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타이완 문학ㆍ언어‘아시아 피카소의 발굴자’ 허정광(何政廣), 2025 총통문화상 수상! 🏅
‘아시아 피카소의 발굴자’ 허정광(何政廣), 2025 총통문화상 수상! 🏅

‘아시아 피카소의 발굴자’ 허정광(何政廣), 2025 총통문화상 수상! 🏅

Update: 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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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는 무엇일까요? 국가원수로부터 그 이름을 건 상을 받는 것,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2001년부터 2년마다 수여되는 총통문화상이 지난 31일 올해의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이 중 문학 분야의 주인공은 두 분인데요. 문화개척상의 허정광(何政廣) 출판인, 그리고 문화청년상의 린리칭(林立青) 작가입니다. 전자는 예술지 《예술가(藝術家)》의 창간인으로, 타이완 예술 출판의 지평을 넓혀온 인물이고, 후자는 공사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글로 옮겨, 노동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작가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온 이 두 문화인은 오는 10월 17일, 라이칭더(賴清德) 총통으로부터 상을 직접 받을 예정입니다. 


린리칭 작가와 그의 대표작 《일하는 사람(做工的人)》에 대해서는 과거 방송에서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 오늘은 타이완 예술 출판의 거장 허정광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근로자의 날] 린리칭(林立青) “근로자들 위해 글쓴다”



살아있는 미술 백과사전 📗


사실 이번 총통문화상 수상 이전에도 허정광은 이미 큰 영예를 안았던 인물입니다. 10년 전인 2015년, 문화부가 주최하는 출판대상 ‘금정장(金鼎獎)’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요. 그해 수상식에서 그는 “인생은 예술로 풍부해지고 예술은 삶으로 빛난다”며,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없어도 특별한 순간마다 우리의 마음과 만나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창간한 《예술가》는 타이완의 대표적인 예술지로, 2012년에는 세계 10대 예술지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창간 50주년을 맞아 허정광이 총통문화상을 받은 것은 더없이 의미 있는 순간이죠.


《예술가》 의 영향력은 거리와 골목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5년 창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타이베이시정부가 잡지사가 있던 골목을 ‘예술가의 골목’이라 명명했고, 심지어 잡지사가 이사한 후에도 새 건물이 있는 거리마저 ‘예술가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국가급 잡지’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죠.



《예술가》 잡지사가 위치한 골목과 거리는 ‘예술가의 골목’, ‘예술가의 거리’로 명명되었다. - 사진: 위키백과


화가인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허정광은 중학교 미술 선생님의 격려로, 예술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미 예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형 세 명만큼의 천부적인 회화 재능은 없었지만,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과 호기심을 통해 미술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일본어를 배우고, 글로벌 예술계의 흐름을 꾸준히 공부해 탄탄한 지식의 토대를 쌓았죠. 졸업 후에는 여러 신문에서 예술 칼럼을 집필하며 국내외 미술사 전문서를 잇따라 출간했습니다. ‘살아있는 미술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큼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타이완의 대표적인 예술지 🎨


1970년 타이완 최초의 미술 전문지 《라이온 미술(雄獅美術)》이 창간되자, 발행인 리셴원(李賢文)의 초청으로 허정광은 초대 편집자로 합류했는데요. 그러나 5년 후 《라이온 미술》이 순수 예술지에서 종합 간행물로 개편되면서 사직을 결정했습니다. 예술에만 전념하고 싶은 그는 “타이완에는 반드시 순수 예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지인들과 함께 《예술가》를 창간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잠깐 살펴볼까요? 《예술가》가 창간된 1975년은 타이완이 유엔에서 탈퇴한 지 불과 4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비록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허정광은 타이완의 예술가를 세계에 알리고, 또 해외 예술가를 타이완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잡지 이름 ‘예술가’는 화가 시더진(席德進)의 제안으로 지어진 건데요. 특정 지역성을 배제하고, 예술가라면 누구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길 바랐던 거죠. 지금 돌이켜보면, 1970년대 타이완 미술계에서 전개된 ‘향토운동’의 한 흐름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예술가》는 첫 발행과 함께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출판 이듬해부터 거의 해마다 금정장을 수상했고, 허정광이 몸담았던 《라이온 미술》에도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습니다. 회화, 조각, 사진, 건축, 패션, 디자인, 공예,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쉽게 읽히는 전시 소개부터 깊이 있는 평론까지 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술가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대중과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되었죠. 이에 허정광은 중국시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문가와 일반 독자들이 모두 이 잡지에서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상상력은 당신의 초능력!” 라이온 펜슬과 라이온 출판사



600페이지의 '헤비급 잡지' 📑


1976년, 허정광은 교류 활동에 참여하러 미국에 향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뜻밖의 제안을 받았는데요. 한 미국 국무부 관원이 “미국으로 이민 와서 잡지를 운영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타이완이 곧 미국과 단교할 거라는 소식까지 들려왔지만 허정광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곧바로 타이완에 돌아왔습니다. 《예술가》의 경쟁지 《라이온 미술》이 1996년 폐간을 맞이한 반면, 《예술가》는 1999년 9.21대지진 때 하루 발행이 늦어진 것을 빼면, 매월 22일 꾸준히 출판되어 왔습니다.


초창기에는 교과서와 비슷한 크기와 분량이었지만, 1990년대 예술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무려 600페이지, 1킬로에 달하는 ‘헤비급’ 잡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광고 협력 덕분에 예술지의 선두 자리를 굳히고 ‘벽도 잡지’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이후 2007년에는 첫 개편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예술가》 표지들 - 사진: 예술가 잡지


이어 타이완 대표 가수 차이이린(蔡依林, Jolin)의 ‘최고의 아티스트(大藝術家)’를 함께 들어보시죠.



일반인 화가 '홍통 열풍' 👨‍🎨


대중과의 예술 소통에 전념한 허정광은 수많은 타이완 예술가를 발굴했습니다.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일반인 화가 홍통(洪通)인데요. 50세에 그림 창작을 시작한 홍통은 신비롭고 원시적인 화풍으로 유명하고 ‘아시아의 피카소’로 불렸습니다. 1973년 아직 《라이언 미술》에 근무했던 허정광이 ‘홍통 특집’을 발표하자, 타이완 예술계에는 순식간에 ‘홍통 열풍’이 불었습니다. 《예술가》 창간 이후, 홍통으로부터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전화를 받은 허정광은 그 자리에서 전시를 준비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전시장은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미국신문처(현 2.28국가기념관)’이었습니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전시 첫날부터 매일 5만 명이 줄을 서서 입장했고, 결국 2주 예정이던 전시는 한 달로 연정되었습니다. 주타이완 미국 대사가 여러 번 전시장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행정수반이었던 장징궈 전 총통도 관람을 계획했습니다. 비록 홍통을 둘러싼 논란으로 방문이 취소되었지만,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덕분에 《예술가》는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죠. 전시가 끝난 후 홍통은 감사의 뜻으로 허정광에게 그림 한 점을 선물했습니다. 이에 허정광은 ‘신베이시 문화 잡지’에서 “그 시절 예술가들은 전시를 통해 해외 진출의 기회를 꿈꿨다”며 “정규 예술 교육을 받지 않은 홍통의 작품은 강한 서민 정서와 대중적 매력이 있어 유명 화가 못지않는 인기를 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홍통(우2)을 찾아간 허정광(좌1) - 사진: 예술가 잡지


이처럼 뛰어난 안목과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에 《예술가》는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시대라는 도전에 직면한 지금도, 끊임없는 혁신으로 독자와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창간 당시 36세였던 허정광은 올해 86세가 되어도, 하루도 빠짐없이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정성껏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寶兒,「第13屆總統文化獎得主出爐 何政廣、林立青摘獎」,中央社。
2. 辜人幾,「《藝術家》40」,光華雜誌。
3. 吳垠慧,「《藝術家》40年 何政廣走堅持的路」,中國時報。
4. 江羚瑜,「NO.31│臺灣藝術教育先行者 │「藝」生精彩何政廣」,新北市文化季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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