었던 진먼(金門) 등 섬들을 중공인민해방군이 공략하려고 공격해올 때 그는 진먼에서 공산군과 맞서 싸웠다. 군인 신분으로는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인물이다.

  • 1940년 대륙에서 중앙 육군군관학교 16기 졸업, 육군참모대학교 정()1, 삼군대학교 전쟁대학 장교반 등의 정규 학력과, 육군 제6군단 사령, 진먼 방위사령부 사령관, 국방부 총정치작전부 주임, 행정원 국군퇴역장병위원회 위원장, 총통부 국책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지금은 주로 ‘타이완’이라고 자칭하지만 반세기 이전만 해도 중화민국/자유중국/중국이라고 자칭하거나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그렇게 불러줬다. 중화인민공화국이 1949년10월1일 ‘신중국’이라며 건국하였을 때만 해도 중화민국은 타이베이를 임시 수도로 정하고 필연코 본토수복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무기를 베개 삼아 적과 싸우기를 기다렸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수 차례 시도도 했었으나 소규모 전투에서의 승리와 실패 모두 있었다.



67년 전, 1958년8월23일 오후에 시작되어 이어진 44일 동안 중공군은 근 48만 발의 포탄을 진먼섬 등으로 쏘아댔다. 제2차 타이완해협 위기, 823포전은 ‘타이완/펑후/진먼/마주’를 지킬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적 전투로 중화민국 국군 전쟁사 중에서 매우 중요한 한 장으로 남아있다.



1958년 823포전을 말할 때 1949년 제1차 타이완해협 위기로 불리는 진먼 구닝터우(古寧頭)전투(구닝터우 대첩/ 진먼 보위전 이라고도 불림)를 함께 거론하게 되지만 두 차례의 전투는 여러 방면에서 달랐다. 1949년의 1차 위기와 1958년의 2차 위기로 말한다면 전자는 순수 본토에서 싸웠던 국공내전의 연장전이었고, 후자는 타이완에 수십년 내지 400년 일찍 정착했던 주민들도 참전하였고 미국이 지원을 해준 소규모 국제전쟁의 양상을 띄었다.



포전 내용에 대해서는 거두절미하며 국내 사무가 국제 사무로 변화하는 부분을 살펴보자면, 823 포전이 터진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강렬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미국 국방부는 곧바로 제7함대로 하여금 타이완 해역에서 전투 태세를 취하도록 명했다고 발표했고, 그후 제7함대는 중화민국 해군의 보급을 협조하여 진먼 보급을 도와줬고 아울러 공군과 해병대 및 육군과 함께 방공 및 육해 합동 수륙작전 연습을 진행하였으며, 미국 록히드사가 1954년에 생산한 마하 2급 초음속 요격기 F-104A 스타 파이터와 미사일 대대를 타이완에 파견해 주둔시키는 동시에 타이완에 작전지휘센터를 설립하였다.



중공군에 맞설 수 있도록 미군 군부는 신형 거포를 진먼에 제공하여 국군 화력이 바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여하튼 포격전은 계속되었고 공중에서의 전투도 쉴새없다시피 했다. 그건 중공군에게 있어서 진먼을 점령하려면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요하게 되며, 그럴려면 제공권은 필수이다. 8월23일 포전이 시작된 후 9월부터는 타이완해협 상공과 진먼섬 상공에서 공중전이 끊이지 않았는데, 당시 우리 국군이 제공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었고 20여대의 미그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중공은 제공권에서는 현저히 떨어졌기에 본래 진먼섬을 점령하려던 계획의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걸 감지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군이 목숨걸로 지키고 있는 군사 최선전기지 ‘진먼+마주’ 제도에 대해서 미국측은 장제스로 하여금 중화민국 국군의 진먼/마주 철수를 강요하였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볼 때 국군이 철수하면 중공군은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도 없이 거저 가져가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이 중화민국 정부를 향해 진먼/마주로부터 군 철수를 요구하자 중화인민공화국이 타이완문제에 대해서 재고를 하게 되었고 정책에서의 전환점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더욱이 그 이후 타이완해협 양안간의 상호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중화민국과 미국은 1979년1월1일을 기해 단교를 하기 이전까지 우리와 미국 간의 모든 협의나 조약 또는 공식 부분의 왕래 등에서는 ‘중-미’라고 불렀다. 여기에서의 ‘중’은 당연히 ‘중화민국’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 공식 문서를 보면 <중(중화민국)미 공동방어조약(중미상호방위조약) -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epublic of China >을 양국 정부가 1954년12월 체결하였기에 1958년 823포전에서 미국이 중화민국 정부를 돕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교 이후에는 1979년4월 <타이완관계법>에 의해 타이완 방위에 협조한다고 약속하였다.



(1958년10월21일 장제스(蔣中正, 앞좌) 중화민국 총통의 초청으로 타이완을 방문한 존 포스터 델레스(John Foster Dulles, 우) 미 국무장관. 이들은 1차 회의에서 타이완해협 정세와 공동방위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가졌다. -사진 출처: 문화부 산하, 타이난 소재 국립타이완역사박물관 타이완문화 메모리 뱅크(國家文化記憶庫))



여하튼 823포전에서 미국은 중화민국을 적극 협조해줬다. 그렇지만 당시 미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델레스(임기: 1953-1959년)는 중화민국 군대가 외딴섬에서 철군할 의향을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하였는데 그해 9월30일 국군의 외딴섬 철군을 공개적으로 제시하였다. 당시 장졔스 총통은 이를 수긍할 수 없어서 바로 그 다음날(시월1일) 외딴섬으로부터의 철군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 공표했다.



그렇다면 마오저둥을 위시한 중공은 어떠할까? 중공의 원래 전략은 하이난(海南)섬, 저우산(舟山)군도, 다천(大陳)섬 등 연안 주변 도서들을 이미 공략했으니 이어서는 진먼섬과 마주섬을 차지하면 대륙 연안의 모든 섬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미국이 타이베이와 베이징을 분리하여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국내 사무가 국제사무로 변해버릴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먼과 마주를 당장 공략하기보다는 타이완섬과 펑후섬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진먼,마주를 그대로 놔두자는 전략으로 바뀌게 되었고, 장졔스는 수 차례 비밀리에 정보원의 첩보작전에서부터 공군의 대륙 상공 진입 등 많은 시도를 했었지만 무력으로 본토수복은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닿게 되었고 그후 타이완의 전반적인 인프라 건설, 문화 부흥/진흥 등이 차례 대로 성과를 보이게 되었다.



1958년 전쟁이 ‘정치 민주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으로 보이겠지만 구체적으로 그 시대를 들여다보면 그 전쟁이 ‘휴전’으로 한단락 나지 않았다면, 또는 마오져둥이 굴러들어온 떡이라고 진먼섬을 그냥 먹어버렸다면, 또는 장졔스가 미국의 도움으로 본토수복을 위한 군사적 지원을 더 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의 타이완은 물론 지금의 타이완이 아닐 것이다. 그때 그렇게 되었기에 수십년 후의 타이완의 눈부신 발전이 가능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白兆美



원고ㆍ보도: 백조미

Comments 
00:00
00:00
x

0.5x

0.8x

1.0x

1.25x

1.5x

2.0x

3.0x

Sleep Timer

Off

End of Episode

5 Minutes

10 Minutes

15 Minutes

30 Minutes

45 Minutes

60 Minutes

120 Minutes

진먼(金門) 중공이 못 가져간 원인

진먼(金門) 중공이 못 가져간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