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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구세교-신앙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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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레이]
조레이는 세계구세교의 창시자 명주님(오카다 모키치)께서 창시한 구원의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상대를 향해 손바닥을 펴 드는것 만으로, 인간의 혼에 직접 신의 사랑의 빛을 전달하여 맑혀 영성을 향상시켜 행복을 낳는 방법입니다.
[정화]의 의미
인간 일체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 즉 병(病), 빈(貧), 쟁(爭)과 재난재해로서, 우리들의 쌓인 죄업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기 위한 신의 사랑이자, 인간의 완성을 위해 우리들을 양육시키는 향상의 도구입니다.
[이타애 실천]
남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실천으로서, 명주님께서는 가르침 『행복의 비결』 속에서,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념의 실천] 기도문
1. 저는 신의분령을 받고 태어난 “신의 대행자”입니다. 오늘 저와 만나는 모든 사람도 신의 분령과, 구세주이신 명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만나겠습니다.
2. 저는 무수히 많은 “조상님의 총합체”이자 대표입니다. 제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생각이나 괴로움, 고통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제 조상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라고 받아들이고 명주님께 맡기겠습니다.
3. 제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조상님과 함께 오늘 하루도 명주님의 수족으로서 신업에 쓰임 받겠습니다.
[감사의 실천]
1. [안 되는 감사, 하지만 감사] 보통이라면 감사가 되지 않는 일에도, 감사하는 것이 신의 대애(大愛)를 믿는 신앙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은, 확실히 신께 통하여, 보다 빨리 향상을 허락받고, 행복으로 인도되어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2. [타인을 끌어당기는 사람]이란, 타인의 욕을 하거나, 한탄하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설령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상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감사를 함으로써 신과 연결시키고, 상대도 [신의 도구]로 바뀌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3. 만나는 사람 모두에 대해서, [신의 뜻에 따라, 함께 신업에 쓰임받기 위해, 또 나를 단련시켜 향상시키기 위해 신께서 만나게 해주셨다]라고 생각하고, [감사합니다]하며 감사해 간다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신에게 연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구조]이자, 거기서부터 [구원의 연쇄]가 시작되어 갑니다.
4. [정화에 의한 흐림 불식] 은, 스스로가 신의 진정한 자식으로 되어가는 제 일보가 됩니다. 동시에 조상님이 구원되어 가는 제 일보가 되며, 게다가 미래의 사람들, 즉 우리들 자손이 구원되어 가는 제 일보도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정화할 때야 말로, 본인도, 보살피는 사람도, [신으로부터 과거, 현재, 미래의 삼대(三代)에 걸친 맑힘의 업(業)에 쓰임 받고 있는 것이다]라는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길러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원무궁히 사람의-생명은 있는것임을
알므로서비로소 참다운사람되리
소멸하거나 타지않는보배는 보이지않는
덕을베풀어주는 일에있는것이리
저-세상에 계시는부모에게 진력하는일
비할바가없-는 참다운효도이다
영계(靈界)란 어떤 곳인가,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의지상념(意志想念)의 세계이다. 그것은 육체라는 물적 장애가 없기 때문에 굉장한 자유가 있다. 영(靈)의 의지에 의하여 어떠한 곳에라도 비행기보다도 빨리 갈 수 있다. 초령(招靈)때에 『하늘을 날고 땅을 달려 오셔서, 이 궁거(宮居)에 진좌하시옵소서』라는 말이 있으나, 천 리라도 수 분, 또는 수 초 간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만 영의 행동의 지속(遲速)은, 그 계급에 따르는 것이다. 고급영, 즉 신격을 얻은 영일수록 빠르고, 최고급의 신령에 이르러서는 1초에 몇 만 분의 1보다 빨라서, 일순에 어떠한 원거리라도 도달하지만, 최저급의 영은 천리를 달리는 데도 수십분을 요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급 영일수록 오탁이 많아서 무겁기 때문이다.
또 영은 영 자체의 상념에 따라 신축자재이다. 한 자 폭 정도의 제단 안에도 수백 명의 조령이 즐비하게 있을 수가 있다. 그러할 경우, 순서 계급, 복장 등은 대단히 엄격하여, 어느 것이나 상응의 질서가 유지되어 있다. 물론 인간의 성심이 깃들인 제전은 영은 대단히 기뻐하시지만, 형식뿐인 것은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불교에서는 계명(戒名), 신도에서는 거울, 돌(石), 문자(文字), 신을 모시는 곳 등에 빙의(憑依)한다. 그러므로, 제전 때에는 신분에 따라서, 될 수 있는 대로 성심껏, 훌륭하게 집행해야 한다.
(1947. 2. 5.)
삶과죽음을 번갈아-가면서 영원무궁히
번영해-가-는 사람의영혼이여
저-세상의 일을알지못하고 도를설하는
사람의-말들은 공허그것이리라
자기의몸이 만들어진사실을 알지못하고
신은이-세상에 없다는어리석음
불교에 있어서는 사람의 죽음을 왕생(往生)이라고 한다. 이것은 현계에서 보게 되면 왕사(往死)이지만, 영계에서 보면 태어나서 온다, 즉 왕생이다. 또 죽기 전을 생전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영계에서의 생활을, 몇 년, 몇 십년, 몇 백년인가 계속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와같이 삶과 죽음을 번갈아 가면서 몇 번이라도 태어나기 때문에, 불교에서 윤회전생(輪回轉生)이란 이 사실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영계라는 것은 인간에 대하여 어떠한 관계가 있느냐 하면, 그것은 현계에 있어서, 신으로부터의 수명자(受命者)로서 인간 각자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영체(靈體)에 오예가 퇴적한다. 그와 동시에 육체도, 질병, 노쇠 등에 의하여 수명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일단 체를 버리고 영계에 복귀한다. 즉 귀유(歸幽)한다. 옛날부터 영이 빠져나간 체를 일컬어 망해(亡骸)라고 하고, 육체는 껍데기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의미이다. 그리고 영혼이 영계에 들어가면, 대다수는 오예의 정화작용이 시작된다. 오예의 양에 따라 영계 생활에 있어서의 고하와 정화시한의 장단이 있는 것은 물론이며, 빠른 것은 수년, 수십 년, 늦은 것은 수백 년, 수천 년에 이르는 것까지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화된 것은, 신의 수명에 의하여 재생하는 것이다.
(1947. 2. 5.)
산천초목의 각별한-풍경은 사람의눈을
즐기게하기위한 신의예술이도다
천국으-로 세상사람구제할 소망가지면
내가먼저천국의 사람돼야하노라
예-술-을 즐기어-가면서 몸도영혼도
맑아져-가도다 신의은총으로서
언제나 말하는 바와 같이, 신앙의 목적은, 혼을 연마하고, 마음을 맑히는 일이지만, 그 방법으로서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난행고행과 재해로 인한 고통과, 둘째는 선덕을 쌓는 일과, 셋째는 높은 예술에 의하여 혼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이상 세 가지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첩경인 것은, 높은 예술에 의한 감화이다. 더구나 즐기면서, 부지불식간에 연마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산(山)과 수(水)』의 화가(和歌)를 여가 있을 때마다 읽을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혼은 향상한다. 혼이 향상하면 지혜정각이 연마되기 때문에, 두뇌가 명석하게 되고, 신앙도 쉽사리 철저해진다. 왜냐하면, 『산과 수』의 화가 전체에 진 선 미가 충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나의 목적은, 언령의 힘에 의해서도 신앙을 진전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1950. 5. 6.)
예-술-을 즐기는-마-음 풍부하여진
사람만이천국에 살수있게되리라
사람의정서 달과눈과꽃-을 외면을하-는
사람은-신혼이 낮기때문이리라
봄-철의꽃 가을철의단풍을 사랑하는건
신-의-은총에 보답하는일되리
오늘날까지 종교와 예술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것같이, 많은 사람들이 여겨 왔으나, 나는 이것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정조(情操)를 높이고, 생활을 풍요하게 하며, 인생을 즐겁고 의의있게 해 주는 것은, 실로 예술의 사명일 것이다. 봄의 꽃, 가을의 단풍, 산해의 풍경을 바라다 볼 때, 문예미술의 소양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눈을 통할 때,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솟아나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상으로 하는 지상천국은 “예술의 세계”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정도의 것이며, 흔히 말하는 진선미의 세계란 그것으로서, 예술이야말로 미의 표현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의외로 등한시 해 왔던 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일까. 옛날의 고승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득의로 하여, 당우(堂宇)까지 설계하는 것과 같이, 미의 방면에 대하여 놀랄 만한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걸출한 종교 예술가로서는, 저 성덕태자(聖德太子)일 것이다. 태자의 걸작으로서 지금도 남아있는 나라(奈良)의 법륭사(法隆寺)의 건축이나, 그 속에 있는 회화, 조각 등을 볼 때, 지금으로부터 1,300년 이전에 건조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훌륭함에는 누구라도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 조의조식, 금욕적 생활을 하면서 교법을 홍통한 성자(聖者), 명승(名僧)도 많이 배출하였던 것이므로, 예술과 종교는 심히 인연이 먼 것 같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들은 진선(眞善)은 있어도 미(美)가 없는 것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크게 예술을 고취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1948. 9. 5.)
오로지신의 커다란-마음에 부합하여라
사람의이목에는 마음끌리지마라
크-디-큰 구제하는신업에 봉사를하는
사람이야말-로 큰맘가질지어다
선은취하고 악한것은버리고 구애됨없이
마음즐거웁-게 지상천국건설을
어느 날, 신자 가운데 간부급의 사람이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하며 찾아왔다. 곧 나는 만났던 바, 그의 질문은 『모(某)에 대하여, 모(某)의 소문은 잘못입니다. 그것을 모(某)가 말했으므로, 그 오해를 풀어달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 『나는 지금, 세계 인류 구제의 대업을 위해, 극도로 시간을 유효하게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당신의 문제가 인류 구제에 얼마만큼의 관계가 있는가, 그것을 말해 보시오.』라고 했더니, 그는 몹시 놀라며 몇 번이고 절을 하고 총총 걸음으로 떠나갔다.
위와 같은 웃지 못할 희극이 흔히 있는 것이다. 드디어 최후의 세상은 다가오고 있고, 신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많이 구원하시려고 나를 통하여 대자비적인 활동을 하시고 계시는 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해나 감정문제 등을 호소해 온다고 하는 것은 이 신앙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고방식의 신자도 상당히 있을 것이므로, 따끔한 충고를 해 둔 것이다. 그래서 돌아가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런 여가가 있으면, 신서(神書)를 될 수 있는 대로 읽으시오.』
(1950. 1. 21.)
사랑설하고 자비를타일러도 자신의행실
수반되지않으면 해변의바람이리
신-이아닌 사람신분으로서 경솔하-게
타인의-선악을 심판하지말아라
내가좋다고 남에게강요말라 당하지말라
자유는-신-의 선물이기때문에
이 일에 대해서는, 신자 중에도 부지불식간에 잘못하는 사람이 흔히 있기 때문에 써 보겠는데, 이것도 이전에 내가 쓴 일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도 가끔 귀에 들어오므로 재차 쓰는 것이다. 흔히 저 사람은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비판을 하거나, 심한 것은, 저 사람에게는 사신이 붙어 있으니 조심하라는 등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잘못이며, 사람을 사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실은 그 사람 자신에게 사신이 붙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선악정사(善惡正邪) 같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영분(領分)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인간의 신분으로 신의 지위를 범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당치도 않는 만심(慢心)이고 탈선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사신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으므로 크게 주의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사람은 참으로 신을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 흔히 저 사람의 신앙은 잘못되었다든가, 저 교회의 하는 일은 나쁘니까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등 성실한 채 말하지만, 만약에 신자 중에서 정말로 나쁜 사람이 있다면, 신은 정확하게 심판하여 주시므로, 신에게 맡겨두고 있으면 될 일이며, 조금도 인간의 걱정 같은 것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이것을 믿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신보다도 인간의 힘을 믿는 것이므로, 이만큼 만심착오는 없을 것이다. 우리 구세교는 최고의 신께서 일체를 통할하고 계시므로, 잘못된 사람에 대해서는, 신께서는 최초에 그 사람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주의를 주시지만, 그래도 깨우치지 못할 때에는 목숨마저 거두어 가시는 일이 흔히 있다. 지금까지도 그러한 예가 있었던 일은, 오래된 신자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라고 하는 격언을 잘 지키는 동시에, 오히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심판하고 있으면 되므로,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1952. 5. 21.)
조레이의 사랑실천그것은 가로로하고
진리의가르침은 세로로해나가세
그-어떠한 일도참고견디며 도리를위해
진력함이신-의 제자라고하리라
지나간일을 후회하지않으며 나아갈길을
걱정하지말아라 신에게있는몸은
나는 언제나 「맡겨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요컨대 신에게 맡겨버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안절부절 걱정하지 않을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실로 힘들지 않고 문제없이 될 것 같은 이야기지만, 막상 좀처럼 그렇게는 되지 않는 것이다. 나마저도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무척이나 맡겨 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걱정이란 것이 고개를 쳐든다. 그러한 까닭에,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악의 세상에서는 거의 불가능이라고 해도 좋을 만하다. 그러나 신을 알고 있는 사람은 크게 다르다. 그것은 먼저 걱정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에 빨리 생각이 미치는 이상, 훨씬 마음이 편하게 된다. 여기에 아무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중요한 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써 보겠다.
그렇다는 것은, 이것을 영(靈)의 쪽에서 해석해 보면, 그것은 걱정한다고 하는 상념 그 자체가 일종의 집착이다. 즉 걱정집착이다. 그런데 이 걱정집착이란 것이 고약한 것이라서, 무슨 일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집착이라고 말하면, 출세를 하고 싶다, 돈이 탐난다, 사치를 하고 싶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하는 희망적 집착과, 반면에, 저놈은 괘씸하다, 건방진 놈이다, 정말로 얄밉다, 혼을 내줘야겠다고 하는 등의 질적으로 나쁜 집착들이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와 같은 알고 있는 집착이 아니고, 거의 누구도 깨닫지 못하는 그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현재의 걱정이나, 앞일에 대한 걱정, 지난 일에 대한 걱정 등의 집착이다. 그것들에 대해 신자의 경우, 신께서 수호를 내려 주시려고 해도, 전술과 같은 집착관념이 영적으로 방해를 하게 되어, 강하면 강할수록 수호가 약해지므로, 그로 인하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예로서 인간이 이런 것이 갖고 싶다고 애타게 원할 때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으며, 이제는 틀렸다고 체념해 버렸을 무렵 슬그머니 들어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바 일 것이다. 또 이렇게 되고 싶다든다 저렇게 하고 싶다든가 하고 생각할 때는, 실현될 것 같으면서도 실현되지 않지만, 잊어버리고 있을 무렵 돌연히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다. 조레이의 경우도 그러하며, 이 병자는 꼭 고쳐주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낫는 것이 나쁘지만,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막연하게 조레이를 할 경우나, 나을는지 낫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저 해 보자고 생각하고 하는 경우는 뜻밖에 용이하게 낫는 것이다.
일이 잘 되지 않는 원인에는, 집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흔히 말하는 역효과를 노리라고 하는 것도 그런 뜻이며, 결국 이것이 실은 진리이다.
(1951. 11. 28.)
그-누구든 귀히여길금강석 그것이라도
갈고닦지않으면 기왓장과같으리
이-세상은 선악뒤섞이어서 연마해가는
수행의-장임을 알고연마하여라
몸도영혼도 깨끗하게맑혀진 사람이라야
괴로울-때에도 쉽게넘어가리라
언제나 말하다시피 좋고 나쁨은 말해도 상관없지만,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역시 나쁜쪽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혼을 닦는다든가, 훌륭하게 된다든가, 그러한 닦는 일은 모두 사신(邪神)이 합니다. 사신이 그 사람을 괴롭혀서 그로서 그 사람은 닦여집니다. 그러므로 사신이라고 하는 것은 선인을 만드는 숫돌과 같은 것입니다. 정사(正邪)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도, 전연 선인만이라면, 싸움도 무엇도 없으므로 끝입니다. 다만, 사신에게 져서는 안됩니다. 지게 되면 악의 세상이 되기 때문에 이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사신의 쪽이 강했기 때문에 도리어 신의 쪽이 일시적이나마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행이나 재난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신의 쪽이 사신보다 이겨 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미륵의 세상이 되어도, 전연 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역시 있습니다. 다만 신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신이라고 하는 것은 끈덕집니다. 져도 단념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계속 합니다. 또 그것이 사신으로서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는 정도입니다. 다만 사신에게 지지 않으면 됩니다. 지지 않고 이긴다고 해도, 그것은 지혜에 따라서 지는 편이 좋을 경우도 있으므로, 그런 경우는 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사신에게 져서도, 최후는 신의 쪽이 이긴다고 하는, 알다시피 『사(邪)는 정(正)에게 이길수 없다』이며, 결국은 정(正)이 이기지만, 지금까지는 사신의 쪽이 힘이 세어서, 지고 있는 기간이 길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점차로 반대로 되어 갑니다. 그래서 완전히 반대가 된 때가 미륵의 세상입니다. 결론에 있어서 사신을 두려워하지 말 것과, 저 사람은 사신이라든가, 저것은 어떻다든가 결정하는 것이 대단한 잘못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신의 영분(領分)을 침범하는 것이 됩니다.
(1953. 8. 1.)
나의신혼을 연마해주시려고 대-신님은
거-친-숫돌을 사용하시었도다
영혼을닦고 마음을-맑혀서 세상구하는
소중한-신업에 열심히봉사하리
그저오로지 마음을-맑혀서 추한세상을
맑혀가는신업의 일꾼으로되리라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아직 자신에게 흐림이 있는 것입니다. 그 흐림을 고통으로 없애지 않고, 유쾌하게 없앤다는 것이 구세교의 참 뜻입니다. 그러자면 남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의 감사에 의해서 그 사람은 언제나 빛을 받는 것이므로, 그래서 이쪽의 혼(魂)이 맑아지는 것입니다. 결국 난행고행 대신으로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을 구원한다, 그로 인해 똑같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구원한다, 그 때문에 신서(神書)를 읽는다. 또 신서를 통해서, 여러 가지 진리를 알게 됨으로 혼도 맑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남을 구원하는 힘도 그만큼 강해집니다. 그리하여 남을 구원하고, 기쁘게 해주면서, 자신도 향상한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1952. 10. 6.)
신을힘으로 성심을지팡이로 나가는몸은
세상에두려운 것 없음을알지어다
하늘과땅에 부끄럽고두려움 없는사람은
신이사랑하시는 백성으로되리라
그저오로지 신-의-뜻대로 나아가리라
사악이가로막는 좁은길일지라도
대체로 인간의 가치를 정하려고 할 경우, 가장 확실한 것은, 정의감의 다소에 의한다. 이 사람이면 나쁜 일은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면 신용할 수 있다. 무엇을 맡겨도 안심이다 라고 하는 표준을 두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 정말 이 이상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즉 정의감이야말로 말하자면 인간의 골격이다. 정의감이 없는 사람은, 뼈가 없는 해파리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위험해서 안심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정사(正邪)의 판단부터 먼저 해야 할 일이며, 만약 상대가 악이면, 조금도 굴하지 말고, 정의를 가지고서 대항해야 한다. 이 방침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면, 일시는 고통스러운 일도 있으나, 결국에는 반드시 생각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요즈음의 세상에 이르러서는, 나쁜 인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자칫하면 곧 이쪽을 기만한다든지, 이용한다든지 하여 봉변을 당하게 하므로, 실로 방심할 수 없는 세상이다. 때문에 기가 약한 사람은, 언제나 겁을 먹고 있으나, 이것은 전혀 확고한 정의감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증거는, 나의 오랜 경험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그것을 참고로 써 보겠는데, 나는 종교가가 되기 이전에 실업가였던 당시의 일이지만, 무척 악인에게 기만을 당하거나, 봉변을 당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다르게 정의감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여도, 손득을 도외시하고 투쟁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므로 그로 인하여 매우 불리한 일도 있었으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언젠가는 좋게 되어, 마침내 상대방은 패하여, 항복하고 만다. 그 결과 최초의 불리를 되찾고도, 오히려 여분이 있을 정도의 이익이 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언제나 서너 건의 재판 사건이 있으며,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도 있다. 어떤 때는 내가 금전의 곤란을 받고 고생을 하던 시절에, 상대는 금전과 지위의 힘으로 무척 나를 괴롭혔지만, 끝내는 내편이 유리하게 전개되어, 상대는 손을 들어 버린 것이다.
그 후 종교가가 되고 난 후의 나는, 자관총서(自觀叢書)에도 있듯이, 무척 파란중첩의 경로를 더듬어 왔고, 그 동안 위험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 무렵은 신종교라고 하면, 당국은 탄압의 방침을 취하고 있었으며, 더구나 그 우두머리가 군벌이었으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참으로 고생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군벌도 저런 운명으로 되어 버렸으므로, 역시 정의가 승리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에서 보더라도, 지금까지는 악이 활개 치는 세상이므로, 선의 편은 한때는 패하지만, 그것을 참고 견디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정도를 밟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격으로, 정정당당히 매진하는 것이 제일 기분이 좋으며, 그것이 진실이다. 그러한 인간이야 말로 사회의 기둥이 되며, 사회악의 방벽으로도 되기 때문에, 건전한 사회가 탄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바른 자에게는 반드시 한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1951. 10. 10.)
옳고바름을 행하는-사람은 옛날부-터
사악의-방해가 있는세상이니라
고귀하도다 생명이-있는한 싸워야하리
이세상-망치는 사악의-흉계와
그-어떠한 비난과헐뜯음도 오라고하라
나에게는깨뜨릴 양날검이있노라
그리스도에 사탄(惡魔), 석가에 제파(提婆)는 누구나 알고 있는 바이지만, 우리들이라 하더라도 사탄이나 제파가 항상 끈기있게 노리고 있다. 재미있는 일로서는, 시기가 절박함에 따라서, 그들 사신은 점차 날뛰게 되어, 작금은 맹렬한 기세로 활약하고 있는데, 본교 기관지에도 요즈음 두드러지게 게재되어 있으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보아도, 사신의 운명이 벌써 목전에 다가온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말한 최후의 세상의 전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이다.
한 마디로 사신(邪神)이라고 말하지만, 사신에도 대 중 소 여러 가지가 있어, 흐림이 많은 인간일수록 사기(邪氣)의 영선에 의하여 자유자재로 조종되어, 신에 대하여 부지불식간에 방해수단을 쓰고 있다. 그런데 사신은 오늘날까지 몇 천년 동안 마음대로 날뛰어 왔기 때문에, 영계의 전환을 모르고 지금까지의 그대로인 줄 알고 악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영계의 전환이 바로 눈앞에 임박하였으므로, 그들은 눈을 뜨지 못한 채 당황하기 시작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사신이 가장 겁내는 것은 빛인데, 영계가 낮이 됨에 따라 빛이 강렬해지는 것이다. 즉 사신의 공포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신은 빛을 만나면 위축해서 활동하는 힘이 약해진다. 이러한 예로서 심령연구회(心靈硏究會) 같은데서, 전기를 끄고 깜깜하게 하지 않으면 영(靈)의 활동이 불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경우 어지간히 신격을 얻은 영이 아니면, 빛 속에서는 활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본교에 대하여 방해하는 자는, 관음력으로부터 발하는 빛을 겁내기 때문에, 그들 사신계(邪神界)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빛을 방지하려고 온갖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49. 11. 20.)
사람모두의 마음이-신에게 통해야만이
세계의-평화는 시작되는것이리
얼굴생김새 빛깔은-달라도 한결같-이
신-의-눈에는 다같은나라사람
세상을비는 진실된-마음의 화목있으면
백-가지재앙도 사라져가리라
지금부터의 인간은 세계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원래 일본인이라든가, 중국인이라든가 해서 차별을 두는 것이 첫째 잘못이다. 그 무렵의 일본인이 그러했고, 일청(日淸), 일로(日露)의 두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갑자기 일등국의 대열에 들어갔기 때문에 우쭐해져, 일본은 신국(神國)이라는 등, 뭔가 특별한 나라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생각하게 하여, 드디어 그와 같은 전쟁까지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타국민을 개나 고양이처럼 멸시하고, 그 나라 사람을 죽이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였으며, 제멋대로 타국을 짓밟았기 때문에, 드디어 오늘과 같은 패전의 쓰라림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자기 나라만 좋으면, 남의 나라야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하는 사상이 있는 한, 도저히 세계의 평화는 바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일본만 가지고 예를 들어 봐도 알 수 있다. 마치 현(縣:道)과 현과의 싸움과 같은 것이라면, 일본 내의 일이므로, 말하자면 형제끼리의 싸움으로 간단하게 결판이 난다. 이 도리를 세계적으로 넓히면 되는 것이다. 명치대제(明治大帝)가 언급한 “사해(四海)가 모두 동포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왜 풍파가 일고 시끄러운가” 즉 이것이다. 모두 이러한 생각으로 되면, 내일부터라도 세계평화는 성립되는 것이다. 전인류가 이상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되었다고 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도 한 집안끼리라는 이치이기 때문에, 전쟁 따위는 일어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이 이치에 의해서 오늘날에도 무슨 주의(主義),무슨 사상(思想) 등이라고 해서, 그 무리들끼리 집단을 만들어, 타를 원수처럼 생각하거나, 걸핏하면 무슨 국시(國是)니, 무슨 국혼(國魂)이니, 무슨 무슨 국가주의니, 신국이니 하여 독선적인 사상이, 그 나라를 그르치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방해로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적어도 일본인 전체는, 이번의 강화를 기념으로 하여, 세계인이 되어, 지금까지의 소승적 생각을 버리고, 대승적 생각을 갖는 일이다. 이것이 금후의 세계에 있어서, 가장 진보적 사상이며, 세계는 이런 부류의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한 종교 등도 그와 같으며, 무슨 교(敎)라든가,무슨 종(宗), 무슨 파(派) 등이라고 해서, 파벌 등을 만드는 것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자랑은 아니지만 본교인 것이다. 본교가 타종교에 대하여 접촉하지 말라는 등의 비열한 생각은 조금도 없다. 도리어 접촉하는 것을 기뻐할 정도이다. 그것은 본교는 전인류를 융화시켜 세계를 한 집안과 같이 하는 평화주의이기 때문이므로, 이런 의미에서, 본교에서는 여하한 종교라도, 동지끼리라고 생각하고,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사이 좋게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1951. 10. 3.)
다투는일을 싫어하고평화를 즐기는일이
신이만들어놓은 대화합의마-음
수없이많은 나라라는나라는 서로맺어져
하나로-되리라 미-륵-성-대
다투는일을 즐기는-인간의 허황됨이여
야만의-근성이 남아있기때문이리
먼저 국제적으로 설명해 보지만, 세계 각국의 국경은, 현재대로 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철폐된 것과 같게 된다. 결국 인접국과의 권력은 평등으로 되는 이상, 침략 같은 것은 절대 없어진다고 하기 보다도, 침략의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침략에 관해서 조금 써 보지만, 오늘날까지는 침략에도 부득이한 것과, 그렇지 않은 침략과의 두 가지가 있었다. 전자는 가령 일국의 인구가 점점 불어남으로, 국토가 좁아진다. 때문에 과잉인구를 처리하는 곳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여기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되지만, 미륵의 세상이 되면 그러한 사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세계에는 끝없는 들판을 가지고, 인구희박의 나라는 얼마든지 있으므로,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회(世界議會)가 있어서, 어떠한 문제라도, 신중 심의 끝에 가결된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자국본위의 이기적 근성 같은 것은 전연 없으므로, 어떠한 법안도 바른 것인 만큼, 원만히 성립되는 것은 물론이며, 1년에 몇 만명이라도, 과잉인구는 제각기의 국가에 공정하게 배분되어,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미륵의 세상의 의회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어도 제각기의 그 나라의 국회도 있기는 있지만, 지금과는 틀리며 의원의 자질도 훌륭하며, 자리적 관념을 버리고 무슨 일도 세계적 인류애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현재의 의회와 같이 갑론을박, 시끄러운 장면 등은 조금도 없고, 무슨 일도 설명만으로써 화기애애한 가운데 즉결되어 버리므로, 시간 같은 것도 지금의 몇 십분의 일에도 걸리지 않는다.
이것에도 이유가 있다. 그것은 법률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적어진다. 말할 것도 없이 법률이란 것은 선인에게는 필요가 없다. 악인에게 대해서만이 필요품이기 때문이며, 악인이 없는 세상이 되면,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의회를 염두에 두고, 현재의 의회를 본다면 어떠한가, 기탄없이 말해서 문화적 야만인의 집합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세계의회에 관한 것을 별도의 면에서 써 보지만, 근래 미국에서 주창하고 있는 세계국가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며, 이런 설이 나왔다고 하는 것도, 미륵의 세상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사라고 하겠다.
(1952. 1. 1.)
자유무애의 마-음을그대로 간직하면서
벗어나지않음이 소중한일이니라
사람으로서 지켜야할도리와 노력해야할
일이있는법이니 꿈에도잊지말라
예의범절을 지키지아니하는 자유주의는
가짜라고하는걸 알지어다세인이여
세상 일반에서의 종교관은, 종교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자유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옹색을 두려워서 가까이 하지 않는 자도 상당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대단한 잘못이며, 이 같은 잘못의 원인은 모두 기존종교 가운데의 소승신앙 때문이다. 소승신앙은 난행고행과 금욕생활을 실행함으로써, 혼(魂)이 연마되어 깨달음을 얻는다고 되어 있으므로, 우리들로부터 보면 일종의 종교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 하면, 그 신앙의 본존인 신불에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본래 같으면 그 본존의 빛에 의해서 그토록 고생하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고, 안심입명의 경지로 되는 것이 진실이다. 그렇다면 소승신앙은 자력(自力)이며, 대승신앙은 타력(他力)이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소승도(小乘道)는 인도의 바라문 종(宗)에서 발상된 것이다.
이상에 의해서도 알다시피, 소승신앙은 자유가 없고 대승신앙은 무애(無碍)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단순한 자유가 아니다. 예지가 활동하지 않으면 제멋대로의 자유가 될 위험이 있다. 진정한 자유란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므로, 거기에 스스로의 한도가 있다. 소위 일정 한도 내의 자유이며, 이 자유야말로 참된 자유이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장해를 주게 되면 마음이 꺼림직하다, 불유쾌함으로, 그래서 천공해활적(天空海?的)인 기분으로는 되지 않는다. 어쨌든 타인을 유쾌하게 함으로써 자신도 유쾌하게 된다. 이것이 참된 자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50. 2. 4. )
신-앙-의 가장중요한일은 예의범절을
지키는데있음을 알지어다신도여
이-세상의 문란함의원인은 예의범절을
소홀히하여왔던 허물때문이니라
예의범절과 순서가-올바른 나라야말로
신이계시하시는 평화향이로다
나는 나날이 많은 사람과 만나지만, 참으로 예절을 지키는 사람은 열 사람에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신자 여러분은 일반인과는 구별할 정도로 좋기는 하지만, 다만 신자끼리 접촉의 경우, 아직 부족한 점이 보이므로, 좀 더 향상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번잡한 사회생활에서는, 생각대로의 예의는 지킬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는 하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주의할 일은 민주주의를 잘못 알고, 젊은 사람 가운데에는, 상 중 하 무차별적인 사고방식의 사람이 흔히 있지만, 이것은 곤란한 문제이다. 과연 옛날과 같은 사농공상적(士農工商的) 차별주의도 잘못이지만, 지금과 같은 악평등적(惡平等的) 지나침도 잘못이다. 특히 유감스러운 일은 학교교육의 방법이다. 너무나 자유주의 때문에, 방종으로 흘러서, 사제(師弟)의 구별조차 없는 것을 흔히 보지만, 이 점 교사되는 사람도 크게 고려할 일이다. 물론 옛날의 군대식도 곤란하지만, 지금의 제멋대로의 식도 곤란한 것이다. 요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도를 지키며, 중성(中性)이 중요하며, 교육의 방침도 여기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절이란 의미는 그것으로서, 이미 옛 사람이 갈파하고 있는 것이므로, 현대인으로서도 그것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1951. 5. 2. )
넓은하늘의 광대함을우러러 생각하도다
끝을알지못하는 신-의큰사랑
어떤재난도 일어남은일어날 이유가있다
하늘과땅에서의 그온갖일들은-
자그마-한 학리를-가지고 가이없이큰
자연의-섭리를 계측할수있으랴
풍수(風水)의 원인은 천지간의 정화작용이지만, 왜 정화작용이 발생하는가 하면, 영계(靈界)에 있어서의 흐림,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오탁(汚濁)이 퇴적하는 것이다. 그것을 풍력(風力)에 의해서 날려 버리고, 우수(雨水)에 의해서 세척된다. 그 때문의 폭풍우이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흐림이란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해서 퇴적하는가를 해설해 보겠는데, 그것은 인간의 상념(想念)과 언령(言靈)에 의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상념의 악에 속하는 것으로서 불평, 증오, 저주, 개인적 분노, 거짓, 복수심, 집착 등이 영계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다음에 언어(言語)이지만, 기후가 나쁘다든가 악천후라든가 농사가 잘 안된다든가 하는 등의 자연에 대한 불평이나, 사람에 대한 비난공격, 화내어 소리 지르기, 비밀, 기만, 책망, 푸념 등 모두 악으로부터 발하는 것은 상념계(想念界)의 차위(次位)인 언령계(言靈界)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여러 가지의 흐림의 양이 어느 정도를 초과 하였을 때 일종의 독소가 발생하여, 인간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로 되기 때문에, 그 자연 정화가 발생한다. 그것이 천지(天地)의 법칙(法則)이다.
(1949. 8. 13.)
영원무궁히 하늘과땅모두가 번창해감은
모든움직임-에 어긋남없음이니
대-자연의 아름다움그것은 주의대신의
고귀한-무언의 가르치심이도다
대-자연을 정복하겠노라고 자랑을하는
사람은언젠가는 정복되어지리라
원래 삼라만상 일체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보라! 봄의 꽃, 가을의 단풍, 새들의 지저귐, 벌레 우는 소리, 명미한 산수, 달밤의 풍경이나 온천 등등은 무엇 때문에 존재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할 것도 없이, 신이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인간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소리며, 무용이며, 문학, 예술 등도, 물론 그것에 의해서 본인도 즐기고, 남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그것만은 아니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모든 맛있는 음식은 물론, 건축, 정원, 의복 등도 필요 때문만은 아니고, 보다 즐거워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음식을 즐김으로써, 영양이 되고, 생명이 보존된다. 주거도 의식도 필요만의 목적이면 심히 살풍경인 것으로 끝날 것이다. 아이를 낳는 일도 필요의 목적만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상과 같이 대자연도 인위적인 모든 것도, 한편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본능을 신이 인간에게 부여해 놓고 있는 이상, 그것을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거부하고 생존상 필요한 것 만에 만족한다고 하는 금욕주의는, 깊은 신의 은혜에 대한 배반적 사고방식이다. 또 다른 방면을 볼 때, 오늘날까지의 특권자가 이타적 관념이 결핍되어, 자기나 자기 일족의 쾌락에 전념하고, 사회나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대중과 더불어 즐긴다고 하는, 인류애적 사상의 발로가 너무나도 없었다. 그것은 신의 은혜를 독점하는 일로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나는, 부호의 대정원을 개방하고, 미술품을 공개하여 대중과 같이 즐겨야 하는 것이 신려(神廬)에 보답하는 일이라 하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옛날의 성자가 조의조식 극단적인 금욕생활을 하고, “조사(祖師)는 종이옷으로 50년”식의 생활에 고귀한 일생을 바쳤다고 하는 것은, 신(神)의 은혜에 배반하는 일이라 하겠다. 그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세인은 종교가를 볼 때, 금욕자가 아니어서는 고맙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은 유감이다. 나는 전술한 바와 같이 금욕에 반대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 같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이것이 신의(神意)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지상천국이란, 인류 전체의 생활이 향상되고, 예술과 그 밖에 맑고 깨끗한 즐거움이 크게 발달하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또 진선미(眞善美)라고 하는 것은, 진이란 거짓이 없는 것이며, 선이란 바른 행위이며, 미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금욕생활에 있어서는 선은 있지만 진과 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문화의 진보를 저지하는 일로도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1948. 9. 5.)
힘도없으며 지팡이도등불도 없는이몸이
신에게의지않고 걸어갈수있으랴
광-명-을 입고서도잘못된 회의의길로
빗나갔던나지만 구제되어지도다
나의받아온 행복이-너무나 컸기때문에
칭송할-방법이 없음을어찌하리
말할 필요도 없이 기적의 근원은 실은 영계(靈界)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적에도 자력과 타력이 있기 때문에, 먼저 자력부터 써 보겠는데, 내가 항상 말하고 있듯이, 인간에게는 영의(靈衣)라고 하여 영의 옷이 있다. 그것은 보통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으나, 인체의 형태 그대로이며, 백색의 안개와 같은 것에 쌓여있다. 물론 두텁고 얇음은 있으나, 이것은 혼(魂)의 청탁(淸濁)에 의하므로 혼이 청정할수록 두터운 것이다. 보통사람은 대개 한 두치 정도 이지만, 유덕자는 두세 척, 신인(神人)이 되면 무한대다. 그와 반대로 탁한 신혼(身魂)은 영의가 얇고 빈약하다.
그리고 재난을 모면할 경우, 예를 들면 자동차가 사람에게 충돌하려고 하는 찰나, 자동차에도 영(靈)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영의가 두터우면, 충돌하지 못하고 옆으로 벗어나 버리므로 무사하게 된다.
다음에 타력의 경우를 써 보겠다.
애당초 인간에게는, 본(本), 정(正), 부(副)의 삼수호신(三守護神)이 있다. 이 관계는 전에도 쓴 일이 있으므로 생략 하겠는데, 이 중에 정수호신(正守護神)이란 조령(祖靈) 중에서 선발된 영으로서, 위급할 경우 구조하거나, 중요한 일은 꿈으로 알리거나, 또 특수한 사명을 가진 자는 신(대개는 산토신“産土神”)이 구조하시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기차가 충돌하려고 할 때, 신은 아무리 멀어도 잘 알기 때문에, 순식간에 기차의 영을 멈추어 버린다. 그러한 경우, 몇 백, 몇 천리라도, 1초의 몇 십분의 1의 속도로 그 장소에 도착하여 구원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보아도, 기적이란 것은, 결코 우연한 요행수가 아니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알면, 기적은 이상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기적이 있는 것이 보통이며, 기적이 없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이다. 이 예로서 간혹 난문제에 부딪쳐서, 해결이 속히 되지 않으면, 이제는 기적이 있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 안가서 기적이 나타나 해결되는 일이 흔히 있다. 이것은 신앙이 깊고, 덕을 쌓은 사람은 그러한 체험이 여러 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은 선을 생각하고, 선을 행하여, 덕을 쌓아서, 영의를 두텁게 하도록 명심하고 있으면, 불시의 재난 등은 결코 없는 것이다. 또한 영의가 두터운 사람일수록 접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따스함을 느끼고, 그리운 생각이 일어난다. 흔히 사람이 잘 붙는다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사람이다. 때문에 이러한 사람에게는 자연히 많은 사람이 따르기 마련이며, 하는 일도 잘 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1951. 6.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