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는 순간 시간이 잠드는 곳... 다다오청 ‘궈이메이 서점(郭怡美書店)’ 📚️
Description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최근 타이완 애서가들 사이에서 조금 아쉬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룽(基隆)에 있는 독립서점 ‘타이핑 칭냐오 서점(太平青鳥書店)’이 오는 22일 문을 닫게 된 건데요. 이곳은 원래 초등학교였습니다. 저출산으로 폐교된 후,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지형을 살려 서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교실 구조를 유지한 채, 아늑한 독서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죠. 하지만 4년의 운영이 끝나면서 독립서점의 현실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에 셰궈량(謝國樑) 지룽시장은 앞으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운영하는 복합 공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룽에 있는 독립서점 ‘타이핑 칭냐오 서점(太平青鳥書店)’이 오는 22일 문을 닫게 된다. - 사진: CNA
디지털 시대의 흐름 속에서 타이완 출판업은 흔히 ‘석양 산업(夕陽產業)’, 곧 사라질 산업으로 꼽힙니다. 이 중 특히 종이책 중심의 서점은 큰 위기를 겪고 있는데요. 물론 디지털 전환이나 브랜드 협업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인 수익 구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서점을 열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아직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독서공화국(讀書共和國)의 궈충싱(郭重興, 1950~) 사장입니다. 그가 세운 독서공화국은 40개가 넘는 출판 브랜드가 연맹 형태로 모여 각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출판사인데요. 더 놀라운 것은 그가 타이베이, 지룽, 타이중에 5곳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독자에게 책을 건네는 서점이 사라진다면 출판사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또 “지금 타이완 출판업은 산업 공동화 위기에 처해 있고, 대형 체인과 독립서점 사이를 연결할 중형 서점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출판사 독서공화국과 궈이메이 서점의 궈충싱 사장 - 사진: CNA
책과 독자가 처음 만나는 공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는 고향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 있는 옛집을 다시 사들여, 꿈꿔왔던 서점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 ‘궈이메이 서점(郭怡美書店)’입니다. 자, 이제 궈충싱의 책 세계로 함께 떠나볼까요?
다다오청 3대 상사 중 하나 '궈이메이 상사' 🏪
타이베이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다다오청’. 1860년 단수이항 개항 이후, 차와 옷감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타이베이 최고의 번화가로 떠올랐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도 발전해 수많은 지식인과 창작자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1960년대부터는 타이베이 동쪽의 개발로 중심지 역할을 잃었지만, 오래된 건물과 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어 관광 활성화에 성공했죠. 지금은 ‘벽이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며 세련된 문화 거리로 탈바꿈했습니다. 궈충싱 사장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궈충싱의 할아버지는 다다오청을 대표하던 3대 상인, 일명 ‘다다오청 삼선(大稻埕三仙)’ 중의 설탕·밀가루 상인 궈우룽입니다. 지금 서점 이름은 바로 궈우룽이 세운 무역 회사 ‘궈이메이 상사에서 따온 겁니다.
*다다오청 삼선: 쌀 상인 천더구이(陳得貴)의 ‘이허타이 상사(怡和泰商行) ’, 비료 상인 좡후이위(莊輝玉)의 ‘좡이팡 상사(莊義芳商行)’, 궈우룽(郭烏隆)의 ‘궈이메이 상사(郭怡美商行)’
현재 서점이 자리한 건물은 궈씨 집안의 고택이었습니다. 3층 규모의 전형적인 다다오청식 건축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앞채와 뒷채가 나뉜 구조인데요. 당시 용도를 살펴보면 앞채 1층은 상사 가게, 2층과 3층은 주택, 마당 옆은 부엌, 뒷채는 창고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궈충싱이 태어나기 전에 앞채가 먼저 매각되었고, 남아 있던 뒷채도 그가 36살 되던 해 팔려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36년이 흐른 뒤, 그가 72살이 되던 해에야 비로소 옛집을 다시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궈씨 집안의 역사이자 다다오청의 흥망성쇠를 겪어온 산증인이라 할 수 있죠.
지금 궈이메이 서점이 자리한 건물에는 여전히 궈이메이 상사 관련 글이 적혀 있다. - 사진: 안우산
10년간 100개 서점 세우기! 💪
책을 사랑하는 궈충싱은 대학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가 독서 보급에 전념해왔습니다. 비록 옛집은 남의 손에 넘어갔지만 그는 매주 일요일에 다다오청의 교회에 갔는데, ‘궈이메이 상사’라 쓰인 옛집을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 마음은 결국 마음속 구멍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집주인이 그 집을 임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서점을 열고 싶다는 꿈, 그리고 집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한순간에 맞물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2022년, 코로나 팬데믹 한가운데였습니다. 관광지에 서점을 낸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지금은 아니다”, “버틸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었죠. 그런데 그는 정반대였습니다. “10년 후 서점 하나 없는 세상에서 죽고 싶지 않다”면서 전문 경영인과 함께 10년간 100개의 서점을 세우는 계획까지 만들었습니다. 궈이메이 서점은 그 계획의 1호점으로, 타이완 출판업의 명맥을 잇겠다는 상징적인 출발점입니다.
궈이메이 서점 대문 - 사진: 안우산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공간을 만드자 ✨
그렇다면 그의 전략은 뭘까요? 핵심은 단 하나,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다오청은 원래 건축 문화가 독특한 곳이기 때문에, 건축적 매력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대부분의 다다오청 건물은 1층만 가게로 쓰고 나머지는 닫아두지만, 궈이메이 서점은 건물 전체를 개방했습니다. 1922년에 지어진 원래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고 서점 자체를 ‘이야기를 품은 유적지’로 꾸몄습니다. 원래 있던 벽, 계단, 창문을 그대로 남겨서 다다오청의 시간을 전시하는 자리가 된 거죠. 실제로 방문한 사람들은 책보다 먼저 “건축이 정말 예쁘다”는 감탄부터 내놓는다고 합니다.
서점 앞채와 뒷채 사이의 마당 - 사진: 안우산
서점에서 전시되고 있는 옛 벽돌과 문패 - 사진: 안우산
이어서 서점의 분위기를 음악으로도 한번 느껴보시죠. 린커쉰(林可薰)의 ‘다다오청에서 만나요(相約大稻埕)’를 띄워드립니다.
중형 서점의 전략, 커뮤니티 만들기 🪄
궈이메이 서점의 정체성은 분명합니다. 체인점처럼 다양한 장르의 책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독립서점 특유의 아늑함과 온기를 제공하는 ‘중형 서점’이라는 포지션이죠. 먼저 사람이 공간과 연결되고 그 다음에 책과 만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서점 곳곳이 독서 공간입니다. 창가의 다다미 좌석, 책장 사이에 놓인 방석 자리, 다른 공간과 분리된 조용한 방… 앉는 순간부터 시간 개념이 사라집니다.
집처럼 아늑한 독서 공간 - 사진: 안우산
책의 진열도 센스 만점입니다. 앞채 1층은 서점의 얼굴로 다다오청과 타이완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2층은 세계 문학과 번역서, 3층은 특별한 전시 겸 독서 공간입니다. 뒷채 1층에는 작은 카페가 있고, 2층은 아이들을 위한 독서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그리고 앞채와 뒷채 사이 마당도 개방되어 있어, 책 읽다 고개만 들어도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옵니다. 궈충싱은 “서점을 카폐처럼 운영하면 독서 보급에는 도움이 안 되고, 책이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궈이메이 서점의 매출 중 75%가 책 판매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출판 시장이 위축되었다는 말이 많지만, 책을 찾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서점 3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한국 그림책 - 사진: 안우산
물론 이런 모델이 다다오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는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서점 운영을 맡고 있는 자오우이런(趙偉仁)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는 오픈북과의 인터뷰에서 “서점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기지”라며, “온라인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경험과 관계, 그리고 참여형 프로그램이 있어야 사람들이 계속 찾아온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서점을 동네의 레저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일... 🫂
디지털 시대에는 거의 모든 일이 온라인으로 가능해졌지만, “공간을 체험하는 일”만큼은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죠. 궈충싱은 36년 동안 마음속 빈자리를 품어 살아왔고, 결국 그 공간을 되찾으며 자신의 꿈과 산업의 미래를 함께 실천했습니다. 개인 목표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타이완 출판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곧 개업 3년을 맞는 궈이메이 서점은 다다오청 한복판에 단단히 자리를 지켜며, 타이완 출판 역사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沈如峰,「太平青鳥書店22日熄燈 謝國樑盼公私協力活化空間」,CNA。
2. 〈郭怡美商行〉,中研院。
3. 鄭景雯,「大稻埕新地標「郭怡美書店」:73歲出版人租回爺爺祖厝的浪漫使命」,天下雜誌。
4. 邱祖胤,「重回大稻埕把愛書人找回來 郭重興的理想書店進行式」,CNA。
5. 袁世珮,「郭怡美書店創辦人 郭重興 在時光縫隙裡續家族情感 展閱讀使命」,500輯。
6. 佐渡守,「我們來開100家書店好不好:訪大稻埕郭怡美書店郭重興與趙偉仁」,OPENBOOK閱讀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