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타이완 문학ㆍ언어모든 날이 ‘팔요일’, 시인 전궤이하이(曾貴海)를 기억하며… ⭐️
모든 날이 ‘팔요일’, 시인 전궤이하이(曾貴海)를 기억하며… ⭐️

모든 날이 ‘팔요일’, 시인 전궤이하이(曾貴海)를 기억하며… ⭐️

Update: 2025-09-15
Share

Description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월화수목금토일, 시간은 늘 앞으로 달려갑니다.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집과 회사를 오가며 흘려보내는 화, 수, 목, 그리고 마침내 불타는 금요일! 토요일은 행복과 자유가 가득하고, 어느새 마지막 일요일이 찾아오죠. 사람 평균 수명 80세, 1년에 52주로 치면, 인생은 52 곱하기 80, 4160개의 월화수목금토일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점점 늙어갑니다.


인류의 문명 또한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어져 있습니다. 시인 전궤이하이(曾貴海, 1946~2024)는 시작 〈팔요일(星期八)〉에서 세월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세월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 회수된 잔해의 조각은 / 역사의 숲으로 자란다. (歲月循環不息/回收殘骸的碎片/長成歷史的樹林)”


한 사람의 인생은 유한하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역사는 끊임없이 쓰여지는 거죠. 




팔요일 = 깨달음의 날 🌠


그런데 시 제목은 왜 ‘팔요일’일까요? 중국어에서는 요일을 숫자로 부르는데요. 월요일은 ‘일요일(星期一)’, 화요일은 ‘이요일(星期二)’, 수요일은 ‘삼요일(星期三)’, 목요일은 ‘사요일(星期四)’, 금요일은 ‘오요일(星期五)’, 토요일은 ‘육요일(星期六)’, 그리고 일요일만은 한국어와 같은 ‘일요일(星期日)’ 또는 ‘천요일(星期天)’이라 불립니다. 왜 일요일만 숫자가 아닐까요? 청나라 시절, 서양 달력을 도입하면서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요일을 숫자로 단순화했는데, 이 가운데 일요일은 일주일의 시작이자 끝이 되기도 해서, ‘칠요일’이란 말은 쓰이지 않는 거죠.


그렇다면 ‘팔요일’은 뭘까요? 일주일은 7일뿐이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날입니다. 시인은 이 팔요일을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발견한 비밀”이라고 썼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가 속세의 반복이라면, 팔요일은 생과 죽음의 순환을 벗어난 ‘깨달음의 날’, 혹은 ‘해방의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는데, 인생의 끝에서 시간의 굴레를 뛰어넘고, 마침내 진정한 자유에 다다른 것이겠죠.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오늘은 시인 전궤이하이와 그의 작품을 함께 만나봅니다!



13편의 유작을 수록한 전궤이하이의 마지막 시집 〈팔요일〉 - 사진: 보커라이



시인이자 의사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찬란한 삶 🎆


시인이자 의사, 그리고 사회운동가, 다양한 얼굴을 가진 전궤이하이는 한 인터뷰에서 “하나만 고른다면 무조건 시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60년 동안 중국어, 하카어, 타이완어로 500편이 넘는 시를 발표하며, 삶의 끝까지 창작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지만, 고향 가오슝시와 유가족의 노력으로 마지막 시작 〈팔요일〉의 이름을 딴 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13편의 유작은 영어로도 번역되어 중국어와 나란히 실렸습니다.


시인과 30년 넘는 친분이 있는 천치마이(陳其邁) 가오슝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궤이하이는 의술로 환자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글과 행동으로 사회를 위로했다. 문학, 환경, 인권, 교육개혁까지, 그는 언제나 온유하지만 강인한 몸짓으로 가오슝과 타이완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2022년 신작 발표회에서 천치마이(陳其邁, 좌) 가오슝시장과 시인 전궤이하이가 함께 시를 낭송하고 있다. - 사진: 가오슝시문화국



도시녹화운동 ‘남방녹색혁명’ 🌳


그를 기리기 위해 별세 1주기에 맞춰, 그의 시작 16편을 바탕으로 한 음악회도 열렸습니다. 클래식, 록, 보사노바,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져, 시를 음악으로 재해석했죠. 공연 무대 ‘웨우잉 국가예술센터(衛武營國家藝術中心)’도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은 축구장 14개 크기의 ‘웨우잉 도회공원’ 안에 있는데, 원래는 군사기지였다가 주상복합 용지로 바꿀 뻔했지만, 시인은 ‘웨우잉 공원 촉진회’를 만들어 도시녹지를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운동은 ‘남방녹색혁명’으로 불렸고, 18년의 싸움 끝에 군사기지를 푸른 녹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열린 추모 공연은 더욱 특별합니다.



가오슝의 랜드마크 '웨우잉 국가예술센터(衛武營國家藝術中心)' - 사진: 센터 홈페이지


우리는 종종 “시간이 너무 없어서 못 한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시인의 삶은 그게 단순한 핑계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가오슝현 자둥향(佳冬, 현재 핑둥현 소속)의 작은 하카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타이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골 사람이란 사계절의 변화, 꽃이 피고 지는 과정, 사람의 웃음과 눈물에 감동하는 사람이다. 나는 영원한 시골 사람이다. 남들과 나누고 존중하고 돕는 사람이다. 그래서 도시에 살면서도 늘 자연을 찾고 녹색 운동을 한다.” 이 말은 그가 왜 공원 운동에 앞장섰는지를 잘 보여주죠. 


이어서 전궤이하이의 시를 바탕으로 한 하카어 노래, ‘山狗大後生樂團’의 ‘羊尾仔看詩’를 함께 들어보시죠.



문학에 빠진 소년 👦🏻


시인의 문학 씨앗은 고등학교 시절에 심어졌습니다. 당시 동창의 작품이 문학지 《야풍(野風)》에 실리면서 그는 큰 자극을 받았죠. 이를 계기로 문학 동아리를 만들고, 국어 선생님의 지도 아래 작품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시와 번역 작품을 위주로 읽었지만, 어려운 글자는 마치 ‘하늘의 글씨’처럼 다가왔다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어도 끝까지 읽어 내려갔고, 그 과정은 결국 튼튼한 창작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수학과에 진학했지만, 의사의 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교사나 공무원은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 하지만, 의사라면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반쯤은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결국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의사가 된 후에도 일과 문학 창작을 병행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같이 ‘아미바 시사(阿米巴詩社)’를 세우고, 타이완 남부 최초의 문학지 《문학계(文學界)》도 창간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민주화 바람을 타고 사회운동에도 뛰어들었는데, 환경보호, 도시계획, 정치개혁까지 그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2016년에는 차이잉원(蔡英文) 정부의 고급자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라이칭더(우) 총통이 8월 24일 전궤이하이 장례식에서 유가족에게 고급자문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 사진: 가오슝시문화국


그의 작품은 일상과 사랑, 자연, 철학, 민족, 그리고 반항까지, 정말 다채로운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그의 딸 전팅위(曾庭妤)는 아버지의 문학을 ‘인간세상과 땅의 문학’이라 정의했는데요. 지난주 소개해드린 시인 두판팡거(杜潘芳格)처럼, 하카계 시인으로서 타이완에 대한 사랑을 시로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타이완 현지 이야기에 주목한 같은 ‘리시사(笠詩社)’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섬에서 태어난 여성의 나무, 침묵을 뚫은 시인 두판팡거(杜潘芳格)


2022년, 그는 중남미 권위 있는 문학상 ‘에콰도르 국제시가상(Ileana Espinel Cedeño)’을 수상해, 사상 최초의 아시아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대신 시상식에 참석한 지인은 그의 말을 인용해 “문학의 시는 세계의 진주이자 꿈의 원천”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의 지혜와 철학을 담은 그의 문학은 타이완에 남긴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방송 시작에 소개해드린 시 〈팔요일〉처럼, 속세의 반복을 간파하면 모든 번뇌는 사라집니다. 삶이란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죠. 마음이 열리면 모든 날이 팔요일이 됩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曾貴海,《星期八:曾貴海給世界的話 華英詩.文集》。
2. 曾貴海官方網站。
3. 莊紫蓉,「孤鳥,樹人與海——專訪詩人曾貴海」,台灣放送。
4. 「沒有您,不會有今日的衛武營——懷念曾貴海醫師」,衛武營國家藝術文化中心。
5. 《紀實音樂劇場-歸來去》曾貴海醫師逝世周年紀念展演

Comments 
In Channel
loading
00:00
00:00
x

0.5x

0.8x

1.0x

1.25x

1.5x

2.0x

3.0x

Sleep Timer

Off

End of Episode

5 Minutes

10 Minutes

15 Minutes

30 Minutes

45 Minutes

60 Minutes

120 Minutes

모든 날이 ‘팔요일’, 시인 전궤이하이(曾貴海)를 기억하며… ⭐️

모든 날이 ‘팔요일’, 시인 전궤이하이(曾貴海)를 기억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