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꽃피운 문학의 나무, ‘이아(爾雅)출판사’ 50주년 🌳
Description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반세기인 50년 동안, 타이완은 놀라운 변화를 겪었습니다. 독재정권에서 민주사회로, ‘자유중국’에서 ‘중화민국 타이완’으로.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타이완 문학 역시 중국문학의 일부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죠. 비롯 반도체 산업만큼의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타이완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출판업의 황금기였던 1970-80년대, 타이완 문단에서는 ‘문학 5소(文學五小)’라 불리는 5개의 문학 출판사가 큰 활약을 펼쳤는데요. 독립 출판사에 가까운 소형 출판사지만, 오늘날 타이완 문학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주역들이었습니다. 다섯 출판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968년 린하이인(林海音)이 설립한 ‘순문학(純文學)출판사’, 1972년 야오이잉(姚宜瑛)이 세운 ‘대지(大地)출판사’, 1975년 인디(隱地, 본명 柯青華 커칭화)가 만든 ‘이아(爾雅)출판사’, 1976년 양무(楊牧), 야셴(瘂弦), 예부룽(葉步榮)、선옌스(沈燕士)가 공동 설립한 ‘홍범(洪範)출판사’, 그리고 1979년 차이원푸(蔡文甫)가 세운 ‘구가(九歌)출판사’입니다.
이 다섯 출판사의 대표들은 모두 작가나 문화인 출신이고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1980년대부터는 순문학출판사 린하이인 대표의 주도로, 한 달에 한 번씩 조찬 모임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에는 뜻을 모아 공동 출판물 《오가서목(五家書目)》을 출판해 각 출판사의 독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타이완 문단의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80년 문학 5소의 조찬 모임 - 사진: 문신잡지 via 국가문화기억뱅크
하지만 1987년 타이완 민주화와 함께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출판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습니다. 거기에 인터넷과 다양한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책은 점점 콘텐츠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었죠. 이런 추세 속에서도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곳은 이아, 홍범, 구가, 세 출판사뿐입니다.
이 중 이아출판사는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를 기념해 타이완 문화인 100명이 직접 선정한 ‘이아출판사의 대표작 50권(爾雅五十.經典五十)’이 발표되었는데요. 지난 19일 열린 시상식에서 88세가 된 이아의 설립자 인디, 그리고 이번 리스트 첫 번째 자리에 오른 바이셴융(白先勇)을 비롯한 수많은 원로 작가들도 참석했습니다. 타이베이국제도서전과 비견할 만한 문학계의 대축제라고 할 수 있죠. 그럼 오늘은 ‘타이완 문학의 나무’라 불리는 이아출판사의 50년 발자취를 함께 돌아보려 합니다!
이아출판사의 대표작 50권 시상식 현장 - 사진: CNA
무한한 문학의 나무를 심으라 🌲
그렇다면 이아는 ‘문학 5소’ 중 어떤 존재일까요? 그 힌트는 출판사 대문에 적힌 문장, 즉 설립자 인디의 한 마디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제한된 시간 안에 무한한 문학의 나무를 심으라(在有限的時間裡種一棵無限的文學樹)” 이 문장은 지난 50년간 묵묵히 문학의 나무를 심어온 이아의 행보를 잘 보여줍니다. 해마다 최소 12권의 책을 펴내는 이아는 타이완 문학의 전통을 지키고 전승하는 것 외에도, 이아만의 문학 품격을 만들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2년부터는 ‘이아 서재(爾雅書房)’라는 살롱 형식의 문학 모임을 열어, 작가와 독자, 대중와 문학 사이의 거리를 좁혀왔습니다. 이아를 통해 문학 세계에 빠져든 사람은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50권의 대표작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타이완 독자들에게 많이 익숙한 책들인데요. 이 중 톱3는 1950년대 중국대륙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삶을 그린 바이셴융의 《타이베이 사람들(臺北人)》, 중화민국령 베이징에서의 어린 시절을 담은 린하이인의 자전적 소설 《성남구사(城南舊事)》, 그리고 중국 명소들을 돌며 써내린 위치우위(余秋雨)의 기행문 《중국문화답사기(文化苦旅)》입니다. 세 작품 모두 인디의 손길을 거쳐 세상에 나온 명작들이죠.
38살에 이아를 설립하고 58살에 첫 시집을 낸 인디는 출판인에서 시인이 된 드문 인물입니다. 그의 남다른 안목은 이아가 출판계의 전설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는 2015년 ‘광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앞서 언급한 세 대표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들려줬는데요.
이아 대표작 톱3의 비하인드 스토리 ✨
먼저 《타이베이 사람들》 이야기부터 합시다. 사실 처음에 이아가 출판하려던 작품은 바이셴융의 또 다른 대표작 《불효자(孽子)》였는데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이셴용은 대신 《타이베이 사람들》의 재판 출판권을 이아에 넘겼죠.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타이베이 사람들》은 출판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출판된 지 50년이 넘은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2021년에 출판된 50주년 기념 특별판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타이베이 사람들》 출판 50주년 기념판 - 사진: 청핀서점
두 번째 작품 《성남구사》는 처음에 작가 린하이인이 세운 순문학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요. 그러던 중 1983년 인디가 린하이인에게 “특별판을 이아에서 내자”는 제안을 한 후, 두 출판사가 같은 책을 동시에 출판하는 꽤 이례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95년 순문학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이아에서 낸 판본이 유일한 버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세상일은 참 예측 불가능한 거죠.
린하이인의 자서전 소설 《성남구사》 - 사진: 청핀서점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위치우위입니다. 중국 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중국대륙에 대한 타이완인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2005년 타이완을 방문하면서 ‘위치우위 열풍’을 일으켰을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당시 이 열풍의 중심에는 인디와 이아출판사가 있었죠. 이아는 그의 대표작 《중국문화답사기》와 《천년의 정원(山居筆記)》을 타이완에 소개했고, 2008년 수필 선집 《신 중국문화답사기(新文化苦旅)》도 출판했습니다. 비록 나머지 작품들은 타이완의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위치우위가 가장 애정을 갖는 작품은 모두 이아가 낸 책이라고 합니다.
위치우위의 대표작 《중국문화답사기》 - 사진: 청핀서점
이어서 노래 한 곡을 함께 들어보시죠. 《타이베이 사람들》에 수록된 〈일파청(一把青)〉을 원작으로 한 동명 드라마의 OST, 톈푸전(田馥甄, Hebe)의 ‘As it is(看淡)’입니다.〈일파청〉은 국공내전 시기, 중화민국 공군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인데요. 2015년 드라마가 방영되자 타이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추억이 아닌 현재, 고전은 지금도 젊다 🌟
이아가 설립 40주년을 맞은 2015년, 인디는 문학 전문지 《문신(文訊)》과의 인터뷰에서 “문학은 하늘이 고난받는 인류에게 준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말을 남겼는데요. 이 짧은 한 마디에 이아의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인디에게 문학은 취미이자 이상이자 평생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50년의 세월 동안 ‘문학’이라는 정원 한가운데 ‘이아’라는 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꾸어 왔죠. 덕분에 수많은 타이완 독자들의 마음 속에 문학의 향기와 울림이 깊게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책이 다양한 콘텐츠에 자리를 내어준 시대지만, 문학이 가진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번에 발표된 이아 대표작 프로젝트의 제목은 좀 특별한데요. ‘추억이 아닌 현재, 고전은 지금도 젊다(不是懷舊,經典依然年輕)’입니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이 50권의 책들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타이완 문학을 만든 든든한 토대입니다. 이아를 비롯한 ‘문학 5소’가 있었기에 지금의 타이완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거죠. 반세기라는 긴 시간을 지나 이제 또 다른 50년의 문학 여정이 시작됩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邱祖胤,「爾雅出版扮文學推手50年 隱地:唯恐好作品被埋沒」,中央社。
2. 邱祖胤,「爾雅50年、隱地88歲仍勤於筆耕 盼文人生活更好」,中央社。
3. 邱祖胤,「文學五小 其實並不小」,中央社。
4. 許文貞,「當年文學五小 只剩3家獨撐」,中時新聞網。
5. 隱地,「【遺忘與備忘】一九八六年」,人間福報。
6. 徐開塵,「說不清楚的新世界──訪隱地說爾雅五書的故事」,文訊。
7. 李海,「隱地也是影帝」,光華雜誌。
8. 林麗如,「五小出版社 純文學的美好年代」,聯合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