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타이완 현황ㆍ국제관계고궁100+, 문화적 자부심, 새로운 가치로 거듭나는 ‘신 고궁’ (1)
고궁100+, 문화적 자부심, 새로운 가치로 거듭나는 ‘신 고궁’ (1)

고궁100+, 문화적 자부심, 새로운 가치로 거듭나는 ‘신 고궁’ (1)

Update: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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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100+, 문화적 자부심, 새로운 가치로 거듭나는 ‘신 고궁’


-국립고궁박물원 샤오중황 원장 인터뷰(시리즈 1부)


-놓쳐서는 안 될 특전들이 계속 이어진다


-갑자만년 특전 / 천년신우 특전


-2025.09.15.-



수많은 먹을거리와 볼거리들이 있는 타이완, 외국인이 타이완을 방문하면은 맛집과 야시장을 즐겨 찾고 레트로 감성이 풍기는 거리와 그곳에 다소 낡고 헐어서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치 못한 독특한 분위기의 타이완만의 감성을 만끽하는 분들도 많다. 이러한 타이완 레트로 감성 외에도, 반세기 이상 타이완을 방문한 외국인들 중 대부분 ‘이곳’ 방문을 ‘필수 코스’로 정하여 오신다. 바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곳, 국립고궁박물원(이하 약칭 ‘고궁’)이다.


고궁은 1925년 국경일(10월10일) 베이징 소재 자금성 궁전의 일부를 대외 개방하여 본래 황실 소유의 문화 예술품들을 전국민에게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국이 아닌 국민의 나라,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 체제 아래서의 문화 유산으로 빛을 발하게 되었다. 비록 그 후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으로 십수 년 동안 박물관이 아니라 정권과 함께 피란 길에 올랐었고, 항일전쟁에서 드디어 승리를 하였으나 정권 다툼으로 유물들을 풀 틈도 없이 다시 또 피란을 가고 숨기는 등의 긴장과 압박의 연속을 겪다가 1948년과 1949년 사이 군함을 이용하여 3차례로 나누어 주요 유물들을 타이완으로 안전하게 옮겨 왔고, 타이완에서는 어려운 시기에도 유물의 보존과 연구에 열중하였고, 중화민국 국부의 100세 생신과 같은 날, 1965년11월12일 타이베이 와이솽시에 지금의 고궁을 재개원하기에 이르렀고, 오랜 세월 동안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상징해 왔으며 역사와 중국 미술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근 70만 점의 소장품 중 문헌과 희귀 도서의 비중이 가장 크다. 필자는 이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그건 금은보화와 같은 귀중한 물건도 좋지만 옛 문서들, 서적들이 불에 타거나 물에 젖어 훼손되지 않고 박물관에서 온전한 상태로 보전할 수 있다는 게 인류 문화 유산에 얼마나 큰일을 한 것인지,,, 유물을 가져오고 보존하며 연구하시며 중화 문화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미술학과 학사, 예술행정관리학 석사 샤오중황(蕭宗煌, 67세) 고궁 원장은 박물관 학자이며 서화에도 뛰어난 예술가이다. 그동안 가오슝(高雄)시립미술관 관장, 국립타이완박물관 관장, 문화부 문화자원사(司) 사장(司長, 한국의 문화부 국장), 문화부 사무총장, 국립타이완미술관 관장, 중화민국박물관학회 이사장, 문화부 정무차관 등 문화 관련 정부와 필드에 몸담아 왔다. 물론 대학교와 대학원에서도 겸임 교수로 교편을 잡았었다. 이렇게 많은 경력 중에 가오슝시립미술관 관장, 국립타이완박물관 관장, 국립타이완미술관 관장, 국립고궁박물원 원장이라는 4개 주요 박물관의 최고 경영자 직책을 맡은 인물은 지금까지 샤오중황 원장 단 한 분이라는 게 가장 화려한 경력이라 생각된다. 중남부 쟈이(嘉義) 시골 마을에서 자란 샤오 원장은 문화부 차관 또는 주요 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소박하고 겸허하다는 인상을 풍기며, 창의성과 개방성의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학ㆍ경력에서도 알 수 있는 건 샤오 원장은 미술을 사랑한 인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장차 미술 선생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그림 그리기 대회나 서예 대회에서 매번 우승을 거머줬던 그는 단순한 예술가에서 행정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박물관 경영 관리 고위직을 맡게 되며 더 크고 넓은 의미의 예술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로 고궁은 개원 100주년이 된다. 이 뜻깊은 해를 맞아 샤오중황 국립고궁박물원 원장님을 8월19일에 인터뷰하며 오늘날의 고궁과 1949년 이전과 이후의 고궁 등 시기에 따라 부여된 ‘임무’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신(新)고궁’의 비전은 무엇인지, 전반적인 고궁과 문화 유산에 관해 2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해당 인터뷰는 정리 요약하여 9월15일(월) 오늘과 오는 토요일 9월20일(토) 및 그 후의 프로그램에서 방송하며 추후에는 특별전시 영상도 준비되는 대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유할 예정이다.



올해로 고궁 100년을 맞는다.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샤오중황 고궁 원장은 ‘100년’ 자체는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인데, 고궁이 100년을 맞으며 새롭게 만든 로고에는 숫자 100과 그 뒤를 이어 더하기(플러스+)를 붙여, 개원 100년은 한 시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점임을 의미한다고 답변했다. 즉 ‘100주년 기념, 100년의 세월, 그 역사를 기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미래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샤오 원장은 강조했다.






음원, 샤오중황 고궁 원장


故宮百年院慶最大的意義就是說,我們當然會去緬懷過去的歷史,可是最主要的話,我們還是要邁向未來,所以這是我們比較重要。






 



고궁 100주년 행사와 관련하여 샤오중황 원장은 2년 전에 부임과 동시에 기획하였고 특전으로는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였는데, 개원 100주년에 할 수 있는 게 전시회 뿐만은 아님을 지적했다.


우선 고궁 100년의 역사를 회고하는 차원에서 고궁의 역사와 업무 계획 내용을 정리한 두 권의 고궁 대사기(大事紀)를 편저하였고, 유물에 관한 연구와 건축에 대한 출판물, 고궁 남원(쟈이 소재) 이야기 등 지금까지 지나온 경과를 사진과 문자로 기록하였고, 고궁 남원에서는 타이완에서의 고궁 건축 관련 전시를 마련했다.


그런데 100년이라는 특별한 해라서 더욱이 민간 차원에서는 양안이 함께 특전이라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었다. 하지만 양안관계가 다소 경직한 국면에 있다 보니 고궁 100주년이라는 특별한 해라도 베이징과 타이베이의 고궁이 만나 함께 축하하는 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샤오중황 원장은 현재의 정치 분위기를 감안하여 베이징 고궁은 우리 측에 공동 축하 이벤트 전시를 갖자는 제안을 해오지 않았으며, 각자의 법률을 지켜야 하기에 양측의 박물관이 협력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성사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양측이 공식 이벤트 또는 소장 유물을 교류하는 등의 활동은 어렵지만 우리 고궁 전문가들이 대륙으로 건너가 참관 방문을 하거나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양안 고궁은 그동안 누가 ‘정통’이냐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늘날의 타이베이 소재 고궁은 장제스(장개석) 총통, 장징궈(장경국) 총통 시대와는 달리 고궁을 보는 시각이 확연히 달라졌고 그 역할 또한 과거의 정치적 상징, 외교적 역할에서 이제는 문화의 메신저로 거듭났다.


고궁 100주년을 맞아 자체 특전 외에도 외국 박물관과의 콜라보 전시, 그리고 고궁 유물의 출국 전시의 3가지 부분으로 진행 중이다. 외국 박물관 과의 협력 특전은 작년과 올초 타이베이와 쟈이 고궁에서 진행했던 파리 장식미술관, 반 클리프 아펠 보석과의 ‘대미불언’ 특전, 또한 일전에 소개한 ‘메트로폴리탄’ 특전이 있고, 최근의 출국 전시를 예로 들어, 고궁의 인기 유물(청, 취옥백채)과 국보 유물(청, 건륭제 시대, 청명상하도) 등 131점의 고궁 소장 유물들이 동유럽 체코에서 올해 말까지 선보인다. 9월12일에서 12월31일까지 열리는 특전 개막식에 고궁 샤오중황 원장을 비롯하여, 중화민국 문화부 장관(리위안), 외교부 장관(린쟈룽), 국회 부의장(쟝치천) 등 장관급 인사와 국회 부의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내년까지 계속될 고궁 100+ 특전 중에 필자는 모든 특전에 다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타이베이와 쟈이의 고궁이 각각 선보이는 ‘갑자만년(甲子萬年)’을 테마로 진행하는 ‘국립고궁박물원 백주년 특전’에는 중국미술사의 3대 보물이자 산수화의 대작 범관의 ‘계산행여도’,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가 고궁 남원에서 전시하며,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훼손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지며, 장장 80년 동안 ‘실종’되었었던 북송시대 화가 이공린(李公麟-약 1049~1106년)의 ‘오마도(五馬圖)’는 2019년에 기적처럼 세상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일본이 가져갔다는 걸로 보이는데, 그게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되었던 것이다. ‘오마도’는 현존 이공린이 그린 진품으로 확인된 2점 중의 하나로, 오는 10월 ‘천년신우(千年神遇)’를 주제로 하는 ‘북송 서원아집(西園雅集)’ 특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북송 서원아집’ 특전에는 북송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과 그림 속 주역들의 작품들이 동시에 전시된다. 북송 영종시대 황실 성원인 부마 왕선(王詵-1048~1104년)이 저택 내의 서원(西園)에서 소동파(蘇軾-1037~1101년), 황정견(黃庭堅-1045~1105년), 이공린(李公麟-약 1049~1106년), 미불(米芾-1052~1108년) 등 문학, 서예, 회화 각 방면의 대가들, 문학사와 미술사에서도 주요 문예가로 이름을 남긴 인물 등 총 십여 명이 한 그림에 출현한 작품이다. 비록 고증한 결과 이들이 진정으로 부마 저택에서 모임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서화예술에 진심인 사람들의 중요한 문화 모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자 후세에도 아주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白兆美


취재/원고/보도: 백조미


사진: 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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